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전쟁터’ 된 AI 칩 시장, 엔비디아 독점 구조 흔들리나
구글·메타·MS·인텔 등 줄줄이 '자체 AI 칩' 개발
AI 시장 참전 늦은 애플도 개발 움직임 본격화
AI 칩 시장 80% 거머쥔 엔비디아, 추후 입지는
유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AI(인공지능) 칩’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시장 독과점 구조가 AI 칩 품귀 현상을 낳은 가운데, 빅테크 업계의 시장 주도권 경쟁이 거대언어모델(LLM) 부문에서 자체 AI 칩과 중앙처리장치(CPU) 개발 부문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빅테크 ‘AI 칩 경쟁’ 본격화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자체 AI 칩을 개발, 독자적인 AI 생태계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선봉에 선 것은 구글이다. 구글은 생성형 AI 모델인 ‘제미나이’를 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텐서처리장치(TPU) 신제품 ‘v5p’를 정식 출시하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TPU는 구글의 자체 AI 전용 칩이다.
MS는 AI 학습과 추론을 위해 설계된 칩인 ‘마이아100’을 선보였다. 마이아100은 5나노미터(nm) 공정으로 만들어진 MS의 AI 가속기 ‘애저 마이아’ 시리즈 첫 세대 제품으로, 현재 MS와 동맹 관계인 오픈AI를 통해 테스트 과정을 거치고 있다. 아울러 MS는 AI 추론 전용칩 ‘아테나’ 개발을 위해 미국의 반도체 기업 AMD와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메타도 자체 AI 칩인 MTIAv2(Meta Training and Inference Accelerator·메타 훈련 및 추론 가속기)를 공개한 상태다. MTIAv2는 메타의 자체 LLM인 ‘라마’와 같은 생성형 AI를 훈련하기 위해 기획된 제품으로, 메타가 운영하는 SNS의 추천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활용되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 역시 AI 추론칩 ‘AWS 인퍼런시아(AWS Inferentia)’를 자체 개발해 데이터센터(IDC)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텔 또한 신형 AI 반도체 ‘가우디3’를 공개하며 AI 칩 경쟁에 뛰어들었다. 인텔은 “가우디3가 엔비디아의 상용 AI 반도체 H100보다 학습과 추론 속도가 훨씬 빠르고 전력 효율성도 뛰어나다”며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해당 제품의 샘플은 현재 국내 기업 네이버 등 주요 파트너사에 전달된 상태며, 양산은 오는 3분기에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후발 주자 애플까지 나섰다
AI 분야 후발 주자로 꼽히는 애플도 최근 자체 AI 칩 개발 소식을 전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 애플이 수년 전부터 데이터센터용 AI 칩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 일환으로 내부 코드명 ‘ACDC’를 진행해 왔다고 전했다. 애플의 AI 칩 경쟁 참전 소식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애플은 지금까지 산업 생태계가 AI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제품 및 서비스를 내놓지 않으면서 “기술주보다는 가치주에 가깝다”는 시장의 비판을 받아 온 바 있다.
애플이 개발 중인 칩은 AI 모델의 추론 기능에 적합한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가 그래픽처리장치(GPU) H100을 통해 AI ‘훈련’용 칩 시장을 장악했다는 점을 고려해 훈련이 아닌 추론 기능에 중점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MS·아마존 등 다수의 빅테크 기업이 AI 추론용 특수 칩을 자체 제작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마하-1’ 역시 일종의 추론 특화 반도체다.
엔비디아 그림자 벗어나는 빅테크
빅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AI 칩을 개발에 착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AI 칩 시장은 엔비디아가 80% 이상을 장악한 상태다. 문제는 엔비디아의 AI 칩 공급 물량이 좀처럼 시장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품귀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엔비디아 AI 칩 가격은 개당 수천만원에 달한다”며 “큰돈을 내고 제품을 구입해도 인도가 1년 이상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공급 부족은 첨단 AI 기술 경쟁에 뛰어든 빅테크 기업들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급변하는 AI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기술을 선보일 필요가 있다. AI 칩을 비롯한 제품 수급에 난항을 겪으며 개발이 지연될 경우, 순식간에 시장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미다. 빅테크 업계에서 본격적인 ‘엔비디아 견제’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이유다.
위기를 감지한 각 기업은 자체 AI 칩 개발을 통해 독립적인 AI 생태계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AI 칩 내재화에 성공한 기업은 AI 개발과 운영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경감할 수 있으며, 제품 수급이 원활해져 개발 속도도 대폭 앞당길 수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추후 빅테크 업계 내에서 자체 AI 칩 개발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