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손해만 남았네” 한화시스템의 실리콘밸리 도전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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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시스템, 지난해 미국 NFT 자회사 '르네상스' 청산
블록체인 사업 다각화·대중화 시도 줄줄이 실패
사업 철수 시 법인·투자 관계 대거 청산 필요, 회사의 결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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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화시스템이 블록체인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2018년 개발한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H-체인’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면서다. 실제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미국 소재 NFT(대체불가능토큰) 관련 법인 르네상스(RENAISSANX LLC)를 청산한 이후 전면 재검토에 돌입한 상태로, 추후 추가적인 사업 처분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대규모 손실 안긴 블록체인 사업

24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이사회를 열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100% 자회사 르네상스 청산을 결정한 상태다. 회사 측은 2018년 르네상스 설립 당시 NFT 시장 진출을 꿈꿨다. 르네상스를 통해 NFT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또 다른 자회사인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과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결과적으로 계획은 실패였다. 르네상스는 NFT 업황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총 47억원(약 341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한 채 시장에서 물러나게 됐다. 문제는 관련 부문에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든 자회사가 르네상스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화시스템의 블록체인 자회사 11곳 중 매출을 내고 있는 곳은 4곳에 그친다. 이에 한화시스템은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을 비롯한 블록체인 사업 전반을 재검토 중이다.

한화시스템은 블록체인 사업의 실적을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을 설립한 2021년부터 집계해 왔는데, 지난해까지 이렇다 할 매출이 발생한 것은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 본사뿐이었다. 3년간 매출은 2021년 약 400만원, 2022년 5억원, 2023년 29억원으로 꾸준히 성장했지만, 그 규모는 아직 크지 않다. 같은 기간 블록체인 사업 전체에서 발생한 순손실은 매출의 20배 수준인 626억원(약 4,550만 달러)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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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화시스템

미국 진출, 빛 좋은 개살구였다

한화의 미국 진출이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샌프란시스코 일대에 파견된 근로자는 2명으로, 그중 1명은 미국 영주권을 가진 덕분에 비자(VISA) 문제가 없었으나, 다른 1명에 대한 비자 지원을 연장하기 위해 현지인을 채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지인 채용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I, 블록체인 등의 이른바 ‘신기술’에 대한 열정을 가진 내부 인력들의 수요는 많았으나, 비자 지원 문제 등으로 국내 인력의 파견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실리콘밸리 파견 인력들에 대한 급여 체계도 한때 내부에서 논란이 됐다. 국내 연봉의 2배를 받아도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월세 거주지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상황이라, 파견 인력들은 급여 인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으나, 현지 사정을 모르는 국내 인사팀은 지나치게 높은 급여에 내부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불만이 잇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파견 인력들은 인근 지역으로 파견 나온 국내 타 대기업의 인력들 대비 급여가 지나치게 낮다는 불만과 함께, 같은 수준의 급여로 현지 채용이 쉽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인사팀과 강대강 대치가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AI 사업, 블록체인 사업 등에 대한 투자를 위한 인력 부족도 실패의 중요한 축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영진 레벨에서 AI가 고급 수학 및 통계학 기반이라는 학문적 이해 없이, 단순한 IT개발 프로젝트의 일부인 것으로 착각하는 한국식 이해도를 가진 인력들밖에 없었던 탓에 기술적인 이해도가 낮은 해외 기업이라는 인식이 실리콘밸리 일대에 폭 넓게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관련 부문 사업 ‘공중분해’ 위기

한편 업계에서는 한화시스템이 블록체인 사업 확대를 위해 쏟아부은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흘러나온다. 한화시스템은 AI와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지난 2018년 블록체인 플랫폼 에이치체인을 개발했다.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 이듬해에는 유동화토큰(Asset-Backed Token, ABT)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잡았다. ABT는 부동산과 미술품, 주식 등 기존의 자산을 블록체인에서 토큰으로 발행·거래하는 플랫폼이다.

하지만 현재 이 같은 기존 사업들은 파트너사들의 사업 종료, 정부 규제 등으로 인해 일부 중지된 상태다. 이에 한화시스템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시기별 이슈에 맞춘 서비스를 출시, 블록체인 서비스의 대중화를 꾀했다. 지난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이 길어지며 ‘긱 워커’가 새로운 노동 형태로 떠오르자, 블록체인 자회사 엔터프라이즈블록체인(EBC)을 설립해 일감 매칭 앱 ‘요긱(yogig)’을 출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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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요긱

2022년 말에는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 블록체인 기반의 커뮤니티 ‘어랏(A lot)’을 공개하기도 했다. 크리에이터와 팬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소통하며 NFT 기반의 콘텐츠·티켓을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같은 블록체인 기반 사업들은 시장에서 이렇다 할 인기를 끌지 못했다. 사실상 의미 있는 블록체인 사용 사례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후 한화시스템이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처분하기 시작했고, 이들 서비스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손실 감내하고 신사업 집중할까

시장에서는 한화시스템이 위성 통신과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등 신사업 부문 육성에 집중하기 위해 블록체인 사업을 철수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2021년 6월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3,259억원을 디지털 플랫폼 분야의 타 법인 증권 취득 자금에 할애했음에도 불구, 블록체인 사업은 고사하고 신사업 부문의 이익도 좀처럼 창출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추후 한화시스템이 블록체인 사업을 전면 중단할 경우 ICT(정보 통신 기술) 부문, 지분 투자 및 연구 개발(R&D) 등 사업 전반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요긱’, ‘어랏’ 등 블록체인 관련 서비스, 싱가포르 법인(EBC글로벌PTE) 등의 존폐 위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외로도 북미 블록체인 기반 증권형 토큰 선두 업체 시큐리타이즈, 국내 블록체인 선두기업 두나무 산하의 블록체인 연구소 람다256과의 지분 투자 관계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미국 법인 한화시스템USA가 수행 중인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플랫폼 관련 간접 투자 역시 추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또 다른 주춧돌을 마련할 필요성도 커지게 된다. 한화시스템은 블록체인 원천 기술 개발을 필두로 자산 디지털화, 거래를 위한 기반 기술 확보에 주력해 왔는데, 한화시스템이 블록체인 사업에서 철수할 경우 ABT 서비스, 증권형 토큰 개념 증명(PoC) 기술 개발 등 신사업이 줄줄이 성장 동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