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3’에 멈춰 선 자율주행 기술, 한계의 ‘벽’ 뚫을 수 있을까
각종 사고 일으킨 로보택시, '뺑소니'로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 '꿈의 기술'된 레벨 4 자율주행, "레벨 3 도달한 기업도 2곳 밖에 없어" 자율주행 소비자 인식 '급추락', 끊이지 않는 '고난의 행군'
제너럴모터스(GM)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의 미국 캘리포니아주 내 무인 자율주행차 ‘로보택시’ 운행이 결국 중단된다. 그간 발생한 여러 사고로 안전 문제가 불거진 탓이다. 로보택시 운행 중단은 지난 8월 당국의 로보택시 운행 허가 두 달여 만에 나온 첫 규제 조치로, 이로 인해 앞으로 웨이모(알파벳의 자율주행 자회사) 등 상업용 무인택시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24시간 운행 로보택시 크루즈, 결국 ‘퇴출’
24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차량관리국(DMV)은 이날 성명을 통해 크루즈의 로보택시 배치 및 무인 자율주행 테스트 허가를 즉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DMV는 “공공 안전에 불합리한 위험이 있음이 확인된다면 우리는 즉시 로보택시 운행 허가를 중단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에 대한 위협이 늘어남에 따라 운행 중단 조치를 내렸음을 거듭 설명한 것이다. 이어 “현재 로보택시 운행 중단 기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채 크루즈 측에 운행 허가증 복원 신청에 필요한 절차만 설명했다”고 부연했다.
DMV는 지난 2일 밤 발생한 ‘보행자 뺑소니 사고’를 크루즈 운행 중단의 주요 원인으로 제시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당시 한 여성이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일반 차량에 치였고, 그 충격으로 크루즈 로보택시가 주행하던 반대 차선까지 튕겨 나갔다. 이에 로보택시는 피해 여성의 몸이 땅에 닿자마자 브레이크를 작동시켰지만, 차량은 여성을 약 20피트(6m)가량 끌고 간 뒤에야 멈춰 섰다. 이와 관련해 DMV는 “해당 사고는 크루즈의 차량이 공공 운행에 안전하지 않음을 방증한다”며 “특히 사고 수습 과정에서 크루즈는 자율 주행 기술과 관련한 정보를 허위로 진술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크루즈 측이 차량과 보행자 간 충돌 장면만 담긴 영상만 제공하고 최초 충돌 후 보행자를 끌고 가는 차량의 후속 ‘풀오버 동작(pull-over maneuver)’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에 크루즈 측은 “사고 다음 날 차량이 멈춰 있는 모습을 포함한 전체 영상을 DMV에 제공했다”고 반박했으나,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전 문제 가시화, “시민의식도 부족해”
로보택시 안전 문제는 운행 허가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로보택시 운행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8월엔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가 크루즈 차량에 치여 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맞은편 차선에서 오는 소방차와 크루즈 차량이 충돌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로보택시가 소방차와 구급차 등 긴급 구조 차량의 운행을 방해한 사례도 다수 생겼다. 지난 8월 크루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내 텐더로인 지역 한 교차로에서 승객을 태우고 이동하던 크루즈는 교차로에서 긴급 출동 중이던 소방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외에도 크루즈 택시 10대가 해변의 한 거리에서 멈추는 바람에 15분 이상 도로 정체가 발생하는가 하면, 한 공사장 주변에서 크루즈 택시가 움직임을 멈추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로보택시를 정상 운행하기엔 아직 AI 기술의 수준이 다소 낮다는 증거다.
