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삼성-마이크론의 HBM 경쟁 ‘삼파전’ 본격화, 차세대 HBM4가 분기점 되나
HBM 시장 경쟁 심화 양상, SK하이닉스가 시장 우위 점해
12단 HBM3E 최초 개발한 삼성, 엔비디아 테스트는 아직
후발주자 마이크론, 견조한 실적 냈지만 "낮은 수율은 과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한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의 삼파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건 SK하이닉스며, 삼성전자는 12단 HBM3E 제품을 통해 미래 전략을 구상하는 중이다. 마이크론은 후발주자임에도 압도적인 성장력을 내비치며 주요 반도체 기업 중 하나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후발주자로서의 페널티를 완전히 벗진 못했단 평가를 받는다. 수율 문제가 거듭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HBM 경쟁 초반 승기 잡은 건 SK하이닉스
2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5세대 HBM 제품인 HBM3E를 제조하며 기술 경쟁을 벌이는 건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세 기업이다. 이들 중 초반 승기를 잡은 건 SK하이닉스다. 수율과 공급량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데다 올 2분기 HBM3E 공급량 확대를 시사하면서다. 3사 중 가장 먼저 엔비디아의 퀄 테스트(품질 점검)를 통과하고 주 공급사 자리를 차지한 것도 SK하이닉스였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의 HBM3E 수율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만큼 향후 영업이익률이 D램의 2배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의 12단 제품 인증도 무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단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최근 도입한 ‘어드밴스드 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MR-MUF)’이 성능 향상에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MR-MUF는 신규 보호재를 이용해 제품의 방열 특성을 10% 개선할 수 있으며, 열압착 비전도성 접착필름(TC-NCF) 등 기존 방식 대비 더 적은 열과 압력을 이용해 반도체 제작을 가능케 한다. 업계 관계자는 “12단 이상 고단 적층에 있어 MR-MUF 방식의 이점이 분명히 있다”며 “SK하이닉스의 12단 제품 출시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경쟁력 다소 뒤처진 삼성, 12단 HBM3E로 반전 꾀하나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로선 경쟁력이 다소 뒤처진단 평가를 받는다. 엔비디아에 대한 HBM 공급이 지연되고 있는 탓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36기가바이트(GB) 용량의 HBM3E(HBM 5세대) 12단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성과를 올린 바 있다. 이에 SK하이닉스 등 경쟁사를 제치고 HBM 선두 기업으로 떠오르리란 기대가 높아졌지만, 엔비디아의 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단 소식이 들려오면서 기대감이 다소 꺾였다.
결국 삼성전자 입장에선 엔비디아 퀄 테스트 통과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로부터 HBM3E 12단 제품을 승인받을 수만 있다면 단숨에 HBM 시장의 1위 기업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에 대한 HBM3E 공급이 확정되면 이외 시장에서의 HBM 공급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게 AMD다. 최근 삼성전자는 AMD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미 AMD의 MI300X에 HBM3를 공급한 바 있으며, MI325X 등에서도 HBM3E 12단 공급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성장성이 그만큼 크단 의미다.
HBM4 제품 출시 이후 SK하이닉스와의 격차가 급격히 좁아질 가능성도 있다. HBM4 제품은 기술 난도가 기본적으로 높다. D램 적층 단수가 높아지면서 칩 두께와 접착 간격까지 줄여야 하는 등 각종 과제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HBM 수급 인프라에 후발주자로 분류되던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와 함께 포함될 여지가 있다. HBM 시장의 ‘바닥’이 높아질 수 있단 뜻이다.
마이크론, 압도적 성장력에도 수율이 ‘발목’
마이크론은 후발주자임에도 압도적인 성장력을 뽐내며 주요 반도체 기업 중 하나로 부상한 ‘떠오르는 별’이다. 마이크론은 현재 시장에서 가장 앞선 제품인 4세대 HBM3를 건너뛰고 곧바로 5세대 HBM3E 양산에 돌입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생산능력(CAPA)도 빠르게 늘렸다.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의 HBM 생산능력은 올 연말 기준 12인치 웨이퍼 2만 장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한 이후론 대규모 설비 투자도 진행했다. 마이크론의 올해 연간 시설투자 계획은 기존 75억 달러에서 최근 80억 달러(약 11조원)로 상향됐다. HBM 시장 선점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견조한 실적을 보이면서 성장 가능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업계에 의하면 올해 회계연도 3분기(2024년 3~5월) 마이크론의 매출은 68억1,000만 달러(약 9조4,965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간(37억5,000만 달러) 대비 81% 증가한 수치이며, 시장 전망치였던 66억7,000만 달러도 상회하는 수준이다. 주당 순이익 역시 62센트 수준으로 예상치인 50센트를 웃돌았다.
마이크론은 호실적에 힘 입어 차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경쟁하는 수준으로 HBM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릴 방침이다. 마이크론은 이번 분기에 반영된 HBM3E 매출액이 1억 달러(약 1,380억원) 이상이며, 2024년 연간 매출액은 수억 달러, 내년엔 수십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산제이 메로트라(Sanjay Mehrotra) 마이크론 CEO는 “올해 HBM 물량을 포함해 내년까지 (HBM 제품이) 전량 매진된 상황”이라며 “현재 D램 시장 점유율인 20% 초반 수준까지 HBM 시장 지배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기술 우위를 앞세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잠재 수요를 빼앗아 올 수 있을 것이란 강한 자신감을 내보인 것이다.
문제는 마이크론 HBM 제품의 수율 다소 낮단 점이다. 마이크론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마이크론의 HBM 사업 영업이익률은 D램에 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통상 HBM이 D램 가격의 2~3배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점에 감안하면 HBM 사업에서 아직 제대로 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단 의미다. 엔비디아에 공급 중인 HBM 물량 역시 여전히 소량이다. 마이크론의 세부 실적 내용을 보면 마이크론은 3개월간 1억 달러 규모의 HBM3E를 엔비디아에 공급했다. HBM3E 제품 단가를 감안하면 대규모 공급이 이뤄졌다 보기는 어렵단 게 업계 중론이다. 마이크론에 “후발주자로서의 페널티를 아직 벗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