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등장에 ‘흐름’이 바뀌었다, “변화의 바람 맞이해야 할 때”

160X600_GIAI_AIDSNote
판도 바뀐 시장, "시장 전환의 흐름 이겨내야"
전기차 전환 못 견딘 남아공, 팔라듐 가격 하락에 '치명타'
전기차 산업 '역성장' 못 면한 韓, 미래 불확실성 '급증'
중국 BYD의 전기차/사진=BYD

미국이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변했다. 최근 전기차 산업이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가긴 했으나, 결국 전동화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는 사실상 이미 정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 도시들은 시장 전환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우리나라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산업계의 발전 및 변화 여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전기차’

최근 미국에서 전기차 재고가 늘면서 가격 인하에 불이 붙었지만 전기차 전환 흐름 자체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운명으로 자리 잡았다. 블룸버그NEF는 모든 형태의 전기차 판매 누적 가치가 2050년까지 57조 달러(약 7경4,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미 그 여파로 국가 및 지역별 희비가 교차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세계 각국의 경제를 재편하고 정치적 동맹까지 위협하는 상황이다. 멕시코는 시대의 흐름을 잘 탄 국가 중 하나다. 현재 미국은 북미에서 제조된 전기차를 구매할 경우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약 970만원)의 세금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데, 여기에 멕시코가 기업들의 공장 부지로 딱 떨어진 것이다. 실제 제너럴모터스, BMW, 포드, 스텔란티스, 기아차는 이미 멕시코에서 전기차 생산을 확대하기로 결정했으며, 테슬라는 북부 누에보 레온주에 초대형 공장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멕시코시티의 거리를 누비는 베모(Vemo) 브랜드 택시가 중국 BYD와 안후이 장화이자동차그룹의 전기차라는 점이다. 서구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을 겨냥해 멕시코에서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동안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멕시코 현지인을 타깃으로 공격적으로 판매를 늘리고 있다. 멕시코는 러시아 다음으로 큰 중국차 수입국이다. 마티아스 고메즈 레오토 유라시아그룹 멕시코 수석연구원은 “중국이 멕시코에 투자하는 논리는 관세를 피하고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는 멕시코의 제조업 생태계 발전을 가속화하고 중국도 멕시코 투자를 통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변화하는 시장 흐름 속에서 중국이 나름대로 판도를 쥐기 위해 빈틈을 찔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헝가리 동쪽 국경의 데브레첸도 전기차 흐름의 수혜를 입었다. 데브레첸은 수 세기 동안 부다페스트에 밀려 제2의 도시였으나 최근엔 유럽 내 경쟁자를 제치고 중국,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 4번째로 큰 배터리 생산지로 도약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인구 20만 명의 데브레첸의 외곽엔 BMW가 새 전기차 공장을 건설 중이고, 중국의 컨템포러리 암페렉스 테크놀로지가 유럽 최대 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데브레첸은 지난 8년간 125억 유로(약 1조7,900억원)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했고, 같은 기간 산업단지 면적도 10배 이상 늘어 4만 헥타르가 넘는다.

반면 내연기관 차량 생산이 많은 국가들은 전기차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 도시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남아공은 전 세계 백금족(PGM) 매장량의 약 5분의 4를 보유하고 있으며, 내연기관의 촉매변환기(일부 독성가스를 덜 해로운 가스로 변환하는 자동차 배기시스템의 일부)에 사용되는 팔라듐의 주요 생산국이다. 그러나 전기차 시대엔 이런 부품이 필요하지 않아 남아공의 경제 위기가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남아공에서 백금족 채굴에 참여하는 광부는 약 17만5,000명에 달하는데, 이들은 보통 약 10명의 가족을 부양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17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의 생활이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팔라듐 가격은 지난 1년 동안 이미 약 40% 하락했다. 전기차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국가의 말로다.

팔라듐/사진=Adobe Stock

때 못 맞추는 韓, “시장 흐름에 보조 맞춰야”

문제는 우리나라도 전기차 전환 흐름에 때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전 세계 주요 전기차 시장 성장률이 둔화된 상황에서 국내 전기차 시장은 유독 심각한 침체에 빠졌다. 주요 국가 중에 유일하게 판매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 전기차 누적 판매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한 11만7,611대였다. 국내 전기차 판매량 감소는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글로벌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는 전기차 성장률이 지난해 세 자릿수에서 올해 두 자릿수로 둔화했지만 판매량이 줄지는 않았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1~8월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53.6% 늘어난 128만4,920대를 기록했다. 지난 8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순수전기차(BEV) 신차 비중이 20%를 넘어서기도 했다. 미국은 전년 동기보다 53.7% 증가한 105만7,000대를 기록했다. 2021년(69%) 대비 성장률이 15%p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에서는 전년 대비 60.2% 증가한 414만 대가 팔렸다. 중국 시장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약 353만5,000대로 전년 대비 43.8% 증가했다. 유일하게 우리나라 전기차 판매량만 역성장한 것이다.

업계에선 전기차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 정부 보조금 축소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우리나라 전기차가 안방에서조차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일각에선 수출에까지 악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수시장이 흔들리면 생산 능력이 감소하고 생산 라인 효율성 저하로 이어져 생산 비용이 상승하거나 납품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수 판매 저하로 인해 기업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주된 걱정이다. 최근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긴 하나, 결국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 수요가 꾸준히 성장할 것이란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이에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산업의 둔화는 일시적 숨 고르기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강조했다. 전동화 전환이라는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인 만큼 시장이 잠시 정체된 사이 국내 기업들이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전기차의 대척점에 있는 산업은 앞으로 추락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국가의 말로는 이미 남아공을 통해 미래를 엿본 바 있다. 시장의 흐름에 맞춰 국내 산업계도 변화의 바람을 맞이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