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결권 국회 문턱 넘었지만, “실질적 의미 있나” 의문
복수의결권, 2년 4개월 만에 국회 본회의 통과 ‘제2의 쿠팡 사태’ 막겠다는 정부, 하지만? “韓 복수의결권 모순돼, 외국에선 이렇게 안 한다”
복수의결권 도입 법안이 2년 4개월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복수의결권의 본격 시행일은 오는 10월경이다. 그동안 정부는 시행령에 담을 구체적인 세부 요건들을 논의할 방침이다.
벤처업계의 숙원 ‘복수의결권’, 올 하반기 본격 시행
복수의결권이란 주식 1주당 최대 10개 의결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번 개정안엔 복수의결권의 개략적인 발행 요건이 담기는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투자를 받아 창업자의 지분이 30% 이하로 떨어지거나 최대주주 지위를 벗어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악용 방지를 위한 행사 범위 제한 내용도 담겼다. 구체적으로 △발행된 주식의 존속 가능 기한 최대 10년 △복수의결권 존속기간 변경을 위한 정관 변경 △이사의 보수 △책임의 감면 등이다. 특히 이익의 배당 등 주요 사안 결정에 있어선 1주 1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업계의 눈길이 특히 집중되는 사안은 시행령에서 어느 정도 금액 이상을 복수의결권 발행 요건으로 인정할지 여부다. 앞서 지난 2020년 12월 정부는 복수의결권 도입에 대해 ‘발행 요건은 누적 투자가 100억원 이상이면서 50억원 이상의 투자 유치로 지분 희석이 우려되는 경우’라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국내 밴처캐피탈(VC)의 라운드별 평균 투자금액이 시리즈 A 20억~50억원, 시리즈 B 50억~100억원인 걸 감안하면 성장 단계에 놓인 벤처·스타트업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성장 단계의 벤처·스타트업은 많은 투자금을 필요로 하는 단계인 만큼 지분 희석 우려가 가장 크다. 2019년 중소기업연구원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투자 유치 협상 시 창업주의 지분 희석에 따른 경영권 악화 및 상실에 대해 우려한 적 있나’라는 질문에 대해 벤처·스타트업의 55.98%, VC의 86.96%가 ‘우려된다’고 답했다.
창업주 경영권 보호하는 복수의결권
다만 이미 창업자의 지분이 상당히 희석된 투자 후기 단계의 기업에선 복수의결권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어느 정도 성장을 마친 대형 벤처·스타트업의 경우 창업자의 지분이 30% 이하라고 하더라도 주주들이 창업자의 의결권을 존중하는 경향이 크다. 투자 회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복수의결권을 도입해 기업 가치를 흔들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한 VC는 이른바 ‘쩐주’의 돈으로 기업에 투자를 단행하는 만큼, 계속된 투자로 인해 창업자의 지분이 대부분 희석된다 하더라도 기업의 성장성만 남아 있다면 큰 타격이 없다. 결국 문제는 지분이 희석되기 시작할 경우 창업주가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OK캐피탈로부터 받은 주식담보대출을 갚지 못한 메쉬코리아의 창업자 유정범 의장은 결국 대표이사직을 상실했다.
복수의결권은 이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복수의결권을 통해 황금주(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가진 주식)를 발행받을 수만 있다면 창업자는 지분 희석 리스크 없이 대규모의 자금을 투자받아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아울러 적대적 기업 인수 위협이나 단기적 수익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적 가치를 향상시키거나 IPO(Initial Public Offering, 기업공개)를 통한 자본 확충을 앞당길 수도 있다.
복수의결권이 정답은 아니다
국내에서 복수의결권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21년 3월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부터다. 당시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보유한 주식은 복수의결권에 의해 주당 29표의 의결권이 부여됐으며, 이로 인해 당초 지분이 10.2%였던 김 의장의 의결권은 76.7%로 늘어났다. 정부는 이 같은 ‘쿠팡 사태’를 막기 위해 국내 복수의결권 도입을 강조하고 있으나, 복수의결권이 꼭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복수의결권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안 도입은 벤처기업 성장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복수의결권의 부재가 벤처기업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도 했다. 이어 김 교수는 “해외를 보면 자체적인 경쟁력이 있어서 IPO를 앞둔 기업들이 복수의결권을 도입하지 복수의결권을 도입해 기업이 성장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유니콘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 되는 설립 10년 이하의 스타트업)이 상장할 때 복수의결권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비상장 중소벤처기업을 유니콘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함이란 명목 아래 복수의결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복수의결권을 지닌 기업에 선뜻 자금을 투자하겠다 나설 만한 VC가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창업자의 경영권 보호가 기업에 도움이 된다면 복수의결권이 없더라도 충분히 사적 투자 계약 등으로 경영권 보호가 합의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명백한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