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가는 ‘원전 르네상스’ 불씨, SMR은 페이퍼 원전일까
美 뉴스케일, SMR 6기 건립 프로젝트에서 손 뗐다 물가상승에 의한 사업비 급등 및 고객사 미확보가 주원인 30여 년간 자금 쏟아부었는데, 국내 SMR 업계도 적신호
원자력 기술의 종주국이자, 세계 최대 원전 운용 국가인 미국의 주도하에 세계 원자력발전 열풍이 되살아났지만 정작 미국 내에서는 원전 르네상스의 불씨가 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1월 민주당이 소형모듈원자로(SMR) 예산을 대폭 삭감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사실상 실적이 전무한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美 최초의 SMR 사업 좌초 이후 원전 업계 난관 봉착
3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최초의 SMR 사업이 좌초된 이후 원전 업계가 처한 난관들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원전 스타트업 뉴스케일파워는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부지에 SMR 6기를 짓기로 한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2년 만에 해당 SMR의 전력 판매단가를 53%가량 인상한 뒤로 충분한 고객사(전력 구매자)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같은 달 엑스에너지도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을 통한 미국 증시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이에 대해 글로벌 투자은행인 TD코웬의 마크 비앙키 애널리스트 “(논란이 있는) 스팩 합병 방식에 대한 자본시장의 회의감은 차치하고 원전 설비 설치 자체에서 고금리, 물가상승에 의한 사업비 급등이 문제”라며 “뉴스케일 사업 취소, 엑스에너지 거래 무산 등 연이은 소식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수년씩 누적된 사업 지연도 투자자들의 외면을 초래한 주범으로 꼽힌다. 지난해 조지아주에 30년 만에 새로 들어선 대형 원전 보글(Vogtle)이 대표적이다. 보글의 가동은 당초 계획보다 7년 이상 지연됐고, 그 사이 사업예산 초과 규모만 170억 달러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컬럼비아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신(新)원자로의 비용 불확실성’이란 보고서에서 “보글 사례는 미국 땅에 원전 건설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명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국내 SMR 사업도 성과 전무
사실 핵발전 시설의 규모를 줄여 일체화(모듈화)하는 시도는 지난 30여년 간 국내외에서 계속 실패해 왔다.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서다. 2017년 미국의 원자력기업 웨스팅하우스의 파산이 대표적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1999년 중형모듈원전인 AP600(650MW)의 설계를 미국 핵규제위원회(NRC)로부터 인증 받았지만, 당시 가스복합발전 대비 가격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 1기의 발주도 받지 못했다. 이에 웨스팅하우스는 용량을 확대한 AP1000(약 1,100MW)을 재개발, 2008년에 설계인증을 받았으나, 인증보다 더 까다로운 건설·운영 인허가 과정에서 전기사업자들로부터 세 차례나 설계 수정을 요구받으면서 인증 지연과 건설 비용 급증으로 파산했다.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스마트원전(100MW급 일체형모듈원전) 개발사업은 1997년부터 시작됐는데, 경제성을 이유로 한국전력이 반대 입장을 표한 데다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서 2008년 공식 폐기됐다. 이후 2011년부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수출용으로 재추진을 꾀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2021년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사업’을 추진해 2022년 예타를 통과했으나 역시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소형화·모듈화가 어려운 데다 규모를 줄여도 안전비용은 대형 원전과 크게 차이가 없는 핵발전의 특성이 원인이다.
이를 두고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지난해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담긴 ‘한국원전 수출제약 문구’들은 핵발전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자국우선주의로 읽힐 수 있으나, 그만큼 판매할 곳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저물어가는 세계 원전시장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중에서도 SMR은 단 1기의 실험로조차 건설해본 적 없는 설계도면에서만 존재하는 페이퍼 원전일 뿐이라는 평이다. 그간 국내외 개발사들이 SMR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음에도 실적이 전무한 현실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