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기업 40% “관련 법령 구체화할 때까지 생성형 AI 도입 미룬다”
효율성보다 안정성 추구하는 콘텐츠 기업들 정부 가이드라인에도 ‘기준 모호’ 지적 잇따라 “권리 인정 범위 명확해야 기술 발전 의미 있어”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활용이 산업 전반으로 확대하는 가운데, 많은 콘텐츠 기업이 관련 법령의 미비를 이유로 도입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간 생성형 AI를 둘러싸고 꾸준히 거론된 저작권 관련 문제가 기술의 확산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생성형 AI 도입 ‘걸림돌’ 된 법의 허점
8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한콘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까지 생성형 AI를 도입하지 않은 1,838개 기업 중 40.8%(1순위+2순위 합산)가 도입에 장애가 되는 요인으로 ‘관련 법령의 미비’를 꼽았다. 많은 기업이 AI 도입으로 기대할 수 있는 업무 효율성보다 위험성을 더 크게 인식한 모양새다. 이어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의 불명확성(38.5%)’과 ‘데이터 유통 관련 엄격한 규제(38.3%)’, ‘양질의 데이터에 대한 접근 제한(20.9%) 등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데이터 활용을 비롯한 저작권 문제가 가장 민감한 요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로는 생성형 AI가 주로 활용되는 분야가 콘텐츠 제작 분야라는 점이 꼽힌다. 한콘진에 따르면 117개 콘텐츠 기업 중 59.8%(1순위+2순위)가 생성형 AI를 제작 과정에 활용했으며, 업무 환경(17.1%), 창작자 환경(12.8%), 플랫폼 환경(8.5%) 등에 활용하는 기업은 20% 미만에 그쳤다.
정부는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 등을 발표하며 산업 현장의 생성형 AI 활용을 장려하고 나섰다.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해당 안내서에는 ▲AI 사업자에 대한 안내 사항 ▲저작권자에 대한 안내 사항 ▲인공지능 이용자에 대한 안내사항 ▲생성형 AI 산출물의 저작권 등록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또한 생성형 AI 산출물의 저작권 등록과 관련해 “일련의 표현 행위에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없는 AI 산출물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등록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다만 “AI의 산출물에 수정, 증감 등 인간의 창의적 작업이 추가돼 해당 부분에 저작물성이 인정되는 경우는 저작권 등록이 가능하다”고 예외를 뒀다. 문체부는 “전 세계적 거대 흐름인 AI에 적극 대응하고, 산업 발전과 창작자 보호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AI-저작권 대응 기반을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갈수록 커지는 저작권의 가치, 명확한 기준 필요성↑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에도 업계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저작권의 유무 및 그 범위에 따라 콘텐츠의 수익성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저작권 인정을 위해 허용 가능한 생성형 AI의 활용빈도 및 비중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최근에는 특정 창작자의 기존 저작물을 생성형 AI가 학습한 후 만들어 낸 산출물에 대한 저작권을 해당 창작자에게 인정할지 여부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저작권 침해 양태가 점점 지능화, 조직화되고 있다는 점도 생성형 AI 산출물의 저작권 인정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동영상과 웹툰, 웹소설 등 여러 콘텐츠 산업을 위협하는 저작권 침해 규모가 많게는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면서다.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장은 “콘텐츠의 저작권 침해 범죄 행태가 날로 교묘해지며 창작자들의 창작 의욕을 꺾고 있다”며 저작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과거 콘텐츠의 ‘일부’로 여겨지던 저작권은 갈수록 그 존재감을 키우며 특정 상품의 가치를 좌우하는 중심축으로 거듭나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10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10만여 편의 국내외 방송 및 영화를 불법 송출한 일당이 체포된 사건도 있었다. 해당 사건에서 비롯된 피해는 업계 추산 약 160억원으로, 현재 부당이득 반환과 벌금 등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저작권의 인정 및 가치 산정은 여전히 그 기준이 모호하다. 많은 기업이 생성형 AI의 도입이나 개발을 무기한 연기하는 이유다. 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최근 게임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웹툰 제작 과정에 생성형 AI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데, 만약 AI 활용 작품의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기술의 발전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생성형 AI 학습과 관련한 저작권은 물론 산출물에 대한 저작권 여부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