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리스크’ 가시화, X 인수 참여 은행들은 ‘새장 속’
'욕설 논란'으로 기름 부은 머스크, 투자은행들은 '전전긍긍' X 대출채권은 '투자 불가능'?, "사실상 회수 불가능" '뚝뚝' 떨어지는 매출, 테슬라 및 국내 기업에도 영향 있을 듯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 겸 CEO를 믿고 옛 트위터(현 X) 인수금을 빌려준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트위터 경영이 부실해진 건 물론 최근 머스크가 광고주들에게 ‘Fxxx yourself’라고 공개적으로 강한 욕설을 하면서 불난 집에 스스로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기 때문이다. 사실상 트위터에 광고를 빼기 위해 눈치 보던 광고주들에게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아 미국 내 주요 은행들이 머스크에 등을 돌릴 가능성도 생겼다.
X 관련 대출, ‘부실대출’로 전락
15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즈(FT) 등에 따르면 머스크에 대출을 해준 7개 은행은 최근 관련 대출이 부실대출(NPL)로 전락해 헐값 인수 제안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머스크에 대출을 해준 7개 은행은 모건스탠리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미츠비시 UFJ 파이낸셜그룹(MUFG), BNP파리바, 미즈호, 소시에테제네럴 등이다. 당초 월가의 대형 헤지펀드와 신용 투자자들은 지난해 말까지는 7개 대주단에 선순위 부채를 1달러당 약 65센트에 매입하겠다고 제안했다. 트위터가 X로 사명을 변경하기 전까지만 해도 일단 대출이 65%가량 살아 있는 것으로 계산됐다는 의미다. 물론 이 당시 대출이 할인된 이유도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이후 임직원의 과반을 해고하거나 교체했기 때문인 만큼 머스크의 운영 정책과 관련이 깊다. 머스크는 인적 쇄신을 통해 트위터의 이미지를 빠르고도 정확하게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실제 머스크는 본인 대신 린다 야카리노를 CEO로 영입한 뒤 사명을 X로 바꾸기까지 했지만 실적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머스크가 이념적인 구설수에 오르는가 하면, 최근 반유대주의 논쟁에 휘말린 이후 대형 광고주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X는 사실상 내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추세다. 특히 머스크가 뉴욕타임스(NYT) 딜북 서밋에 참석해 X에서 광고를 뺀 광고주들에게 강한 욕설을 날리면서 상황은 수습 불가 상태까지 도달했다. ‘머스크 리스크’가 최대치에 달하기 시작한 셈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트위터 인수 당시 7개 은행이 빌려준 자금은 130억 달러(약 17조원) 규모로, 1주년을 맞이한 현재 손실 규모는 15%에 육박한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은행 안정성에 대한 규제기관의 감독이 강해지며 미국 주요 은행들은 대차대조표상 대출 규모를 축소하는 추세”라며 “그러나 머스크에 인수 자금을 꿔준 은행들은 ‘트위터 인수 대출’로 인해 대출금이 묶여 더 나은 곳에 대출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FT는 “부실채권을 전문으로 하는 금융사가 X의 대출채권에 대해 ‘투자 불가능’이란 평가를 내렸다”고 전했다. FT는 “현재 125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X 채권은 1달러당 60센트 미만으로 거래되는 것마저 행운의 영역에 가깝다”며 “사실상 회수 불가능한 부실채권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X 대출채권은 65억 달러(약 8조4,000억원)의 정기 대출과 60억 달러의 선순위 및 후순위 채권, 5억 달러의 리볼버로 나뉘어 있는데, 현재 거래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당장 부채를 매각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며 “2024년에도 은행이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부정적인 기류도 형성돼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영끌’한 머스크, X-테슬라의 ‘연관관계’
문제는 X의 부진이 테슬라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머스크는 지난 4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465억 달러(약 61조원) 규모의 트위터 인수 자금 조달 방안을 신고했다. 머스크는 이 가운데 225억 달러(약 29조4,000억원)를 은행 대출로 조달했는데, 이 중 50%에 달하는 대출의 담보가 테슬라 주식이었다. 지난 9월엔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할 당시 스페이스X에 10억 달러의 브리지 대출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관련 보도를 전한 WSJ는 “머스크는 자신이 보유한 회사 지분(42%) 중 일부를 담보로 제시했으며, 스페이스X는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10억 달러를 빌렸다”며 “머스크는 이를 전액 인출해 트위터 인수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스페이스X 관련 대출금은 돈을 빌린 그다음 달 바로 상환하긴 했으나, 상환 이전 머스크는 약 40억 달러치 테슬라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를 위해 자금을 ‘영끌’했다는 방증이다.
결국 X가 수익성 개선을 이루지 못하면 테슬라 영업에 악영향이 미치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머스크가 인수한 X의 모습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화’했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정도로 역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올해 4월 1일~5월 5일 약 5주 동안의 X 광고 수입은 약 8,800만 달러(약 1,150억원)로 지난해 동기간 대비 59%나 감소했다. X는 매출의 약 90%를 광고에 의존할 정도로 기업광고 매출이 중요하다. 즉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단 의미다. 특히 지난해 12월엔 월드컵 관련 광고 수익이 전망을 80%나 밑돌았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언론의 자유’를 울부짖던 머스크가 ‘자유로운 무법지대’ 아래 몰락해 가는 모습은 다소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X 인수 참여한 미래에셋, 손해 못 피할 듯
한편 X로부터 촉발된 머스크 리스크의 영향력은 우리나라에까지 미칠 전망이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이 머스크의 X 인수에 참여한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머스크의 당시 트위터 인수에 미래에셋자산운용은 3,000억원 규모로 참여했다. 전체 인수 규모에 비해 미래에셋의 투자 금액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국내 기업으로서 유일하게 인수에 참여했단 점에서 언론 등지의 관심이 모였다. 미래에셋이 머스크와 인연을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해 7월엔 스페이스X가 유상증자를 시행하자 1억 달러가량을 투자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는 당시 글로벌 큰손 투자자 사이에서 투자 경쟁이 치열했는데, 여기에 미래에셋그룹도 참여한 것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트위터 인수 당시 “이번 거래는 머스크 측과의 돈독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최근 두 차례 투자를 통해 머스크 측과 신뢰 관계가 생겼다”며 “트위터뿐 아니라 머스크의 다른 투자에도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또 다른 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다만 X 수익성 감소에 따라 머스크 리스크가 점차 가시화하면서 미래에셋 또한 손해를 피해 갈 수는 없게 됐다. 트위터 인수 이후 “새가 풀려나다(the bird is freed)”라며 이전 트위터의 운영 방식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의식을 드러냈던 머스크가, 정작 트위터 인수에 참여한 은행 및 기업들엔 새장을 덧씌운 모양새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