‘양자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삼성·현대·LG도 참여, 연구 역량 부족한데 상용화 가능할까

과기부, ‘양자과학기술 최고위원회 전략대화’를 개최해 양자 기술 미래 논의 인재 풀 양성 위해 카이스트 포함한 9개 대학 컨소시엄 선정해 양자대학원 신설 양자 기술 상용화까지 갈 길 멀어, 기술 역량 뒷받침 안 되면 가짜 전문가만 양성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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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양자 과학 기술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향후 9년간 242억원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포함한 9개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자금을 지원한다. 또한 양자과학기술 분야 부처 핵심사업에도 최소 400억원을 투입한다.

지난 5월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작년 12월 29일 회의에 이어 두 번째 ‘양자과학기술 최고위원회 전략대화’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는 양자 분야 인재와 기술 육성을 위한 전략 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SK텔레콤 등 주요 연구기관과 기업들, 다양한 참석자들이 모여 대한민국 양자 기술의 미래를 논의했다.

아울러 정부는 기업이 정부 연구개발 참여 시 분담(매칭) 비율을 완화하고 도출된 특허의 전용 실시권을 부여하는 등의 혜택(인센티브) 내용을 담은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집중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올해 처음으로 금융위원회와 과기정통부가 협업해 양자 초기 스타트업 육성 및 연구·산업화 지원을 위해 400억원 규모의 신용 보증 및 정책 기금(펀드) 제공에도 나선다.

이어 정부는 오는 6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국제 양자 학술‧전시 행사인 ‘퀀텀코리아 2023’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정부는 ‘미래를 향한 양자도약(Quantum Jump into the Future)’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내 양자 과학기술계 및 산업계와 공동으로 세계 속에 우리 양자과학기술을 널리 알리고, 대한민국의 양자과학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양자 전문가 양성의 과제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은 스위스 방문 당시 현지의 양자 석학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양자과학기술 육성과 국제 협력에 강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양자과학기술·산업의 중장기적 육성을 위해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양자법 제정을 추진하고, 1조원 규모의 대형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에도 착수했다.

이에 발맞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양자 인재 풀을 더욱 풍부하게 하도록 카이스트를 포함한 9개 대학 컨소시엄을 선정하여 양자대학원을 신설했다. 국내 대학, 정부 출연 과학기술 연구기관, 기업 등과 협력하여 종합적인 교육과 연구를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범학제적 구상이다. 카이스트가 주관하는 양자대학원은 향후 9년간 총 242억원을 투자받게 된다. 양자대학원은 박사급 전문 인력 180명 이상 배출을 목표로 양자 분야 전문 교육 과정을 개발해 운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한국의 야심 찬 양자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인재 풀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다른 복잡한 기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양자 기술도 깊은 이해와 전문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하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운영했던 인공지능(AI) 관련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핵심 기술을 갖춘 전문가 부족으로 인해 비효율적인 프로그램 양산과 자원 낭비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만큼 이번 정부가 내세운 양자 기술에 대한 야심 찬 비전은 인재와 전문성의 갖춘 탄탄한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충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정부의 자금 지원 약속에 이끌려 유입되는 ‘가짜 전문가’를 양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뚜렷한 기술 격차와 인력 격차

최근 양자 기술을 내세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양자 기술 연구에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2018년 12월 양자법(국가양자연구집중지원법)을 통과시킨 미국은 10억 달러를 투입해 인공지능 및 양자 컴퓨팅 연구 센터를 설립하고 지원하고 있다. 영국도 지난 3월 국가양자 전략을 발표하고 향후 10년간 25억 파운드(한화 약 4조원)의 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서는 글로벌 리더임에도 불구하고 양자 기술 분야에서는 뒤처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양자 기술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60~80% 수준으로 상당한 기술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양자 기술은 나라 간에 공유하지 않는 전략기술이라 기존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선구자의 전략이나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것)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뿐만 아니라 인력 격차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따르면 2016년부터 5년간 발표된 관련 논문에서 인용된 국내 양자컴퓨터 전문 인력은 총 264명에 불과하다. 미국(3,526명), 유럽연합(3,720명), 중국(3,282명) 등 경쟁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아울러 국내 양자 컴퓨터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34억9,000만원(340만 달러)으로 세계 시장(4억7,160만 달러)의 0.56%에 불과하다.

출처=과기정통부

기업 간 협업, 최선일까 

양자 기술의 잠재력은 그야말로 혁신적이다. 양자 컴퓨터는 신약을 개발하고, 혁신적인 소재를 설계하고, 획기적인 금융 상품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암호화와 인공 지능과 같은 분야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양자 과학 기술과 같은 초기 기술의 경우 장기 기술 개발에만 몰입하다 보면 자칫 추진 동력을 상실할 수 있어 양자 초기 시장 및 산업 육성을 위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양대학교, 현대자동차는 수소 생산, 저장, 활용을 위한 신소재 개발용 양자 시뮬레이터를 공동 개발하겠다고 밝혔으며 LG전자, 퀀텀센싱, 스탠다드오일 등이 협업하는 양자센서 개발 프로젝트도 연내 착수할 예정이다. 이번 최고위원회 회의에서도 양자 산업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기업 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종호 장관은 “양자는 일부 상용화 진입 단계로 본격 상용화까지 우리에게도 추격의 기회가 열려 있지만, 주요국들이 모두 전력 질주에 나서고 있는 만큼 기술 추격의 속도를 높여야 할 때”라며 “양자 경제까지는 장기 레이스가 될 것이며, 민-관이 함께 뛰어야 하는 이인삼각(二人三脚) 경기인 만큼 인력 양성·기술 개발·활용산업 창출에 산·학·연이 함께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양자 기술로 가는 길은 난관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양자 컴퓨터의 개발과 작동에 필요한 복잡성과 정밀성은 상당한 장애물이다. 이뿐만 아니라 양자 분야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양자 기술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제를 우선 해결하는 것이 필수다. 정부가 강조한 기업 간 협력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래를 향한 퀀텀 점프, 연구 역량 먼저 키워야

양자 기술 발전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이 분야의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중요한 한걸음이다. 정부의 대대적인 투자와 양자대학원 설립, 연구기관과 학계, 산업계 간의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한국의 양자 컴퓨팅 미래에 조심스러운 희망을 품어볼 만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202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20큐비트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등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뤘으나, 여전히 상당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양자 기술력이 아직 걸음마 단계인 만큼 양자 기술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연구 역량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양자 기술의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