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사업장 중대재해법 시행 유예 나서는 국힘 “법 손봐야 한다는 데 사회적 의견 일치”

2024년 1월 27일 → 2026년 1월 27일로 유예 추진 “처벌에만 급급, 안전을 위한 방안은 전무” 지적 잇따라 자금·인력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와

160X600_GIAI_AIDSNote

국민의힘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민생 및 경제 법안 처리에 주력할 의지를 밝히며 이 가운데 핵심 사안으로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 적용 시기를 유예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알렸다.

국민의힘 민생특별위원회인 ‘민생 119’는 6일 오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체 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며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에 나서며,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의 사업장(건설업의 경우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 시기를 당초 예정된 2024년 1월 27일에서 2026년 1월 27일로 2년 유예하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모호한 표현-실효성 부족, “개정 시급” 한 목소리

중대재해법은 2020년 출범한 제21대 국회의 1호 법안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산업 현장의 크고 작은 재해에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월 26일 제정됐고,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27일 본격 시행됐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해 2년 유예 기간을 적용했다. 이에 해당 사업장들은 2024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둔 상태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는 ‘중대산업재해’와 일반 시민이 피해를 입는 ‘중대시민재해’ 모두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1건의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같은 요인에 의한 직업성 질병자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 시 적용된다. 또 중대시민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1건의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부상자 10명 이상 발생 △동일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질병자 10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처벌 대상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다. 중대산업재해 또는 중대시민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징역 1년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부상자 또는 질병자가 발생했을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상의 벌금이 부과된다.

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법 조항이 다소 모호한 탓이다. 경영계는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가 준수해야 할 의무와 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자칫 과도한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정부가 법 해설서 및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적절하게’, ‘충분히’ 등의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등 현장의 불편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근로자가 안전 규정을 위반함으로써 사고가 발생해도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떠맡고 근로자에 대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사업주 등이 모든 사업 현장을 점검할 수 없는 데다가, 중소기업의 경우 단 한 번의 실수로 경영자가 징역형 등을 받으면 도산으로 직결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불만도 쏟아져나왔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경우 총수나 오너 일가가 대표이사를 역임하지 않고 이른바 ‘허수아비 대표’를 앉혀두고 실질적으로는 본인들이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이유는 다르지만, 중대재해법의 수정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동일하다.

법의 허점 인정한 첫 판결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이 지난 올해 1월부터는 각종 부작용이 속속 드러났다. 법 시행에 맞춰 일선 기업들이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 같은 임원급 직책을 신설하는 것을 비롯해 안전 담당 조직을 구성하는 등 대비에 나섰지만, 눈에 띄는 성과로는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021년 683명이었던 중대재해 사망자는 2022년 644명으로 약 5.7% 감소에 불과했다. 심지어 법 적용 유예 대상인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 사망자는 같은 기간 248명에서 256명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4월에는 중대재해법 첫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5월 4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도르래를 이용해 100kg 상당의 철근을 끌어 올리는 작업 중 5층에서 추락해 숨진 해당 사건에서 법원은 원청업체의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안전난간의 임의 철거 등 건설 근로자들 사이에 만연한 관행이 일부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짚으며 “모든 책임을 대표에게만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집행유예의 이유를 밝혔다. 법의 허점을 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이 6월 23일 안산 반월도금산단에서 열린 현장 간담회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임이자 의원실

“법 준수,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다수의 경제단체는 “근로자를 구체적으로 지휘하거나 감독하는 위치가 아닌 원청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으며 실효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중대재해법이 기업 대표의 ‘강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는 데 급급해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영책임자 의무 내용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경영자에 대한 최소 1년 이상의 징역형 조항이 삭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법적 의무를 준수하는 데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중기업의 44.6%와 소기업의 80.0%가 여전히 중대재해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소기업을 운영 중이라고 밝힌 한 대표는 “법이 방대하고 복잡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중소기업은 자금과 인력이 부족해 법을 준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정부 여당인 국민의힘도 중대재해법 개정의 필요성을 줄곧 강조해 왔다. 이에 올해 초부터는 노동개혁특별위원회(노동특위)를 구성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개정안 마련에 박차를 가했다. 노동특위장이자 이번 개정안 대표 발의에 나서는 임이자 의원은 지난 6월 23일 경기 안산에 위치한 반월도금산단에서 열린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현장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당정이 긴밀히 협의하고 효과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