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하드웨어’ 격전지 된 VR 시장, 성장 열쇠 ‘소프트웨어’는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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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AR 기기 시장 판매 40% 급감, 메타 퀘스트3도 침체 못 막았다
애플 '비전 프로' 내년 상반기 출시, 시장 기대 부응할 수 있을까
VR 소프트웨어, '첨단 기술'로 무장한 하드웨어 시장 대비 빈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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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의 VR 기기 ‘메타 퀘스트 3’/사진=메타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전체 하드웨어 시장의 판매가 40% 급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VR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한 메타가 신제품 ‘메타 퀘스트3’를 내놓으며 시장에 다시금 불을 붙였지만, ‘혹한기’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는 차후 애플의 MR(혼합현실) 기기 ‘비전 프로’ 출시, VR 소프트웨어(앱) 시장의 발전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쪼그라든 VR·AR 시장, 각 기업은 ‘첨단 기기’ 격전

19일(현지시간) CNBC는 리서치 기업 시르카나의 데이터를 인용, 미국 내 VR 헤드셋과 AR 안경의 매출이 6억6,400만 달러(약 8,700억원)를 기록했다고 전했다(지난달 25일 기준). 이는 전년 대비 40% 급감한 수치다. 찬바람이 시장을 뒤덮자, 각 기업은 판도를 뒤집기 위한 ‘고성능’ 제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일례로 바이트댄스(틱톡 모회사)가 인수한 VR 기기 업체인 ‘피코’는 최근 신제품 출시 계획을 과감히 포기, 애플 비전 프로와 같은 고성능 제품 개발에 집중하기로 했다.

올해 10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메타의 VR 기기 ‘메타 퀘스트3’ 역시 전작인 퀘스트2 대비 200달러가량 비싼(500달러) 고성능 모델이다. 소비자들은 시장 선두 주자인 메타의 신제품에 눈에 띄는 관심을 보였다. 미 시장조사업체 서카나의 데이터에 따르면 메타 퀘스트3가 막 출시된 10~11월(8월), 미국 내 VR 헤드셋 판매 금액은 2억7,100만 달러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1억9,100만 달러) 대비 42% 증가한 수준이다. 하지만 메타의 VR·AR 부문을 담당하는 리얼리티랩스의 누적 손실(32조6,000억원)을 메꿀 만한 ‘대흥행’은 없었다.

시장은 내년 출시 예정인 애플의 혼합현실(MR)기기 ‘비전 프로’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애플은 올해 상반기 비전 프로를 공개했지만, 아직 정식 판매를 시작하지는 않은 상태다. 판매 시기는 빠르면 1월, 늦으면 3월경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전 프로는 퀘스트3의 수 배에 달하는 가격을 자랑하는 고가 첨단 모델이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높은 가격대와 기술력을 앞세워 개발자, 얼리어답터, 기업 등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본다.

애플 ‘비전 프로’, 시장 뒤집을 수 있을까

앞서 애플은 지난 6월 공간 컴퓨팅을 표방하는 MR기기 ‘애플 비전 프로’와 전용 운용체계 ‘비전OS’를 공개한 바 있다. 비전 프로는 4K급 2개 디스플레이를 합쳐 2,300만 픽셀을 밀집한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기기다. 무선통신, 애플 실리콘 칩셋, 비전OS 등으로 SW 구동을 최적화했으며, 시선 추적 시스템과 공간 음향 시스템 등을 탑재해 역대 최고 수준 MR 기기 하드웨어를 구현했다. 12개의 카메라와 5개의 센서, 6개의 마이크는 입력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해 실감 나는 공간 체험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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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출시 예정 MR 기기 ‘비전 프로’/사진=애플

애플은 비전OS의 3D 인터페이스를 통해 앱이 ‘사각형 화면’의 제약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매직 키보드와 매직 트랙패드 등을 연동해 사용자가 작업에 맞는 완벽한 공간을 구성하거나, 컴퓨터를 비전 프로에 무선 연동해 활용할 수도 있다. 콘텐츠 다양화를 위한 유니티스튜디오, 디즈니플러스 등 콘텐츠 기업과의 협업도 예정돼 있다. 판매가격은 3,499달러(약 456만원)부터 시작한다.

업계에서는 비전 프로의 가격대가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격 장벽이 높은 만큼 시장 판도를 뒤집을 만한 화제성을 이끌어내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2014년 애플워치 공개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 흥행에 실패할 경우, 애플은 무시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이에 지난 10월에는 애플이 내부적으로 1,500~2,500달러대의 ‘보급형’ 비전 프로를 개발 중이라는 내부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하드웨어 발전 발맞춰 소프트웨어도 발전해야

VR 헤드셋 기기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매력적인 하드웨어만으로 시장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VR 기기의 매력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가 성장의 ‘진짜 열쇠’라는 분석이다. VR 기기는 스마트폰, PC 등 여타 기기가 충족시킬 수 없는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가능성을 실제 시장 성장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현재 가장 유망한 VR 소프트웨어는 게임이다. 소비자는 VR을 통해 전통적인 사각 디스플레이에서 벗어나 게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실제 최근 시장에서는 ‘비트 세이버’, ‘하프라이프 알릭스’ 등 VR 환경 기반으로 제작된 대형 게임 IP(지식재산권)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존 유명 IP가 VR 게임으로 출시되는가 하면, VR에 중점을 둔 신규 게임들도 꾸준한 매출 성장세를 보이는 양상이다.

기업 대상 소프트웨어 역시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작업 시뮬레이션, 시스템 시각화, 소규모 회의 등 기업 업무와 VR을 연결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VR 애플리케이션 활용도가 높아질 경우, 소비자는 VR 헤드셋과 주변 기기를 더 많이 찾게 된다. 기기 보급에 속도가 붙으면 VR 콘텐츠의 소비량 역시 증가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이 서로 성장을 지지하는 ‘선순환’이 발생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