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등 대형 은행들의 벤처대출 시장 진출

SVB 파산 이후 은행-非은행 금융기관간 경쟁 전망 자금력·네트워크 갖춘 은행, 유리한 대출 옵션 제안 신생 스타트업의 경우, 자금 확보 더 어려워질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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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로부터 대출을 받은 스타트업 Hashicorp의 공동 창업자 에이먼 다드가르(Amon Dadgar)/사진=HSBC 홈페이지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직후,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비은행금융기관을 통해 대출을 받아야 했고, 비은행금융기관들은 LP(유한책임투자자)로부터 자금을 확보해 높은 이자율로 대출을 제공했다. 하지만 벤처대출 시장에서 비은행금융기관이 우위를 점하는 현상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SVB 파산 이후 그동안 비은행금융기관이 주류를 이뤘던 벤처대출 시장에 은행들이 진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포스트 SVB 시대, 은행의 변화

최근 비은행금융기관보다 저렴한 금리로 대출을 제공하는 HSBC 같은 대형 은행들이 벤처대출 시장에 진출하면서 스타트업들의 자금 조달 경로가 다양화되고 있다. 벤처대출 기업인 런웨이 그로스 캐피탈(Runway Growth Capital)의 CEO 겸 CIO 데이비드 스프렝(David Spreng)은 벤처대출 시장에서 비은행금융기관을 선호하던 스타트업들의 입장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제 스타트업들은 대출을 받기 위해 더 이상 벤처 은행을 찾지 않는다”며 “은행들은 스타트업들에게 아주 유리한 금리를 제안했고 실제 지난달 자사의 거래처 2곳을 은행에 빼앗겼다”고 말했다.

대형 은행의 진출로 인한 벤처대출 시장의 변화는 단순히 스타트업들이 은행으로부터 일회성 자금을 조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스타트업들은 한 차례 자금을 지원받은 이후에도 은행으로부터 다양한 대출 옵션과 경로를 제안받으면서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게 되고, 이는 또 다른 대출로 이어지는 유인책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의 비은행금융기관을 비롯해 HSBC, 스티펠(Stifel) 등 새롭게 벤처대출 시장에 진출한 은행들 모두 SVB의 고위직을 고용해 벤처대출 사업을 강화하고 신용정책을 개정했다. 일부 은행들은 대출 고객들에게 보유 현금의 100%를 해당 은행에 보관하도록 하는 규정을 최대 51%까지 완화하기도 했다. 오히려 파산으로 인해 SVB와 시그니처은행(Signature Bank)의 계좌가 폐쇄된 이후에는 여러 은행에 자금을 분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법무법인 반스 앤 손버그(Barnes & Thornburg)의 파트너이자 벤처대출 담당자인 트로이 잰더(Troy Zander)는 “아직까지는 스타트업들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데 어느 정도 제한이 있지만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벤처대출 시장의 새로운 기회

벤처대출 시장의 선도기업이던 SVB의 파산은 기존의 비은행금융기관과 은행들에게는 점유율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캐나다 5대 은행인 CIBC(Canadian Imperial Bank of Commerce), SVB를 인수한 퍼스트시티즌스은행(First Citizens Bank) 등 대형 은행들과 브릿지뱅크(Bridge Bank), 코메리카(Comerica) 등 소형 은행들이 스타트업에 대출을 제공하며 벤처대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HSBC도 수십 명의 벤처대출 전문가를 고용하고 영국의 벤처캐피탈(VC)을 인수하는 등 벤처대출 시장 진출을 준비했고, 지난 7월 말 HSBC는 공식적으로 벤처사업 분야의 업무를 시작했다. 아직은 얼마나 많은 스타트업이 HSBC로 예금을 옮기고 대출을 신청할지 수요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HSBC 등 대형 은행의 진출은 벤처대출 경쟁을 더욱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HSBC 미주지역 CEO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HSBC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유동성을 확보해 다른 은행들은 제공할 수 없는 많은 혜택을 지원할 것”이라며 “SVB 고위직을 영입하는 등 SVB와 HSBC의 장점을 결합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HSBC는 벤처대출 분야에 투입되는 자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기존 SVB가 대출한 자금보다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22년 SVB가 스타트업에 제공한 자금은 총 67억 달러(8조8천억원)로 HSBC는 시리즈 A 단계 스타트업을 포함해 기업당 100만 달러(1억3천만원) 수준부터 대출을 제공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투자자문회사 아멘텀파트너스(Armentum Partners)의 총괄 파트너 존 마켈(John Markell)은 “HSBC가 벤처대출 시장에서 목표를 달성한다면 매우 강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투자은행들이 벤처대출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신생 스타트업들이 대출 자금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후기 단계의 스타트업들은 은행과 비은행금융기관의 대출 중 유리한 조건을 선택할만한 여유가 있지만, 신생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대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기관들은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대출을 통제할 가능성이 높다. 스타트업 전문 회계법인인 크루즈 컨설팅(Kruze Consulting)의 COO 스콧 오른(Scott Orn)은 “이로 인해 자금 조달이 어려운 신생 스타트업의 경우 접근가능한 경로를 찾아 대출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