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일본 내 2개 공장 신규 건설 중인 TSMC, “첨단 3nm 칩 공장 추가 건립 검토”
공장 설립에만 200억 달러(약 25조원) 투입될 전망 ‘일본 정부' 보조금 덕에 건립 부담 낮아, 추진 가능성 높을 듯 반도체 굴기 재도전 중인 日, “일본 내 공장 지으면 국적 관계없이 보조금 지급”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일본에 세 번째 공장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선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을 포함한 차세대 기술의 핵심 기반이 될 AI 첨단 3나노미터 반도체가 생산될 예정이다. 이미 같은 지역에 2개 공장 건설을 진행 중인 TSMC가 추가 건립 검토에 나선 데는 국적에 관계없이 반도체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영향이 크다. 지난 30년간 반도체 산업의 쇠락을 겪은 일본 정부는 최근 미·중 패권 전쟁 등에 따른 국제 정세 변화를 틈타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미 2개 공장 짓는 TSMC, 이번엔 최신 3나노 기술
2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TSMC는 일본 남부 구마모토현에 3나노 공정 반도체 공장(코드명 ‘TSMC 팹-23 페이스 3’)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건설 시기와 토지 취득 방법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나 생산 장비를 포함해 약 200억 달러(약 26조원)가 소요될 전망이다.
TSMC는 이미 일본 구마모토에 칩 제조 공장 하나를 건설 중이며, 앞서 같은 현에 두 번째 공장 건립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소니와 덴소로부터 투자를 받아 건설 중인 첫 공장은 내년 말 12nm 칩을 만들기 시작할 예정이며, 이 공장 인근에 지어질 두 번째 공장은 이르면 2025년부터 5nm 칩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3nm 공정은 현재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최첨단 칩 제조 기술이다. 해당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 수는 아직 극히 적은 편이지만, 향후 인공지능 적용과 자율주행을 포함한 차세대 기술의 핵심으로 꼽히는 만큼 수요가 급증할 전망이다. 다만 블룸버그는 TSMC의 세 번째 공장이 실제 가동될 때쯤이면 해당 기술이 1~2세대 뒤처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현재 TSMC는 일본 내 세 번째 공장 건립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TSMC는 최근 이메일 성명을 통해 “회사는 현재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곳에 투자하고 있다”며 “일본의 경우 현재 두 번째 팹 건설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언론에 공개할 추가 정보는 없다”고 밝혔다.
국적 안 가리고 반도체 기업 유치 나선 ‘일본 정부’
TSMC가 일본 내 생산 설비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이유는 최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국내외 기업 유치 확대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국적을 가리지 않고 신규 제조 설비 건설 비용의 절반 수준의 보조금을 반도체 기업들에 지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TSMC의 구마모토현 제1공장 유치를 위해 건설 비용의 절반가량인 4,760억 엔(약 4조1,400억원)을 지원했으며, TSMC 제2공장에도 전체 투자비 2조 엔의 절반에 가까운 9,000억 엔(약 7조8,277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 자민당의 요시히로 세키 의원은 당시 TSMC 공장 유치 과정에서 “글로벌 반도체 산업 내 기술 혁신 경쟁이 치열하다”며 “공공과 민간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먼저 나서 우호적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메모리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1986년 일본 메모리 반도체 내수 시장의 20%를 외국 기업에 할당하도록 하는 ‘미·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되면서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최근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시작되자 반도체 산업 부활을 꾀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10년 이상 자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국적에 관계없이 설비 투자 비용의 최대 33%를 지원하고 있으며, 반도체 장비 및 소재 기업에는 최대 절반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 인사들도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한 대외적인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먼저 찾아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협력에 대한 약속을 성사시킨 바 있으며, 그 전날에는 미국 마이크론이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등 전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본 투자 확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에 TSMC 외에도 이미 일본에 공장을 짓거나 건립 계획을 내놓은 반도체 기업들이 늘고 있다.
국내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앞서 500억 달러(약 65조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보조금을 할당하고도 아직 기업들에 공격적으로 투자하지 않는 반면, 일본은 정부가 발 빠르게 나서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형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며 “이미 일본 반도체 산업이 강점을 가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선 최근 매출이 급증하고 있으며, 반도체 기업의 평균 주가 상승률도 시장 지수(닛케이255)를 웃도는 등 이미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