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 전문가들 “자율 규제가 더 바람직하다”
3월 22일부터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 본격 시행 확률형 아이템 유형 및 확률정보 투명 공개가 주요 골자 법적규제보다는 자율규제가 더 실효성 높을 것이라는 지적 잇따라
오는 3월부터는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구체적인 확률 수치를 게임 이용자들이 알기 쉽게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번 규제가 확률형 아이템 과소비를 막을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확률의 구체적인 수치를 알게 된 게임 이용자들이 해당 정보를 기반으로 구매 횟수를 기존보다 늘리는 등 과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는 게임 업계의 자율 규제에 맡겨 공공 부문보다 효율적인 규제를 해 나가는 편이 더 올바르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3월부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반드시 공시해야
2일 문체부는 제1회 국무회의에서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의무화 내용 등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돼 3월 22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라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을 제공하는 모든 게임물의 유형과 확률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 등을 표시하기 위해 시행령 제19조의2 및 별표 3의 2등을 신설한 것이다.
개정안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확률형 아이템 유형 및 표시 정보를 빠짐없이 규정했다. 이를 통해 게임이용자들에게 친숙한 확률형 아이템 유형인 캡슐형, 강화형, 합성형, 컴플리트가챠, 천장 제도 등의 확률 정의가 더욱 뚜렷해졌다. 나아가 새로운 확률형 아이템 유형이 등장할 경우 문체부 장관이 고시로 확률정보를 추가로 표시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마련됐다.
확률형 아이템을 제공하는 모든 게임물은 원칙적으로 확률 정보 등을 표시해야 한다는 규정도 시행령에 명시됐다. 다만 ▲청소년 게임제공업과 일반게임제공업에 제공되는 게임물 ▲교육과 학습, 종교 등 등급 분류 예외의 용도로 제작되는 게임물 ▲게임물을 제작, 배급 또는 제공하는 자 모두가 3년간 연평균 매출액 1억원 이하인 중소기업 등의 경우엔 표시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어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 정보 등은 게임이용자가 확인하기 쉬운 형태로 제공돼야 한다. 공급 확률은 백분율로 표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소수점 이하 특정 자리에서 반올림해 표시하도록 규정됐다. 또한 ▲표시 대상 정보 변경 시 사전 공지 원칙 ▲게임물, 홈페이지, 광고·선전물 등 매체별 표시 방법 ▲검색 가능한 형태로 정보 제공 등을 규정하면서 게임 이용자들의 확률정보 접근성을 강화했다.
아울러 문체부는 24명 규모로 구성된 확률형 아이템 모니터링단을 설치하고, 확률정보 미표시와 거짓 확률 표시 등 법 위반 사례를 철저히 단속할 방침이다. 또한 자체 등급 분류사업자(삼성전자, 구글, 애플 등)와 협업해 표시 의무 위반 게임물이 자체 등급 분류사업자 플랫폼을 통해 유통될 수 없게끔 하고, 국내 대리인 제도를 추진하는 등 해외 게임사도 확률정보 공개 의무를 따를 수 있도록 관리할 계획이다.
전문가들 “오히려 과소비 유인 키울 수도”
다만 이번 개정안을 둘러싸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개정안의 핵심 취지는 확률형 아이템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판단 아래 구체적인 확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용자들이 손익비를 깨닫게 하고 도박 심리를 낮추겠다는 건데, 확률형 아이템과 사행행위의 차이를 면밀히 살펴보면 확률형 아이템 구매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이용자들의 ‘도박 행위’가 아닌 과도한 ‘소비’ 행동에 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행성 잠재우기’에 초점을 맞춘 개정안의 제도적 실효성은 사실상 미비하며, 오히려 과소비 유인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확률형 아이템의 경우 일정 확률에 따라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만큼 ‘사행적’ 요소가 포함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사행행위와 확률형 아이템의 속성을 보면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물론 확률형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선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획득 과정에 있어서도 우연성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로 이뤄져 있는 만큼 사행적 요소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행행위에 해당하기 위해선 본질적으로 이용자에게 재산상의 이익이나 손실을 줘야 하는데, 확률형 아이템은 결과물로 현금이 나오는 게 아닌 게임 내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나온다. 즉 현실 세계의 금전적 가치로 곧바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행행위 요건 중 핵심 요소인 환가(재산상 이익 또는 손실) 가능성 자체가 확률적 아이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게임 이용자들의 확률형 아이템 구매는 소비 활동의 일환이지 사행행위로 규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개정안을 통해 공개된 게임 아이템의 확률이 극단적으로 낮지 않은 이상, 공개된 수치를 기반으로 실제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게임 이용자들이 구매를 반복할 유인이 커질 것이라는 비판도 잇따른다.
무조건적인 법적 강제성보다는 업계 자율이 우선돼야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처럼 무조건적인 법적 규제를 가할 경우 국내 게임산업 생태계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과거 ‘셧다운제’나 ‘4대 중독법’ 등 계속적인 법적 규제로 인해 산업 성장에 지체를 보였던 사례를 감안하면, 이번 추가적인 법적 규제 또한 오히려 국내 게임산업 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규정안 적용에 있어 산업적 특성을 고려해서 효율적 규제가 가능하고, 규제 재·개정의 유연성, 규제 비용 절감, 높은 규제 준수 유인책, 규제 연착륙이 가능한 자율규제가 법적규제에 우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에서도 해당 문제에 대한 대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2015년부터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강령을 시행함으로써 이용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2017년과 2018년에는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를 통해 자율규제를 한층 더 강화했다. 미국 등 주요국의 경우에도 업계 스스로 룰을 정해 이를 철저히 노력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업계만 살펴봐도 업체들은 자율적으로 고객들에게 제품의 대한 정확한 확률 정보를 제공해 최고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어기는 업체가 있을 경우 업계 전반이 퇴출을 요구한다. 고객은 물론, 정부로부터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비슷한 맥락으로 게임 업계에선 관련 기술과 사업 모델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정부 등의 공공 영역에서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면서 자율규제에 대한 논의가 성숙해지고 있는 과정에서 새로운 법적 규제로 인해 그간 축적된 노력과 노하우가 사라지는 것도 아쉽다는 의견도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