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투자 속도 내는 UAE, 국내 기업들 ‘오일머니’ 등에 업고 날개 펼 수 있을까
韓 관심 갖는 중동, 업계 “정부 차원의 협력 모델 제시 있어야” 투자 유치 이어가는 국내 기업들, “오일머니 환영” 中 위기 아래 성장하는 韓, “날개 펴기에 최적화된 시기”
UAE(아랍에미리트연합) 국부펀드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반도체, 배터리, 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한국 투자에 속도를 낸다. 1,130조원을 운용하는 세계 3대 펀드가 한국 주력 산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관련 업체에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시장 불안정성이 커지며 대체 시장으로 한국이 주목받음에 따라 두바이투자청(ICD), 무바달라 등 중동의 여타 펀드도 국내 투자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
UAE 국부펀드 ADIA, 韓 투자에 ‘관심’
지난달 31일 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ADIA는 반도체, 배터리, 엔터테인먼트를 한국 투자의 주요 테마로 선정하고 관련 산업 스터디에 돌입했다. ICD, 무바달라 등 UAE의 2, 3대 국부펀드도 유사한 기조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IB 업계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1월 UAE 방문, 5월 UAE 투자 기관의 방한이 이뤄진 뒤 UAE 국부펀드 실무진 차원에서 한국 투자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 왔다”며 “이들은 한국 투자를 통해 가장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는 반도체, 배터리, 엔터테인먼트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UAE 국부펀드가 한국 산업에 관심을 가진 건 연초 양국 정상회담 이후부터다. UAE 측이 40조원 투자를 결정하면서 KDB산업은행은 UAE 국부펀드 측에 한국 자본시장 생태계를 직접 설명하는 등 작업을 진행했고, 지난 5월엔 산업은행이 무바달라와 투자 파트너십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주요 국부펀드가 한국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10곳 상당과 미팅을 가진 바도 있다. 무바달라는 한국투자전담팀도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적 투자 양상 보이는 중동, 오일머니 유치 효과 기대
UAE 국부펀드가 우리나라에 특히 주목하는 부문은 반도체, 배터리, 엔터테인먼트다. UAE 국부펀드가 이들 산업에 집중하는 건 대규모 자금을 수용할 만한 산업이 국내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UAE 국부펀드들이 국내에서 경쟁입찰 형식으로 진행되는 투자에 참여 의사를 밝혔으나 UAE 측이 원하는 투자 집행 규모가 너무 커서 한국 기업이 거절하는 상황이 몇 차례 있었다”며 “이들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현재 산업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고속 성장이 지속되는 섹터여야만 한다”고 전했다.
실제 실제 UAE를 비롯한 중동 펀드가 한국에 집행하는 투자는 주로 수천억원 이상이다. 지난 1월 사우디 국부펀드 PIF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6,000억원을 투자했고, 지난해 5월 UAE 국부펀드 무바달라는 GS 등과 컨소시엄을 맺어 보톡스 제조사 휴젤을 1조7,200억원에 인수했다. 일본 도쿄증시에 상장된 넥슨에 대한 PIF의 누적 투자 규모는 2조원이 넘는다. 올해 들어선 UAE 펀드들이 한국 기업공개(IPO) 시장까지 관심의 범위를 넓히는 양상이다. 올해 코스닥에 상장한 알멕이 대표 사례다. 대표 주관사인 NH투자증권은 아부다비투자청(ADIA)을 해당 IPO 수요예측에 참여시키며 흥행을 유도했다. 국내 IPO 역사상 ADIA가 직접 수요예측에 참여한 건 최초다. ADIA는 파두의 수요예측에도 참여해 물량을 받아 간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 투자자들의 투자 양상은 다소 공격적이다. 국내 스마트팩토리 전문 솔루션 기업 ‘에임시스템’ 또한 중동 투자자들의 눈에 든 기업 중 하나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에임시스템의 투자유치 주관사인 BDA파트너스는 에임시스템 투자유치를 위해 해외 투자자들과 논의를 진행 중인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투자 유치를 위해 논의하고 있는 투자자는 중동을 거점으로 두고 있다. 중동의 투자 ‘큰손’이 에임시스템의 기술력에 투자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들은 에임시스템과 접점이 있는 스마트 솔루션 회사 등과 JV를 설립해 향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키는 계획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2016년 ‘비전2030’를 통해 국제 무역과 교통 허브 국가가 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한 국내 투자도 앞으로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
꿈틀대는 K-방산, “투자 산업 다각화 위한 정부 노력 요구돼”
최근 들어선 K-방산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자신감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중동 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기업도 적지 않은 모양새다. 국내 방산 업계에게 중동은 낯설지만은 않은 시장이다. 과거부터 꾸준히 접점을 확대해 나가며 관련 시장에 노크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엔 조 단위의 수주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성과도 나오고 있다. 오일 머니로 구매력을 갖춘 국가가 많은 만큼 앞으로도 K-방산 업계에 ‘큰손’이 돼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가운데 업계 일각에선 중동 투자자들의 국내 투자가 확대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 산업을 다각화할 수 있도록 정부 레벨에서 청사진을 그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 GCC) 국가들은 청년 중심의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순위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현지 인력이 근무할 수 있는 민간 부문 일자리가 많지 않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외국 기업과의 협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중동 국부펀드와 보조를 맞출 수 있는 협력 모델을 제시할 필요성이 큰 이유다.
IB 업계에선 최근 국내 산업이 날개를 펴기에 최적화된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몇 년 새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가시화되면서 국내 산업이 오일머니를 유치하기에 더 유리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지속돼 온 미중 갈등에 이어 근래 들어선 경기 둔화와 부동산 위험까지 부각되면서 중동 투자자들은 중국을 대체할 시장을 모색하는 중이다. 업계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 금융업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는 현 중국의 위기를 기회 삼아 중동 투자를 적극 유치해야 한다”며 “오일머니 유치를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