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탈취’ 의혹 카카오 계열사 대상 행정조사 착수했지만, “진실 밝히긴 쉽지 않을 듯”
전자문서 신고제 도입했지만 행정조사 성과는 미비 대기업에 기울어진 운동장, 기술 침해 확인 쉽지 않아 일각에선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해야 한단 목소리도
카카오가 스타트업의 사업 아이디어를 도용했단 의혹이 발생한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가 카카오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기술 침해 행정조사를 진행한다. 중기부는 조만간 관련 의혹이 있는 카카오 계열사 카카오VX와 카카오헬스케어에 전담 공무원을 파견해 스타트업 기술 침해 상황을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기술 침해 의혹 진위를 가리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 계열사 기술 침해 의혹, 행정조사 들어간 중기부
이번 행정조사는 한 스타트업의 신고로 시작됐다. 골프장 관리 플랫폼 ‘스마트스코어’와 건강 관리 플랫폼 ‘닥터다이어리’는 각각 지난달 21일과 24일 카카오VX와 카카오헬스케어를 대상으로 기술 침해 행정조사를 신청했다. 기술 침해 행정조사란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침해 행위를 조사하고 위법행위에 대해 행정 처분하는 제도로, 기술 침해 기업이 시정 권고를 미이행할 경우 기술 침해 사실을 공표하고 유관기관 이첩을 검토한다.
스마트스코어는 카카오VX가 지난 2021년 3월부터 2년간 총 801회에 걸쳐 스마트스코어 내부 시스템 침입을 시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카오VX가 자사의 내부 정보를 통해 골프장 관리 솔루션 기술을 모방했단 것이다. 닥터다이어리는 카카오헬스케어와 혈당관리 플랫폼 사업을 두고 분쟁 중이다. 카카오헬스케어는 지난 3월 혈당관리 플랫폼 ‘프로젝트 감마’를 B2C(기업과 고객 간 거래) 신사업으로 발표했는데, 이것이 자사의 혈당관리 플랫폼과 유사하다는 입장이다.
신고 ‘더 쉽게’ 강조했지만, 정작 성과는?
앞서 정부는 중소기업 기술 침해 행위에 대한 전자문서 신고제를 도입한 바 있다. 전자문서로 행정조사 신고가 가능하도록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중소기업의 기술 침해 행정조사 제도를 활성화하고 신고 편의성 및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전자문서 신고 도입 덕에 중소기업은 제출 과정에서의 자료 유실이나 분실 우려 없이 행정조사 신고가 가능하게 됐다.
한편 제도 도입 이후 신고 용이성은 제고됐으나, 정작 기술 침해 행정조사의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느냐엔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 지난 2021년 대웅제약을 상대로 진행되고 있던 행정조사는 아무런 성과 없이 최종 종결 처리됐다. 당시 대웅제약은 메디톡스로부터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 기술을 불법 취득해 사용 중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행정조사가 돌연 중지된 건 대웅제약이 중기부 측의 조사를 계속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법기관이 아닌 중기부는 대웅제약이 조사에 응하도록 강제할 수단이 없다. 물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조사 재개 요청 또는 조사 협력 결정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행정조사를 재개할 수는 있으나, 대웅제약은 중지 이후에도 조사를 거부하겠단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메디톡스도 조사 재개와 관련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고, 결국 대웅제약에 대한 기술 침해 행정조약은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중소기업 기술 침해 행정조사의 덧없음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제 역할 못 하는 행정조사, 권리 찾으려면 직접 발로 뛰어야
기술 침해 행정조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동안 메디톡스는 자체적으로 소송을 거쳐 자사의 권리를 확인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메디톡스는 지난 2월 대웅제약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 승리를 거뒀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1민사부(권오석 부장판사)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 대웅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침해 금지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으며, 대웅제약에 400억원가량의 손해 배상을 명령했다. 나보타를 포함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독소 제제의 제조 및 판매를 금하고 균주 완제품과 반제품을 폐기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이어진 소송에서도 국제무역위원회(ICT)는 사실상 메디톡스의 손을 들어줬다. ICT는 2020년 12월 대웅제약 보툴리눔 톡신 제품의 미국 수입을 21개월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대웅제약이 항소하긴 했으나, 메디톡스가 대웅제약 판매를 담당하는 미국 파트너사와 합의하면서 소송은 그대로 마무리됐다.
중소기업 피해 사실 확인 쉽지 않아, 승소도 어려운 현실
사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침해 피해 사실이 제대로 드러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진 원·하청 불평등 관계 탓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울뿐더러 법적 다툼으로 끌고 간다 해도 실태를 명확히 드러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피해 사실이 확인된다 한들 구제받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 추가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한다는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사실상 그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제반이 없는 스타트업은 망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타트업계에선 차라리 대기업 산하에 있는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투자를 받기 위해 전달한 자료를 토대로 대기업이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낼 경우 경쟁력 없는 스타트업보다 제반 능력이 큰 대기업이 더욱 우위를 차지할 것은 누가 봐도 뻔하기 때문이다. 정당하게 아이디어의 가치를 판단하고 분쟁 발생 시 범부처 차원에서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정부도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기술 탈취에 따른 중소기업 피해 구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현행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 3배 징벌로는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한 기업에 최대 ‘5배’까지 손해를 배상하도록 상생협력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징벌적 장치가 도입된 뒤 중소기업 측이 승소한 사례는 단 1건뿐이다. 하도급법에 징벌적 장치가 처음 도입된 게 2011년임을 생각하면 적어도 너무 적은 수치다. 심지어 그 1건마저도 아직 대법원 판결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이 우월적인 지위를 가진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소송 기간이 2년 이상은 걸린다는 점이 중소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
기술 침해를 입증할 증거 대부분을 대기업 측이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중소기업의 승소를 어렵게 한다. 이에 일각에선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한다. 디스커버리 제도란 분쟁 양 당사자가 확보한 모든 증거를 공개하는 것으로, 이 경우 자신이 보유한 증거는 물론 상대방이 가진 증거까지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소송으로 가기 전 합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