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흐름에 IT 인력 부족 가시화, 정작 정부는 ‘밑 빠진 독 물 붓기’만
경영난·인력난 이중고 겪는 중소기업들, "디지털 전환은 꿈도 못 꾼다" 韓 중소 '스마트 전환 수준', 100점 만점에 11.88점 "정부 예산 2,000억원 남짓, 계획 마련도 미흡해"
국내 대중소 2,000여 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전문인력 부족으로 디지털 전환(DX)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기업들은 정부 차원에서 지원 전담 기관을 마련해 기업들을 독려하고 전문인력 육성 및 관련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고질적 경영난·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의 디지털 기술 도입을 돕기 위해 일관된 정책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시간·비용·인력 등 여러 걸림돌을 맞춤형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다.
DX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전문인력 부족’
25일 한국생산성본부(KPC)가 국내 대·중소기업 2,025개를 대상으로 진행한 ‘DX 추진 애로사항’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중 절반 이상(1,111개, 54.9%)이 ‘전문인력 부족’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AI, 사물인터넷(IoT), 스마트공장 등 첨단기술을 내부 공정 등에 접목할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DX 접근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외에는 ‘자금 부족'(758개, 37.4%), ‘시간 부족'(497개, 24.5%), ‘추진 가이드 미흡'(454개, 22.4%) 등이 뒤를 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인력과 기술, 비용이 국내 산업계에서 DX 확산을 주요 가로막는 요인”이라며 “특히 중소기업은 벤치마크할 DX 성공 사례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우선 해결해야 할 정부 과제로 ‘미래 전문인력 양성'(585개, 28.9%)과 ‘지원 전담기관 신설'(561개, 27.7%)을 각각 꼽았다. DX 관련 주요 애로사항으로 꼽히는 전문인력 확충과 자금 부족 등 어려움을 정부 차원의 지원 전담기관 설치를 통해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마다 서로 다른 DX 진입장벽을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KOITA)가 지난 5월 기업 연구소와 전담부서 보유 기업 57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DX 실태 조사’에서도 관련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기업들은 정부가 ‘산업계 수요(현실)를 반영한 정책 수립'(189개, 33.3%), 대중소 상생사업확대(171개, 29.1%) 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처 간 산재한 지원정책 일관성 확보’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13.9%(79개)에 달했다.
구인난 심화, 빅테크 쏠림 현상도 ‘여전’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래 기업의 업무는 원격체제로 전환됐고, 이를 위한 기술 및 소프트웨어 수요도 급증했다. DX는 오늘날 기업들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과업이다. IT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이 같은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전문인력 부족 현상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가 지난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부족한 인력은 총 1,192명으로 나타났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는 향후 5년간 소프트웨어 분야 신규 인력 수요를 35만3,000명으로 추산했는데, 정작 인력 공급은 32만4,000명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단순 계산으로 연평균 6,000명가량의 전문인력이 부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보안업계 역시 구인난을 면치 못하는 추세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필요한 정보보호 신규 인력은 3만6,540명이나, 신규 공급은 2만5,830명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2,000여 명의 인력이 부족한 셈이다. 특히 기업의 정보보호 공시 의무화와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 지정신고제 확대 등으로 인해 정보보호 인력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보안업계 구인난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보험업계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지난 6월 보험연구원이 발간한 ‘보험산업 DX 설문조사 CEO Report’에 따르면 DX에 장애가 되는 요인 중 ‘전문인력 부족’이 82점으로 가장 높았다.
특정 기업 ‘쏠림 현상’도 전문인력 확충에 장애가 되는 요소 중 하나다. 최근 IT 인력의 중요도가 높아지며 개발 외 마케팅, 영업 등 분야에서도 전문인력의 힘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졌지만, 정작 IT 전문인력들은 대부분 빅테크 기업에 몰린다. 이와 관련해 한 대기업 계열 SI 업체 개발자는 “내부에서도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토스)’ 등 빅테크 기업으로 이직하려는 이들이 많다”며 “연봉 차도 있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개인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기 위해선 대기업 빅테크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출구전략 전무한 기업들, “정부는 뭐 하나”
이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업들은 각기 저마다 DX를 위한 전략을 꾸려나간다. 일례로 현대카드는 지난 2018년 ‘QR코드를 활용한 모바일 방문 출입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들의 ‘디지털 DNA’를 활성화시키겠단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기존에는 방문자가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예약사항을 확인하고 신분증을 맡긴 후 출입했지만, 변경된 시스템에서는 방문자가 안내데스크에 비치된 키오스크에서 모바일로 전송받은 QR코드를 스캔 후 셀프 체크인을 할 수 있다. 사내 주요 공간에 디지털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코딩언어인 ‘파이선(Python)’으로 안내 문구를 표기해 놓기도 했다. 회의실이나 휴게실의 시설 이용 방법이나 사내 카페인 ‘Cafe & Pub’의 메뉴도 파이선 언어를 적용했다. 디지털 환경을 일상화함으로써 직원들의 변화, 각성을 꾀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실질적으론 의미 없는, 사실상 ‘보여주기식’ 전략 아니냐는 지적이다.
대기업마저 이렇다 할 출구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니, 국내 중소기업들의 DX 대응 수준은 밑바닥 신세를 면치 못하는 상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기부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중소기업 정보화 수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의 스마트 전환 수준은 100점 만점 기준 11.88점이었다. 이는 ‘스마트화 발전 단계 분포’ 중 가장 낮은 ‘일상적 단계’에 속하는 수치다. 중소기업 임직원들의 DX에 대한 관심과 의지 자체는 70%를 웃돌았으나 현실의 벽이 높았다. 중기부는 “투자 대비 수익 불투명성과 전문 인력 부족 등으로 전환 과제를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절반 이상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에 이 의원은 “디지털 시대에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디지털 전환에 대한 재정, 인력 면에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한정된 예산과 부족한 인력으로 한계를 느끼고 있는 중소기업에 보다 체계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정부도 DX 지원에 마냥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2024년도 스마트 제조 혁신사업 예산을 2,091억원까지 편성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기재부는 “2024년도 예산은 2023년도 예산 대비 25% 증가했다”며 “증액된 예산을 바탕으로 이전 정책 대비 강화된 지원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출했다. 다만 업계 사이에선 기대보단 불안감이 더 크다. 당초 중기부가 작년 추진하고자 했던 사업 규모가 2,900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2,091억원은 턱없이 부족한 정도의 예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의원이 중기부 핵심 산하기관인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DX의 일환인 ‘정보화’ 사업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이 상태론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밖에 안 될 것”이라며 “지원받은 자금을 유용하게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치밀한 계획부터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