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킬러문항’ 덕분에 일타강사들만 돈 번다?
킬러문항 배제 지시에 학원가 일타강사들 강력 반발 현장 학생들은 환영, 차라리 본고사로 의대 뽑아라 실패한 공교육이 진정한 원인, 교육 개혁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 ‘킬러문항’을 제외하라고 지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대학 입학 관련 교육계에서는 수능이 그간 꾸준히 난이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변별력을 확보하고자 암묵적으로 도입됐던 킬러문항 및 준킬러문항들을 풀기 위해 학원가를 찾았던 학생들이 다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킬러문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위기다.
킬러문항 배제는 尹 대선 공약 ‘사교육 경감 대책’의 일환
지난 16일 윤 대통령은 수능 시험에 킬러문항들이 등장하는 탓에 학생들이 사교육에 계속 돈과 시간을 쏟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올해 수능부터 킬러문항을 없애라고 지시했다. 이에 학원가에서는 즉각 혼란이 발생했고, 킬러문항에 대한 ‘킬러 강의’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부 강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현재 국내에서 수능 수학 관련 이른바 ‘일타강사’로 알려진 현우진 씨는 지난 17일 인스타그램에 ‘공교육 수능 방침이 6월 모의평가에서 이행되지 않은 점을 대통령이 질책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며 “애들만 불쌍하지”, “9월(모의평가)하고 수능은 어떻게 간다는 건지”라는 포스팅을 게재했다. 학원가에서는 현 강사의 주장이 급변하는 교육 정책 탓에 준비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에 대한 지적과 함께, 변별력 확보를 위한 필수 요소로 알려진 킬러문항의 대체재가 없어 올해 수능에서 학생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예상이 깔려있다고 설명한다.
사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사교육 경감 대책’의 하나로 학원 도움을 받아야 풀 수 있는 킬러문항을 배제해야 한다고 공약으로 내세웠다. 작년 말 2023학년도 수능 결과가 발표되자 다시 한번 킬러문항 배제를 주문했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올해 3월 발표한 수능 시행 계획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고 EBS 연계 교재와 강의로 보완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정 난이도를 갖춘 문항을 출제할 계획”이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고교 교육 변별력에 대한 잣대 확보는?
인력을 채용하는 HR 업계에서는 당장 사교육 비용 절감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교육 변별력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지난 20여 년간 수능 시험을 통한 선발이 점차 감소하고, 수시모집을 통해 학생 선발이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이른바 ‘학벌’에 대한 신뢰가 빠르게 사라진 것도 함께 지적된다. 더 이상 명문대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믿을 수 있는 인재로 대우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HR 업계에서는 사교육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킬러문항을 없앨 경우 수능의 변별력이 더욱 심하게 사라질 가능성이 높고, 대학 서열화가 지금보다 더 빠르게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학생들은 킬러문항 공략을 위해 학원을 찾았던 것에 대한 불만이 이제서야 해결된다며 안도하는 모습이다. 대치동 학원가에 수천만원의 비용을 썼다는 고교 재학생 A씨는 “극초최상위권은 어떤 문제가 나와도 겁나지 않겠지만, 최상위권만 해도 자칫 킬러문항을 놓치면 2등급으로 내려갈 수도 있어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며 “의대 입시를 제외하면 수능이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시대가 온 만큼, 차라리 의대 본고사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수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치동에서 의대입시반을 운영하고 있는 학원 관계자 B씨도 수능에 등급제를 도입하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킬러문항을 배제하고 고급 수학을 기반으로 한 본고사를 학교별, 전공별로 도입하는 것이 실제 학력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타강사는 사교육 시장의 적폐(積弊)?
학원가 관계자들은 사실상 공교육의 구멍을 메워넣으며 추가 수익을 얻는 것이 현재 한국의 사교육 시장인 만큼, 궁극적으로는 공교육이 정상화돼야만 사교육 시장의 비대화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십년간 대치동을 비롯한 주요 지역의 학원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공교육이 망가져 적절한 교육이 제공되지 않는 것과 함께, 쉽게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이 학원가에 돌 수 있도록 시험 제도가 쉽게 운영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함께 내놓는다.
스위스AI대학의 이경환 교수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학 졸업생 중, 심지어 초명문대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학생들도 유럽 대학들의 학부 2~3학년 수준의 교육을 전혀 따라오지 못해 F학점을 받는 경우가 약 75%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한국식 수능 교육과 대학 교육만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 K모 대학 졸업을 앞둔 C씨도 대학원 유학을 결정한 이유가 국내 공교육으로는 해외 지식을 전혀 따라갈 수 없어 한국에서 교육받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C씨는 대치동 출신으로 억 단위의 수업료를 써가며 공부해 명문대에 합격했으나, 수능을 위해서도 학원을 다닌 것도 모자라 대학 교육 중에도 학원을 다녀 학점을 땄다고 전했다. 국내 사교육이 점수를 잘 받는 데는 큰 도움이 됐으나, 실제로 해외 시장에서 공유되는 지식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 SNS, 커뮤니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빅데이터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변별력’, ‘혼란’, ‘비판’, ‘한국'(이상 붉은색 키워드) 등의 키워드가 이번 윤석열 대통령 발언을 담고 있는 하늘색 키워드 그룹에 직접 연결되어 나오는 점으로 미루어 변별력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혼란이 주요 반응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어 ‘사교육비’, ‘대책’, ‘학원'(이상 녹색 키워드) 등의 키워드가 함께 언급되는 것을 통해 공교육 실패에 따른 사교육비 지출이 국민들의 불만 중 하나라는 점도 엿볼 수 있다. 올해 초 한국교육개발원이 국민 5,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사교육비가 부담된다는 응답은 2001년 81.5%에서 2020년 94.3%로 12.8% 포인트 증가했다.
한편 벤처 업계에서는 AI수학, AI영어 등을 내세운 교육 스타트업들이 치명타를 맞을 것으로 분석한다. 학생들이 사교육을 찾았던 가장 큰 이유가 킬러문항을 극복하기 위한 각종 ‘꼼수’ 교육이었으나, 수능 방침이 바뀌게 되면 사교육을 찾아가는 빈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