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품귀 현상에 울상 짓는 기업들, ‘해외·문과 인력’이 해답?
해외 개발 인력 활용성 증가에 ‘문과 인력’도 덩달아↑ 개발 인력 부족 만성화, “문과라도 코딩 실력 있으면 채용” “문·이과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 버려야, 마케팅-코딩 융합 시도해야”
불어불문학 등 문과 인력을 활용하는 이공 업계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내 개발자의 몸값 상승 및 해외 인력 활용 증가 등에 따른 결과다. 특히 향후 개발 인력 부족 현상이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문과 인력의 활용성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퓨처엠, ‘글로벌 통섭형 인재 전형’ 신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해 하반기 국내 배터리 소재 업계 최초로 ‘글로벌 통섭형 인재 전형’이라는 채용 전형을 신설했다. 소위 말하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인재를 기술 엔지니어·전략 마케팅 분야의 전문 인력으로 키운다는 게 골자다. 실제 올해 1월 포스코퓨처엠은 해당 전형으로 10명가량의 인재를 채용했다. 입사 직후 이들은 포항공대와 회사 연구소에서 6개월간 공학·직무교육, 현장실습 과정을 이수했으며, 이들 중 80%는 지난 7월부터 국내외 양·음극재 공장 생산관리 엔지니어가 됐다. 엔지니어로 배치받지 못한 인원은 캐나다 퀘벡에 위치한 ‘얼티엄캠’의 마케팅 등 경영지원 조직으로 파견됐다.
포스코퓨처엠 채용 관계자는 “첫 시행임에도 회사와 직원 모두 만족도가 높다”며 “올해는 어학뿐만 아니라 IT, 미디어 활용 및 콘텐츠 제작 능력 등을 보유한 사람으로 범위를 확대해 채용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포스코퓨처엠은 2030년까지 양극재 100만t·음극재 37만t 생산능력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미·유럽 등 전기차 핵심 권역 내 생산기지를 구축하는데 ‘통섭형 인재’들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개발 인력 몸값 상승, 문과 인력 흡수 시작한 이공 업계
이공 업계가 문과 인력을 활용하기 시작한 건 최근 개발자의 몸값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개발자 몸값 상승에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위기를 맞은 업계가 외국어에 능통하면서도 취업 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문과 인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학능력과 함께 인문·사회·공학적 역량을 고루 갖춘 인재를 채용해 기술·전략·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겸비한 전문 인력으로 양성하겠다는 게 이들의 주된 목적이다.
개발자 몸값 증가는 해외 개발자 채용률 증가 현상도 함께 불러왔다. 주로 인도와 베트남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 지역 프로그래머를 계약직으로 뽑는 사례가 많다. 현지에 근무시키면서 화상 회의 등을 통해 업무를 지시하거나 업무 능력이 검증된 베테랑들은 직접 국내 본사에서 채용하기도 한다. 실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국내 236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14곳(48%)이 외국인을 채용했다고 답했다. 특히 전체 조사 대상 기업의 78%(185개 기업)가 ‘앞으로 외국인을 채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에서는 국내 기업의 외국인 개발자 고용 인력이 단순 코딩 업무까지 포함해 수천 명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 중소기업과 농어촌의 저숙련도 업무를 대체하던 동남아 근로자들이 이제는 IT 분야까지 빠르게 파고드는 양상이다. 동남아·인도 개발자 채용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로는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와 무난한 업무 능력이 꼽힌다. 글로벌 채용 대행업체 딜닷컴과 국내 리서치 플랫폼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한국의 5년차 미만 개발자 평균 연봉은 5,200만원 안팎으로 조사됐다. 반면 인도의 5년차 미만 개발자 평균 연봉은 3,282만원, 말레이시아는 2,677만원으로, 한국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10년차 안팎의 시니어 개발자도 6,500만~8,200만원 수준으로 한국보다 낮다.
이와 관련해 개발자 채용 플랫폼인 슈퍼코더의 윤창민 대표는 “남미·아프리카 등에서 인력을 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업무 시간대와 기업 문화가 비슷한 동남아 개발자를 더 선호한다”며 “학력과 개발 경험 등 스펙이나 업무 능력이 국내 개발자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구직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과 계열 인재 양성에 눈길을 쏟는 기업도 덩달아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과 인력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해외 개발팀과의 의사소통에 문제만 없으면 프로젝트 관리 등 업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 목소리도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은 융합의 시대”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해외 개발자 인력에 대한 소통 우려도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문과 인력이 이공계 기업에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는 의견이다. 다만 해외 개발 인력의 국내 정착이 가속화되는 추세인 만큼 문과 인력의 안착도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라는 견해도 나온다. 실제 메타버스 중소업체 파울러스는 베트남, 인도 등 해외 인력을 적극 활용해 성공적인 안정화를 이뤄냈다. 이와 관련해 정경일 파울러스 CDO는 “조금 빡빡해 보이는 일정을 제시해도 제시간에 제출하고 있고 결과도 만족스럽다”며 “국내 중고급 개발자로 팀을 구성했다면 인건비를 맞추기 어려웠을 텐데, 외국인 개발자를 적극 활용하면서 예상 비용의 최대 절반가량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반화한 재택근무 문화가 해외 원격 근무를 활성화하면서 해외 인력 활용이 더욱 용이해졌다. 장소가 어디든 업무 성과가 중시되는 문화가 번졌고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해외에서의 원격 근무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해외 개발 인력의 활용이 늘수록 문과 인력의 역할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 입장에서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개발 인력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외 인력과 마찬가지로 문과 인력의 경우 상대적으로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도 기업 입장에서 장점으로 꼽힌다.
IBM에 따르면 데이터와 개발능력을 융합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은 2020년까지 미국에서만 272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같은 소프트웨어 인력은 3만2,000여 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기업들은 천재적인 코딩 실력을 자랑하는 S급 인재나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석·박사 출신 A급 인재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을 채용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다를 바 없다.
이에 기업들은 차선책으로 석·박사 학위가 없거나 컴퓨터공학 전공이 아닌 문과생이라도 향후 뛰어난 코딩 실력을 갖출 자질이 있는 이들을 속속 채용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암을 진단하는 도구를 개발하는 김선우 딥바이오 대표는 “전공과 관계없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이 발달돼 있다면 우선적으로 채용한다”며 “과거 채용했던 에이스 개발자 중 한 명은 영문학과 철학을 복수전공했던 문과생인데, 이후 개발 능력을 향상시켜 구글로 이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직무교육 전문 스타트업 러닝스푼즈의 이창민 대표는 “흔히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는데 이것의 본질은 결국 융합의 시대가 다가왔다는 것”이라며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금융과 코딩을 결합하고 마케팅과 코딩을 결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