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인 나라? 인재들의 나라!” 인텔, 이스라엘에 반도체 공장 증설
웨이퍼 제조 공장 팹28 증설
2028년 가동, 수천 개 일자리 창출 기대
‘글로벌 파운드리 2위 도약’ 야심 통할까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이 전쟁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지를 신설한다. 인텔은 올해 미국을 비롯해 독일, 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 생산 시설을 신설하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2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인텔이 이스라엘의 우수한 과학 인재를 영입해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가자지구에서 불과 ‘42km’ 키르얏 갓 공장 증설
26일(현시 지각) 이스라엘 정부는 인텔과 함께 250억 달러(약 32조3,625억원)을 투자해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는 소식과 함께 전체 투자금의 12.8%에 해당하는 32억 달러(약 4조1,418억원)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투자 규모는 이스라엘에서 단일 기업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인텔은 이스라엘 남부에 위치한 키르얏 갓에 있는 웨이퍼(반도체 원판) 제조 공장을 확장한다. 키르얏 갓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가자지구에서 약 42km 떨어진 곳으로, 인텔은 이곳에서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칩을 생산하는 ‘팹28’ 공장을 운영 중이다. 차세대 공정 생산을 수행할 추가 공장은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확장에 나선다.
인텔의 이스라엘 사업은 1974년에 시작돼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현재 4개의 이스라엘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 사업장에서 고용 중인 직원은 약 1만1,700명에 달한다. 이스라엘에서 생산된 인텔 제품의 수출액은 90억 달러(약 11조 6,469억원)로 전체 하이테크 수출 중 5.5%를 차지한다.
인텔은 지난 6월 상반기 “2024년까지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 2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현재 글로벌 파운드리 2위 기업은 삼성전자로, 인텔을 삼성전자를 추월하기 위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의 하이 NA EUV(극자외선) 노광(빛을 쏴서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작업)장비를 최우선 확보하기도 했다. 하이 NA EUV는 2나노 초미세 파운드리 공정의 핵심 장비로 파운드리 업계의 ‘게임체인저’로 꼽힌다.
글로벌 공급망 확대를 위해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격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인텔을 올해에만 독일 마그데부르크 등에 300억 유로(약 42조8,355억원)를 들여 반도체 공장 2곳을 증설할 계획을 밝혔으며, 폴란드 브로츠와프에도 46억 달러(약 5조9,528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알렸다. 미국에서도 기존 운영 중인 오하이오, 애리조나 공장 등에 자금을 추가로 투입해 시설을 확장하고 있다.
“탄력적 공급망 육성 계획의 일부, 일자리 수천 개 창출할 것”
전 세계적 공장 증설에 한창인 인텔이 각종 지정학적 위험 요소가 산적한 이스라엘에까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배경에는 이스라엘의 우수한 기술 인력을 유입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기발한 창의력과 독창성을 갖춘 기술 인재들의 나라’로 불리는 이스라엘은 세계 5대 기초과학 연구기관 중 하나인 바이츠만 과학 연구소를 비롯해 테크니온공대, 히브리대학, 벤구리온대학 등 유수의 연구 기관을 거친 유능한 인재들이 넘쳐나는 곳으로 꼽힌다.
이들 연구 기관은 저마다 특화된 학업 제도 운영을 통해 이스라엘의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바이츠만 과학 연구소는 청소년 대상 과학교육을 통해 기초 인재양성에 주력하고 있으며, 테크니온공대는 철저한 학업성취도 감시제를 운영하면서도 학생들의 실용적 연구를 위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 벤구리온대학은 이스라엘 국방부(IDF)와 손잡고 군 복무를 앞둔 청년들이 국방부 산하 정보·컴퓨터부대에 배치돼 군 복무와 학위 과정을 동시에 밟을 수 있도록 했다. 히브리 대학 역시 군 복무와 학위과정을 같이 할 수 있는 과학부대 개설을 앞두고 있다.
인텔은 이번 이스라엘 키르얏 갓 공장 증설을 통해 2035년까지 수천 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인텔 관계자는 이와 함께 “키르얏 갓 공장 확장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추진 중인 투자와 함께 탄력적인 글로벌 공급망 육성 계획의 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인텔은 공장 확장 외에도 향후 10년간 이스라엘 공급 기업으로부터 600억 셰켈(약 21조 4,002억원) 상당의 제품 및 서비스를 구매할 예정이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은 “전 세계가 반도체 설비 유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이스라엘이 악의 세력과 무력 충돌을 이어 가고 있는 시점에 결정된 이번 투자는 이스라엘의 기술과 경제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