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커머스 업계 위협하는 중국 직구 시장, 올해만 2조원 ‘훌쩍’
2020년 3만 건 수준이던 중국 직구, 8만 건 돌파 목전 직격타 맞은 동대문 등 보세 패션 업계 ‘휘청’ 1세대 퇴장한 2세대 이커머스 시장에 위기론 팽배
중국 온라인 직구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거듭하며 국내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강조한 초저가 상품을 비롯해 배송 기간 단축, 무료배송 및 반품 등 각종 혜택을 내세운 중국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들이 국내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다.
의류를 비롯한 각종 패션잡화부터 가전제품,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을 키우고 있는 중국 업체에 맞선 우리 기업들은 서비스 차별화 또는 적극 협업 등 저마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
올해 중국 직구 건수 8만 건 예상
4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국내 중국 해외직구 건수는 6,775만 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직구 건수(5,541만 건)보다 많은 수준이며,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는 64.9% 급증한 결과다. 금액 기준 직구 규모 역시 18억2,400만 달러(약 2조3,830억원)로 지난해 전체 직구 규모(17억1,200만 달러·약 2조2,367억원)를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해당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11과 12월에 중국 최대 쇼핑 주간인 광군제(光棍节, 11월 11일)를 비롯해 블랙프라이데이, 성탄절 등 대규모 할인 행사가 집중된 만큼 연내 직구 건수 8만 건 돌파도 무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2020년 전체 직구 건수가 3만 건 남짓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마다 40% 가까운 성장세를 그려온 셈이다.
이처럼 가파른 성장의 배경으로는 알리익스프레스, 쉬인,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한국 시장 직접 공략이 꼽힌다. 2020년 이전까지의 중국 직구가 타오바오몰을 중심으로 한 기업간거래(B2B)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의 직구는 한국 소비자가 해외 결제 카드를 이용해 물품을 구매하면 중국 판매자가 직접 한국으로 물품을 배송하는 기업소비자간거래(B2C)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모바일 시장조사 기관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 11월 알리익스프레스 애플리케이션(앱)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613만3,758명에 달하며 국내에 서비스 중인 모든 이커머스 업체 중 쿠팡, 11번가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초저가 전략을 내세운 핀둬둬의 테무도 지난달 265만6,644명의 MAU를 기록하며 불과 3개월 사이 5배 넘게 급증한 이용자를 자랑했다.
국내 제조 기업 중에서는 중국 이커머스 업체와 적극적으로 손을 잡으며 판로 확대에 나서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 브랜드 전문관 ‘K-베뉴’에 입점한 LG생활건강, 애경산업, 쿤달, 깨끗한나라 등이 대표적 예다. 시장에서는 알리가 국내 브랜드를 자사의 플랫폼에 입점시킨 것과 관련해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과의 경쟁을 본격화하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저렴한 제품을 앞세운 중국 이커머스들의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그동안 약점으로 꼽히던 품질 및 CS 이슈 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하는지가 중국 이커머스 업체의 글로벌 시장 공략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동대문의 몰락이 예고한 중국 직구의 시대
중국 직구 시장 확대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는 트렌디한 의류를 저렴한 상품으로 판매하는 보세 패션 업계다. 트렌디 패션의 성지라 불리는 동대문 도매 시장이 중국 직구 시장의 급성장이 시작된 2020년을 기점으로 빠르며 쇠퇴한 것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동대문 도매 시장의 공실률은 10%를 상회했고, 중간 유통마진이 붙지 않은 중국산 의류를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된 소비자들은 동대문을 향한 발길을 끊었다.
과거 자국에서 구할 수 없는 새로운 상품을 찾아 동대문 시장을 찾던 중국 ‘큰손’ 바이어들도 광저우 등 자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중국산 의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동대문을 외면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쉬인 등이 직접 한국 소비자를 공략하고 나선 배경에는 동대문 시장의 내·외국 소비자를 빼앗아 온 자국산 저가 의류에 대한 자신감이 짙게 깔려 있는 셈이다.
나아가 빠르면 3일 배송이 가능해진 물류 시스템의 혁신도 중국 이커머스의 지속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과거 B2B 시스템하에서는 국내 소비자가 중국 현지 쇼핑몰을 통해 결제한 물품을 중국 내 배송대행지(배대지)로 받은 후 다시 배대지에서 국내 주소로 발송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탓에 기간과 비용 모두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이같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모두 없앤 만큼 가격 경쟁력은 한층 극대화하고 있다.
중국 참전으로 미궁 빠진 이커머스 최강자 가리기
중국 이커머스 업체의 가파른 성장세에 국내 업계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중국에서 물건을 사입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해 온 다수의 판매자는 중국이 같은 제품을 훨씬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며 무료 배송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다 보니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패션의류, 문구류, 미용소품 등 방대한 카테고리와 상품군에서도 경쟁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다나와, 인터파크, 이베이코리아의 연이은 매각으로 1세대 이커머스 시장이 저문 후 네이버, 쿠팡, 11번가 등이 각축전을 벌이던 2세대 시장은 중국 업체들의 분전과 최근 11번가의 경영난 소식이 맞물리며 부쩍 위기감이 팽배하다. 한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1세대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줄지어 매각됐다는 것은 시장의 급변을 의미한다”고 강조하며 “새로운 효용을 창출하는 확실한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커머스는 언제든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