외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로보택시가 무인택시라는 점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승객들이 다수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현지에선 로보택시 내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이지기도 했다. 현지 매체인 샌프란시스코 스탠다드가 인터뷰한 커플들은 “로보택시는 안락하진 않지만, 그 안에서 벌이는 성행위는 스릴이 넘쳤다”며 “그냥 밖에 나가서 돌아다닌다는 사실,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금기시되던 걸 한다는 게 좀 더 재밌고 신나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로보택시의 창문은 안전상의 이유로 선팅을 하지 않았기에 차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에서도 들여다볼 수 있긴 하지만, 정작 로보택시의 서비스 약관이나 운영 규정엔 승객들의 차내 성행위와 관련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 로보택시가 활성화되기엔 관련 가이드라인도, 시민의식도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돈 먹는 하마’ 자율주행, 기업들도 ‘백기’
크루즈 로보택시의 운행 중단 조치는 앞으로 무인 자율주행차량 산업 전체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브라이언트 워커 스미스 교수는 “이번 조치는 무인 자율주행 기술의 실패 사례”라며 “크루즈를 넘어 관련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자율주행 기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자율주행 기술에 뛰어든 기업은 많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8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포티투닷을 인수했고, GM은 2016년 자율주행 기술 개발 회사 크루즈를 인수해 자회사로 뒀다. 스텔란티스그룹도 지난해 자율주행 기술 개발 업체인 AI모티브를 인수했다. 이렇듯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전환에 이어 자율주행 기술에서도 선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적인 기술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 같은 움직임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돈 먹는 하마’ 자율주행 기술을 손에서 놓기 시작한 기업들이 속출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르고AI의 청산이다. 자율주행 스타트업 아르고AI는 포드와 폭스바겐 등 거대 자동차 회사들의 투자 덕에 한때 9조원의 기업가치를 달성하기도 했지만, 결국 지난해 10월 말 문을 닫았다. 자율주행 상용화로 이익을 창출하는 시점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만 기약 없이 들어가자 포드와 폭스바겐이 손을 뗀 탓이다. 현대자동차도 자율주행 업체 투자로 지난 3년간 1조5,000억원 상당의 손실을 입은 상황이다. 앞으로 자율주행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 결실이 눈에 보이기까지는 곱절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자율주행’으로 꼽히는 레벨 4, 레벨 5 자율주행이 여전히 꿈의 기술로 남아 있다는 점도 기업들의 투자 열망을 낮추는 요인이다. 미국 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주행 단계를 레벨 0부터 5까지 총 6단계로 나누는데, 레벨 0은 ‘비자율주행’, 레벨 1은 ‘운전자 보조’, 레벨 2는 ‘부분 자율주행’이다. 이 단계에서 조작의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고, 인간은 운전대에서 손을 놔선 안 된다. 일부 주행 보조는 해주지만 어디까지나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다는 의미다. 레벨 3는 ‘조건부 자율주행’으로, AI가 운전대를 조작하고 속도도 조절하지만 고속도로 등 특정 조건이 아닌 이상 운전자의 보조가 필요하다. 진정한 자율주행은 레벨 4부터다. 레벨 4는 ‘고도 자율주행’ 단계로 비상 상황에서만 인간이 개입하며, 레벨 5는 ‘완전 자율주행’으로, 모든 도로와 모든 환경에서 AI가 스스로 차를 통제한다. 이 단계에선 더 이상 가속페달(액셀러레이터)도 브레이크도 필요 없다.
현재 기술로 구현 가능한 단계는 ‘레벨 3’까지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 ‘레벨 3’에 도달한 기업은 혼다와 메르세데스 벤츠 2개사밖에 없다. 기술 발전이 지나치게 더디게 진행되다 보니 자율주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도 커지고 있다.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은 지난 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2020년 대비 2023년에 자율주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운전면허를 소지한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자율주행 자동차를 ‘시기상조’라고 답변한 비중이 2020년 37.5%에서 2023년 46.7%로 늘었단 것이다. 이외 ‘불안하다’는 답변은 33.4%에서 35.1%로,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답변은 16.8%에서 24.9%로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자율주행 업체는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각종 사고 사례가 발생한 데다 이렇다 할 기술 진보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불안은 높아져만 간다. 한계에 도달한 자율주행 기술이 ‘벽’을 깨트릴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