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행정부, 중동 일부 국가에도 엔비디아 AI용 반도체 ‘수출 통제’
엔비디아, ‘A100 및 H100’ 제품군 판매하려면 미 당국 추가 허락 받아야 아직 구체적 수출 통제 국가 알려진 바 없지만, 사우디·UAE일 가능성 ↑ 중동 통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시도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란 분석도
미국 정부가 중국뿐 아니라 중동 일부 국가에도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처음으로 생성형 AI를 위한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쓰이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일부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제재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 엔비디아 반도체 칩 밀수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중국 유입 경로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추가 제재안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 2분기 실적보고서 ‘중동 수출’ 제한 내용 담겨
28일(현지 시간) 엔비디아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가 일부 중동 국가를 포함해 특정 고객과 다른 지역에 A100 및 H100 제품군을 판매하려면 당국의 추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통지했다. 지난해 작년 8월부터 엔비디아가 A100과 H100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 데 이어 추가 제재를 내린 셈이다.
엔비디아는 당국의 라이선스 요구 사항이 적용되지 않는 A800이나 H800과 같은 제품을 개발해 중국에 판매해 왔다. 특히 A800은 A100과 주요 사양은 동일하지만 데이터 전송속도가 대폭 하향된 대체품이다. A800의 데이터 전송 속도는 초당 400GB로 초당 600GB 미만의 제품만 수출하도록 규정된 기존 대중국 수출 요건을 충족한다.
아직 엔비디아가 중동의 어느 국가가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엔비디아의 ‘큰손’으로 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대상국으로 꼽고 있다. 특히 지난 1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사우디는 킹압둘라대학(KAUST)을 통해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H100 칩을 최소 3,000개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UAE 역시 최근 자체 개발 중인 개방형 LLM인 ‘팰컨(falcon)’의 성능 향상을 위해 엔비디아 반도체 수천 개를 구입한 바 있다.
엔비디아의 GPU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2분기 매출 135억 달러(약 18조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대부분을 미국, 중국, 대만 등에서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국가들이 전체 매출의 13.9%를 차지하는 가운데 중동 매출에 대한 비중은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중국 내 엔비디아 반도체 ‘밀수’ 급증
전문가들은 미 당국이 중동 국가와 중국이 AI 산업과 관련해 협력하고 있는 점을 우려해 추가 제재를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중동 국가로 흘러 들어간 반도체 자원 및 기술이 중국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사우디 통신부는 중국과 AI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된 전략적 파트너십에 서명했다. 또 이달 엔비디아의 반도체 칩을 대거 사들인 사우디 킹압둘라대학에는 미국에서 활동이 불가능한 중국 AI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 반도체 밀수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점도 미국 정부가 사전 차단에 나선 이유다. 지난 6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세계 최대 전자제품 도매시장이 위치한 중국 선전 화창베이와 AI 스타트업이 대거 위치한 중국 상하이 인근에서 엔비디아의 A100이 거래되고 있었다. 가격은 엔비디아 공식 소매가인 1만 달러보다 비싼 13~15만 위안(약2,359~2,722만원)에 달했다.
SCMP는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엔비디아 최첨단 반도체가 유통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올해 상반기 중국의 기술 대기업들이 엔비디아의 반도체 칩을 대량으로 구매하며 업계 내 물량 부족 현상이 발생하자 A100이나 H100 등이 밀수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中 수출규제 확대의 또 다른 배경,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중동 국가에 대한 투자 및 교류를 확대하고 있는 점도 미국엔 눈엣가시다. 중국은 2013년 일대일로 공동건설을 처음 국제사회에 제시한 뒤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중국 상무부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중국은 일대일로 연선국가들에 누적액 약 900억 달러(약 119조원)를 투자했고, 아웃소싱 공정에도 약 6,700억 달러(약 886조원)의 계약을 체결해 이 중 약 4,200억 달러(약 556조원) 수준의 작업을 마무리했다. 특히 중동에서는 2018년부터 미국을 추월해 가장 많은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에 오르며 바이든 행정부 취임에 따른 미국의 가치동맹 공세를 막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중국은 중동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외교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 2021년에는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 부장이 중동 지역 6개국 순회하며 중국-중동 간 협력 원칙, 코로나-19 관련 협력, 중동지역 안보, 경제 분야 협력 등에 관해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시 왕이 외교부 부장은 “중국과 아랍권 국가들 간 무역액 2,400억 달러(약 318조원)를 실현하며 중국이 아랍권 국가들에 제1의 무역 파트너가 됐다”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5G, 빅데이터, 인공지능, 항공 분야에 걸쳐 중국의 표준으로 기술협력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발언하며 중동에 대한 일대일로 확대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