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의 ‘아픈 손가락’ SK온, 또다시 3천억대 적자 “하반기 반등 가능할까”
SK온 1분기 매출 1조6,836억원, 손실 3,315억원
전 세계 전기차 수요 부진에 배터리 판매 매출 반토막
올 하반기 흑자 전환 전망, 1조원 규모 투자 유치도
SK온이 올해 1분기 3,000억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SK온은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한 뒤 단 한 번도 분기 흑자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1분기 영업손실 3,449억원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든 이후 점점 개선되는 듯 했으나 올 1분기 다시 3,000억원대 적자로 고꾸라진 모습이다. 이에 SK온은 자금난 타개를 위해 1조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시장에서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조 단위의 투자금을 유치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SK온 영업손실 3,315억원 기록, 9분기 연속 적자
29일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 따르면 자회사인 SK온은 올 1분기 매출액 1조6,836억원, 영업손실 3,315억원을 기록했다. 186억원 적자였던 전 분기 대비 손실폭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이는 완성차업체의 재고 조정으로 인한 배터리 판매 물량 감소 영향이 크다. 특히 북미 지역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면서 보조금(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수령액이 지난해 4분기 2,401억원에서 올해 1분기 385억원으로 급감했다.
SK온은 지난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분할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며 안정적 궤도에 안착한 것과 대조적이다. SK온의 고질적 적자는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실탄을 잠식하고 있다. SK온이 적자에도 대규모 설비투자를 이어가면서 신용 공동체인 SK이노베이션의 재무 부담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SK온은 이차전지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영업손실에도 불구하고 빚을 내면서까지 매년 5조∼7조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지속해 왔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말 기준 SK온의 총 차입금은 16조6,559억원에 이르며, 지난 한 해 이자비용만 4,698억6,700만원, 부채비율은 189.98%다. 이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스탠다드앤푸어스 기준)마저 지난달 투기등급인 ‘BB+’으로 떨어진 상태다.
SK그룹 차원 대책 마련 고심, 이차전지 계열사 매각 방안 거론
그동안 SK온은 회사채 발행이나 유상증자, 프리 IPO, 차입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 투자금을 마련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 2022년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댔다. 미래 성장 동력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었지만,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에까지 재무 부담이 전이됐다.
실제 SK온의 판매 부진은 지난해 적자 늪에서 벗어난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에도 타격을 줬다. SKIET의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은 674억원으로, 주요 고객사인 SK온의 판매 실적과 연동돼 부진을 면치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SKIET는 SK온의 배터리를 탑재한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등 전기차 판매량 부진으로 기존 적자 규모가 확대됐다.
이에 SK그룹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시장의 우려를 감안해 그룹 내 사업을 점검 및 최적화하는 리밸런싱(자산균형재조정·Rebalancing)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SK수펙스추구협의회’ 회의 결과를 이례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SK그룹에 따르면 이차전지 계열사들이 쇄신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금융시장에선 이차전지 사업은 이어가되 계열사 간 합병 또는 일부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의 방안이 나올 것으로 점치고 있다.
SK온, 하반기 ‘흑자 전환’에 자신
SK온의 부진은 전기차 시장 정체가 핵심 원인이다. 중국 CATL의 독주에 맞서 전기차 배터리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SK온은 한국 배터리 사업 분야에서 ‘아픈 손가락’으로 꼽힌다. 국내 배터리셀 3사 중 가장 늦게 시장에 뛰어든 후발주자인 만큼 공격적이고 의욕적인 투자로 덩치를 불려 가던 시점에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이라는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고품질의 삼원계(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 배터리셀 제조사들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이라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혔다. 글로벌 고금리 기조와 실물 경기 침체 대응 차원에서 현대차, 테슬라, 벤츠 등이 중소 전기차에 LFP 배터리를 탑재하는 비율을 늘린 탓에 가뜩이나 좁았던 SK온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리튬 등 원재료 가격 하락으로 인해 배터리 공급 단가까지 내려가면서 수익 규모마저 쪼그라들었다.
더욱이 SK온은 내년 안에 반드시 흑자 전환을 해야 하는 절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2021년 외부 투자를 유치하면서 2026년까지 IPO(기업공개)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당시 투자자들은 SK온이 IPO에 실패할 경우 대주주 지분까지 묶어 강제로 매각하는 콜앤드래그(call and drag) 옵션을 내걸었다. SK온이 상장에 실패하면 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도 SK온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IPO의 선결 조건인 흑자 전환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SK온은 올 하반기 흑자 전환을 자신하고 있다. 기초 체력이 탄탄해진 데다 수율이 좋아지면서 제품의 수익성이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북미와 헝가리, 중국의 일부 공장 수율은 80%를 하회했으나 지속적인 안정화 작업을 기반으로 90%대 최근 초·중반으로 올라섰다.
또한 SK온은 2분기부터는 미국 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만큼 AMPC도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신규 출시되는 신차 중 △아이오닉5 페이스리프트 버전 △포드 E-트랜짓 커스텀 △아우디 Q6 E-트론 등에 SK온 배터리가 탑재된다. 아울러 향후 1~2년 내 출시가 예고된 △포드 익스플로러 △HMG(현대) 아이오닉 대형 SUV 북미 생산 모델 △스웨덴 폴스타 5 등에도 SK온 배터리가 적용될 예정이다.
조 단위 투자유치로 자금난 타개, 높은 몸값은 걸림돌
SK온은 이같은 장밋빛 청사진을 기반으로 1조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도 나선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최근 모건스탠리와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투자은행(IB)을 주관사로 선임했으며 이미 국내 사모펀드(PEF) 중 몇 곳은 주관사로부터 투자 정보를 받아 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시장에선 높은 몸값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투자 유치는 지난해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에 이은 후속 라운드라 직전보다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 비상장기업들은 기존 재무적투자자(FI)를 고려해 직전보다 높은 기업가치로 투자를 유치한다. 앞서 SK온은 지난해 한국투자증권프라이빗에쿼티, MBK파트너스, 힐하우스캐피탈부터 3조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받은 바 있는데 당시 SK온이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22조원에 달한다.
미국·유럽발 배터리 캐즘이 예상보다 깊고 길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실적 반등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 업계는 연초까지만 해도 전기차 및 배터리 수요침체가 하반기부터는 빠르게 개선될 수 있다고 내다봤으나 1분기가 지난 현재는 장기화될 보릿고개에 대비하는 분위기다. 배터리 업계의 자체 실적 전망치를 반영해 하반기 캐즘 탈출을 점쳤던 증권가도 달라진 상황을 반영해 올해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연초 추정한 LG에너지솔루션의 올해 매출은 40조5,666억원, 영업이익은 4조1,939억원이었으나, 1분기가 끝난 현시점 추정 매출은 33조6,836억원, 영업이익은 2조7,369억원으로 각각 17%, 34.7% 하향됐다.
여기엔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률 둔화가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에 따르면 올해 2월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20만4,000대로 전년 대비 10.9% 성장했지만, 전달(27%) 대비 성장폭은 크게 축소됐다. 또한 지난해 전년 대비 월별 성장률이 약 30%의 평균치를 유지했던 점에 비춰볼 때 당초 예측치보다도 부진한 성적이다. 유럽 내 가장 큰 시장인 독일의 경우 지난 2월 -5.3%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역성장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보조금마저 중단한 상황이라 수요 반등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도 전기차 확대 목표를 조정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2030년까지 미국 내 전기차 비중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현재는 44%로 무려 16%포인트 내려 잡았다. 예상보다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더디자 정책 수정에 들어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