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직구 시장 성장세는 맞는데, 판매할 상품은 ‘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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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부자 대한민국, K-culture로 역직구 호황
다만 K-culture에만 국한, K-뷰티 등은 하락세
업계 "경쟁력 제고할 수 있도록 통관 규제 철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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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이브, 기생충, 방탄소년단, 오징어게임/사진=스타쉽, CJ E&M, 빅히트, 넷플릭스

최근 국내 역직구 시장이 몸집을 불리고 있는 가운데, K-culture와 관련된 상품 외에는 마땅히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전무하단 지적이 제기됐다. 22일 딜리버드코리아가 지난해 자사 플랫폼 내 역직구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판매량 상위 10위권 상품은 전부 K-pop과 관련돼 있다. 역직구 상품 다양성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단적인 예시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역직구 시장 성장을 위해 통관 규제부터 철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직구 시장, 2019년부터 성장세

해외 소비자들이 한국 판매자의 상품을 구매하는 ‘역직구’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역직구 시장의 트렌드를 대표할 올해의 키워드로 ‘W.O.R.L.D’가 꼽혔다. 22일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솔루션 딜리버드코리아는 지난 한 해 동안 이뤄진 역직구 관련 빅데이터 24만3,321건(배송대행 68.6%·구매대행 31.4%)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 같은 키워드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딜리버드코리아 관계자는 “W.O.R.L.D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상품이 글로벌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간다는 의미를 담은 키워드”라고 설명했다.

각각의 키워드는 △세계적인 K-팝 열풍(Wide K-POP Popularity) △가장 인기 많은 음반(Outstanding Album Sales) △역직구 국가 1위 미국(Remarkable USA) △국가별 다양한 선호 상품(Likes differ) △역직구 수요 증가 전망(Demand on the rise)을 뜻한다. 실제로 지난해 딜리버드코리아의 거래에서 역직구 판매량 상위 10위권 상품은 모두 K-팝과 관련된 상품이었다. 상위 10위권에 랭크된 상품의 거래 건수는 11만2,435건으로, 전체 건수의 46% 비중을 차지했다.

상품별 비중은 K-팝 음반이 4만9,878건(20.5%)으로 가장 두드러졌고 포토카드, 매거진 등 K-팝 연계 상품이 4만1442건(17%), K-팝 파생 상품(열쇠고리·셔츠·응원봉·스티커·인형·가방·아크릴 스탠드) 2만1115건(8.6%) 순으로 집계됐다. 역직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 국가는 미국이었다. 상위 20위권 국가의 거래 건수를 분석한 결과 미국에서 발생한 거래는 8만484건(35.8%)으로 다른 국가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판매 건수를 기록했다. 두 번째로 높은 수요를 보인 국가는 1만7,508건(7.8%)으로 집계된 독일이었으며 △멕시코 1만4,583건(6.5%) △영국 1만4,030건(6.2%) △싱가포르 1만2,106건(5.4%) 등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역직구 시장의 가능성이 점차 가시화되자 국내 이커머스 기업도 역직구 사업을 확대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쿠팡은 지난해 말 대만 시장에 로켓배송·직구 모델을 적용하고 현지 공략에 역량을 쏟고 있으며, SSG닷컴은 지마켓글로벌과 협력해 전 세계 80여 개국 소비자들에게 965만여 개에 달하는 패션 뷰티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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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태국한국문화원

큰손 ‘중국’의 침묵, 주춤하는 K-뷰티 시장

다만 K-팝과 관련이 없는 상품군의 경우 감소세가 뚜렷하다. 특히 그동안 고공행진하던 K-뷰티 제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기준 면세점 역직구 판매액은 총 1,112억원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69.4% 감소했다. 국가별로는 이른바 ‘역직구 큰손’인 중국에서의 판매액이 전년 대비 62.1%나 급감했으며 미국, 일본 등도 각각 29.7%, 16.3% 감소했다. 이와 관련해 김서영 통계청 서비스업동향과장은 “중국의 구매 대리상(따이궁)들이 한국 온라인 면세점에서 주문하는 화장품 판매가 큰 폭으로 줄어든 영향”이라며 “중국의 경기 침체가 가시화된 탓에 소비 전반이 위축된 탓”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산 제품의 품질과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점도 역직구 판매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해 북경 주재 한국 기업인 A씨는 “우리 기업들은 중국의 발전을 잘 모른다”며 “코로나 이후 지난 3∼4년간 중국 제품들의 품질은 크게 개선되고 경쟁력이 높아졌으나, 중국과 단절됐던 한국 기업은 과거 중국만을 생각하고 과거 수준의 상품으로 시장에 접근하면서 중국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국 기업인인 B씨도 “중국 경쟁사의 기술력과 정밀도가 많이 개선되고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중국 정부가 대규모 자금 지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기업 돕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업계 “역직구 시장 확대 위해 기업·정부 팔 걷어붙여야”

이에 역직구 시장의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국내 이커머스가 중국 의존적인 태도를 버리고 역직구 품목을 다양화해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커머스가 적극적으로 국내 셀러(판매자) 발굴에 나서야 한다”며 “개인 혹은 중소규모 업체가 대부분인 셀러들을 위해 해외 국가별 이커머스 시장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 및 입점 가이드를 제공하고, 쉽게 유통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미 해외 이커머스 기업의 경우 국내 셀러들이 부담 없이 입점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 이베이재팬은 셀러들이 판매하는 상품에 대해 무료 촬영 대행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무료 반품 서비스, 수수료 할인 정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언어 장벽 없이 일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일본어 무료 번역 지원도 제공한다. 동남아·대만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의 한국 법인 쇼피코리아의 경우 밀착 인큐베이션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통관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상 운송에도 목록통관이 적용되는 국가를 늘릴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목록통관은 소액 물품은 송·수하인 이름, 전화번호, 주소, 물품명, 가격 등이 적힌 송장만으로 통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현재 한국에서 중국으로 보내는 해상 운송은 목록통관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본 등 한국 상품에 관심이 많은 주요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 해상 운송에 목록통관 적용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에 업계는 관세청이 고시를 개정해 목록통관 수출이 가능한 세관을 3곳(인천, 평택, 김포)에서 전국 34곳으로 확대하면 역직구 편의성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