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대응에서 ‘생애주기별 규제 대응’으로, 규제 패러다임 변혁 나선 중기부, 지금 필요한 건 ‘속도’
패러다임 전환 나선 중기부, "성장주기별 규제 발굴 방식으로 나갈 것" 박근혜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지지부진', 업계 "윤석열 정부도 글쎄" 부진 이겨내려면 필요한 건 '속도', "시간 지나면 혁신 못 이룬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규제를 수요자 맞춤형으로 사전 발굴해 혁신하는 방향으로 규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 개별 기업 건의를 수렴하던 기존의 1:1 방식에서 탈피해 소상공인, 중소기업, 벤처·스타트업을 그룹별로 묶어 성장주기별 규제 발굴에 나서겠단 취지다. 문제는 속도다. 정부가 규제 패러다임 변혁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패러다임 변화를 시사한 건 좋지만 이것이 규제 당사자인 기업에 체감 가능한 수준까지 이어지려면 정부 차원의 ‘드라이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기부 중소기업 생애주기 규제현황 분석 나섰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최근 소상공인·중소기업 생애주기에 따른 규제현황 분석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제조 중소기업과 외식업 소상공인 사례를 가정하고 각각 창업부터 중견기업까지 성장하거나 창업에서 폐업까지 이뤄지는 과정에서 매출액·상시근로자 수에 따라 부과되는 규제 현황, 4대 사회보험료·법정 의무교육비용과 같은 비용 부담 등을 분석하겠단 것이다.
이들은 소상공인 식품 제조·가공 시설·위생 기준에 있어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가 있진 않은지, 중소기업이 수도권 공장설립·연구개발(R&D)·인력 채용 등과 관련해 과도한 부담은 없는지 등 조사도 함께 실시한다. 분석을 거쳐 제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최우선 규제 개선과제 각각 10개를 도출하는 게 현재로선 최종 목표라고 중기부는 전했다.
중기부가 생애주기 규제현황 분석에 나선 것은 현행 법령 위주 규제 개선 방식의 현장 체감도가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중기부는 정부의 기업규제 혁파 의지에 따라 중소기업 옴부즈맨을 중심으로 현장 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중기부 옴부즈맨 현장소통 행보는 67회, 규제발굴·접수는 3,633건에 달한다. 그러나 2022년 한국경제인협회(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규제 개혁 체감도는 92.6점으로 대기업 99.2점보다 6.6점 낮았다. 같은 해 중기 옴부즈맨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자영업자·소상공인의 규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45.7점에 불과했다. 결국 정부의 헛손질이 거듭 이어지고 있단 의미다.
이에 대해 중기부는 “효과적인 규제 개선을 위해 기업 관점에서 성장주기에 따른 규제 현황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중기부는 이번 연구를 토대로 업종별 전주기 규제관리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추진할 방침이다. 중기부가 올해 초 창업벤처혁신실 산하 창업벤처규제혁신단을 신설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규제혁신단은 신산업 분야 벤처·스타트업의 갈등 조정과 규제 전주기 관리 등 크게 두 가지를 중점 업무로 삼았다. 플랫폼·AI 등 기존 법체계에선 아직 검토되지 않은 산업이 등장하면서 직역 갈등, 규제 저촉 등으로 사업확장이 가로막히는 사례를 막고 규제현황 도식화(규제 트리)로 지속성장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는 게 창업벤처규제혁신단의 설립 취지다.
의심의 눈초리 못 걷는 업계, “말로는 부족해”
이 같은 중기부의 노력에 업계는 긍정적인 반응이지만, 문제는 역시 실질적인 성과가 있을 것인가 여부다. 규제 패러다임을 현장 체감형으로 변혁하겠다는 언급은 이전 정부 때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사실상 하나의 관습에 가까운 것이다. 실제 지난 2015년 박근혜 체제 당시에도 정부는 “규재개혁의 패러다임을 숫자 중심의 ‘양적 규제완화’에서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핵심 분야의 규제 혁파에 중점을 둔 ‘질적 규제개선’으로 전환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신산업·융합산업 발전에 맞는 규제의 틀을 갖추기 위해 산업부와 미래부가 공통의 프로세스를 구축함으로써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시범운행을 목표로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스마트 기기와 연계된 건강관리제품을 의료기기와 분리해서 관리함으로써 관련 산업 발전에 대한 걸림돌을 제거하고 핀테크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어나가겠다며 장밋빛 청사진을 거듭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청사진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고, 결국 정권 교체가 일어나면서 정부의 청사진은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문 정권 당시 정부는 ‘전봇대 규제’, ‘손톱 밑 가시’, ‘규제 샌드박스’ 등 거듭 규제 혁파를 약속했지만, 막상 기업이 체감하는 규제는 변함이 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규제 패러다임 변혁’에 업계가 온전한 기대감을 품지 못하는 이유다.
업계 “규제 혁신, 정책적 드라이브 걸어야”
결국 지금 필요한 건 ‘속도’다. 윤 정부는 앞서 지난 2022년 전기차·수소차,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등 기업의 신산업 투자 걸림돌 제거를 위해 규제 33건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결정한 전기차·수소차, 풍력, 드론, ICT 융합, 바이오·헬스케어 등 신산업 기업 애로 규제 개선 33건을 확정했고, 그해 6월까지 과제 33건 가운데 3건의 개선을 완료했다. 나머지 30건에 대해 “신산업 현장에서 빠르게 체감할 수 있도록 법령 정비, 행정조치 등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부진한 면모를 버리지 못했다.
정부가 기업 투자 확대와 이를 통한 경제 성장을 위해 신산업 현장의 규제를 해소하고 나아가 규제 패러다임 자체를 혁신하는 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야기한 규제 혁신이 10년이 넘어서야 이뤄진다면, 결국 이 또한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식 패러다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기술패권주의가 갈수록 확대되는 상황에서 신기술 개발은 기업은 물론 국가 미래를 결정한다. 기업의 기술 개발과 성장의 발목을 잡는 불필요한 규제에 대해서는 기업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정부가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규제 혁신에 대한 정책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