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수출은 무조건 넷플릭스? 국내 시장 ‘넷플릭스 의존’ 우려 가중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넷플릭스 등 OTT서 동시 방영 결정 K드라마 '대표 수출로' 된 넷플릭스, 자막·더빙으로 글로벌 경쟁력 더한다 국내 시장 넷플릭스 '가성비 하청 기지' 될라, 콘텐츠 업계 우려 커져
‘사극 전문 배우’ 최수종이 10년 만에 주연으로 복귀한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내일 KBS2와 넷플릭스에서 첫방송된다. 지상파 대하 정통 사극이 글로벌 OTT 플랫폼에서 동시 방영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넷플릭스는 대만, 홍콩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도 <고려거란전쟁>을 제공할 예정이다.
넷플릭스가 K콘텐츠의 대표적인 수출 창구로 자리 잡은 가운데, 업계에서는 ‘넷플릭스 의존’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는 추세다. 넷플릭스가 열악한 국내 콘텐츠 시장의 노동 환경을 악용, 가성비 콘텐츠를 찍어낸 뒤 IP(지식재산권)을 확보해 배를 불릴 수 있다는 우려다. 과연 K콘텐츠 시장에 넷플릭스는 득일까, 독일까.
‘제작비 부족하다”, 넷플릭스에 배급권 판매한 KBS
<고려거란전쟁>은 KBS가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아 특별 기획한 드라마로, 혼합현실(XR) 스튜디오를 활용한 ‘버추얼 프로덕션’ 등 최신 촬영 기법이 대거 도입됐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대형 LED 스크린에 언리얼 엔진으로 가상 배경을 구현해 촬영하는 기법으로, 2019년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만달로리안>에 최초로 활용됐다.
각종 최신 기술을 도입한 탓일까. <고려거란전쟁>에는 KBS 대하드라마 중 역대 최대 규모의 제작비(편당 기준)가 투입됐다. KBS에 따르면 <고려거란전쟁>의 편당 제작비는 약 8억4,400만원에 달한다. 드라마 전체로 계산하면 약 27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셈이다. 지상파 시청률이 줄어들며 광고 수입이 급감한 가운데, 27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제작비를 KBS가 오롯이 부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통 사극이다 보니 간접광고(PPL)로 제작비를 충당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KBS는 정부 기관, 개인 투자 공모 등으로 제작비를 마련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4월 방송·인터넷동영상서비스 콘텐츠 제작 지원 대상작으로 <고려거란전쟁>을 선정했다. K-콘텐츠 투자 플랫폼 펀더풀은 지난 9월 신한은행과 함께 투자 공모를 진행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KBS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 배급권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제작비 부담을 경감했다.
‘현지화’ 역량 필두로 K콘텐츠 수출하는 넷플릭스
최근 들어 K콘텐츠의 수출이 넷플릭스에 일임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 넷플릭스 대한민국은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에 수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각국의 언어로 자막과 더빙을 제공하고, 소비자에게 차별 없이 콘텐츠를 추천하는 넷플릭스의 전략이 K-콘텐츠에 ‘글로벌 경쟁력’을 더했다는 것이다.
실제 넷플릭스는 ‘현지화’에 강한 서비스다. 현재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최대 33개 언어의 더빙 및 자막을 지원하고 있다. 작품 및 등장인물의 성격, 말투 등에 대해 분석하고, 이를 체계화한 ‘크리에이티브 가이드라인’ 개발을 실시한다는 부분도 강점으로 꼽힌다. 넷플릭스는 해당 가이드라인을 전 세계 각지의 파트너사에 공유해 현지화에 대한 토론을 거치고, 초벌 작업에 대한 상호 피드백을 교환하며 현지화 서비스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이외에도 넷플릭스는 배리어 프리 기능, 색다른 콘텐츠 마케팅 등 콘텐츠 판매 과정 전반에 걸쳐 ‘수출 지원’ 전략을 펼치고 있다. 실제 <킹덤>을 시작으로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더 글로리>, <마스크걸> 등 수많은 K-드라마가 넷플릭스의 현지화 및 마케팅 역량을 발판으로 삼아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다.
‘넷플릭스’ 중심 K콘텐츠 시장, 이대로는 위험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 콘텐츠 업계의 ‘넷플릭스 의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한두번 배급권을 판매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후 K콘텐츠가 넷플릭스 중심으로 유통되다 보면 결국 우리나라가 넷플릭스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다. 특히 넷플릭스가 우리나라를 ‘가성비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위험성은 한층 커진다.
일례로 넷플릭스가 9부작 <오징어 게임>에 투입한 제작비는 회당 238만 달러(약 28억원)로 추정된다. 반면 넷플릭스 인기작 <기묘한 이야기>와 <더 크라운>의 회당 투자비는 각각 800만 달러(약 95억원), 1,000만 달러(약 119억원)에 달한다. 넷플릭스가 5년간 국내 콘텐츠에 약 3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이 같은 ‘가성비’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저렴하게 제작된 <오징어 게임>은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6개 부문을 수상하며 역대급 흥행에 성공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이 자사의 기업 가치를 약 9억 달러(약 1조2,000억원)가량 높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제작진에게 돌아온 이익은 크지 않았다. IP를 넷플릭스 측에 넘기면서 ‘재상영분배금(작품 재사용 시 창작진에게 지급하는 로열티)’을 받지 못하는 형태의 불리한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저비용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그에 걸맞지 않은 저임금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현장 스태프 대다수는 프리랜서로 고용돼 표준근로계약서도 쓰지 못한 채 과잉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넷플릭스는 고용주가 아니므로 이 같은 불공정 노동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실상 국내 시장의 ‘이점’만을 취하며 그 이면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유사한 문제가 시위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상태다. ‘글로벌 공룡’ OTT 업체인 넷플릭스가 전형적인 원‧하청 구조로 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근로계약서도 쓰지 못한 수많은 노동자가 ‘고강도 저임금’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K콘텐츠가 수출된다고 해도, 노동자를 희생하는 ‘하청 구조’가 고착화하는 이상 흥행은 오래갈 수 없다. 글로벌 OTT 기업에 의존한 콘텐츠 배급이 우려를 사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