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국내 게임업계 휩쓰는 중국산 게임, 소비자 불신 뚫고 급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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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 시장 공략 나선 중국 개발사, 인기 순위 석권
캐주얼 게임 유행 조짐, MMORPG 주력 국내 개발사 밀려나
"또 적당히 돈 벌고 도망치는 것 아니냐" 고질적 불신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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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게임사들이 국내 게임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특히 비교적 시간과 비용 부담이 적은 게임이 인기를 끄는 모바일 게임 시장의 경우, 간단하고 직관적인 매력을 앞세운 중국산 게임들이 인기 순위를 줄줄이 꿰차는 양상이다. 이에 이용자 부담이 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에 힘을 쏟던 국내 게임사들은 ‘킬러 IP(지식재산권)’ 부재 속 서서히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상위 게임 10개 중 3개는 중국산?

최근 중국 게임사들은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구글 앱스토어(구글 플레이) 통계에 따르면, 13일 기준 매출 상위 10개 게임 중 중국 게임은 3개에 달했다.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게임은 중국 게임사 퍼스트펀이 개발한 슈팅 게임 라스트워(LastWar)였다. 라스트워는 지난 1월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5위에 진입했으며, 이후 두 달 만에 2위 자리를 꿰찼다.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한 광고를 공격적으로 노출해 이용자를 끌어모은 결과다.

4위를 기록한 게임은 ‘버섯커 키우기(Legend of Mushroom)’였다. 버섯커 키우기는 지난해 12월 22일 ‘방치형 역할수행게임(RPG)’이라는 특징을 강조하며 국내에 상륙, 꾸준히 매출 순위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엔 국내 양대 마켓 통합 매출 순위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하며 국내 시장 저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글로벌 모바일 시장 데이터 분석 기업 센서타워(Sensor Tower)에 따르면, 버섯커 키우기의 글로벌 누적 매출(9,700만 달러·약 1,280억원) 중 66%(6,400만 달러)가 국내 시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산 생존 전략 게임인 ‘WOS: 화이트아웃 서바이벌(Whiteout Survival)’ 역시 매출 순위 7위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 시장 내 인기를 뽐냈다. 업계에서는 중국 게임이 줄줄이 국내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는 현 상황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이 흘러나온다. 이전까지 자극적인 콘텐츠와 ‘저급 마케팅’을 앞세우던 중국 게임사들이 전략 방향을 전환, 본격적으로 글로벌 게임 시장 공략에 나섰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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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MMORPG 게임 리니지M/사진=NCSOFT

MMORPG 시대 끝났나, 국내 게임사 ‘한숨’

중국 게임이 국내 시장을 석권하는 사이, 토종 게임사들은 줄줄이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모바일 빅테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MobileIndex)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 월간활성이용자수(MAU) 상위 5위권 내에 국산 게임의 이름은 없었다. 1위를 꿰찬 것은 중국 텐센트의 자회사인 핀란드 슈퍼셀이 개발한 ‘브롤스타즈(215만 명)’였다. 업계에서는 일부 충성 고객의 대규모 과금에 의존하는 국산 MMORPG 게임이 본격적인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최근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짧은 게임 진행 시간 △간단한 조작과 게임 구성 △저렴한 과금 체계 등을 앞세운 캐주얼 장르가 인기를 끌고 있다. 라스트워, 버섯커 키우기, WOS 등 최근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중국산 게임 역시 대부분 캐주얼 장르다. 문제는 우리나라 게임업계가 캐주얼 게임과는 사실상 정반대 성격인 MMORPG 장르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MMORPG는 치열한 유저 간 경쟁, 고강도 과금 유도 등을 앞세워 이용자 피로도가 상당한 장르다.

실제 모바일 게임 매출 상위권을 석권하던 리니지M, 오딘 등 국산 MMORPG 게임들은 중국산 캐주얼 게임에 그 자리를 속속 내주고 있다. 매섭게 몰아치는 중국산 게임의 공세를 뚫을 ‘킬러 IP’ 역시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실정이다. 시장의 기대를 모았던 국산 작품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며 한국 게임업계의 ‘대작 공백기’가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산 게임에 대한 소비자 불신

다만 소비자 사이에서는 중국산 게임에 대한 ‘불신’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과장 광고, 미흡한 고객 대응 등 무책임한 게임 운영 방식이 소비자들의 불만을 산 것이다. 평상시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는 한 소비자는 “2020년에 중국산 게임 ‘샤이닝니키’가 무책임하게 서비스를 중단하며 소비자가 큰 불편을 겪은 일이 있었다”며 “그 이후로 중국산 모바일 게임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바닥났다”고 말했다. 꾸준히 누적돼 온 중국 개발사의 불성실한 운영 사례로 인해 중국산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2020년 중국의 게임 개발사 페이퍼게임즈는 자사 게임 샤이닝니키에서 동북공정 논란이 번지자, 한국인 이용자를 조롱하더니 돌연 서비스를 중단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당시 상당수의 국내 이용자가 정상적인 환불 절차를 밟지 못하며 게임업계 전반에 막대한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버섯커 키우기 개발사 Joy Nice Games(조이 나이스 게임즈)가 이전 서비스한 게임 ‘개판오분전’을 장기간 방치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중국 게임 개발사들의 안이한 인식이 변하지 않은 이상, 언제든 샤이닝니키 사태와 같은 소비자 기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이 같은 리스크에도 불구, 중국 게임이 꾸준히 국내 시장 영향력을 키워갈 것이라고 본다. 현재 국내 게임업계에는 중국산 게임의 공격적인 공세에 대항할 만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국내 게임사가 주요 수요층의 특징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유사한 형태의 MMORPG 게임을 반복 생산하고 있다”며 토종 게임이 본격적인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