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신용등급 ‘쇼크’, 석유화학·건설·2금융 줄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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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 3사, 기업 세 곳 중 두 곳꼴로 강등
신용등급 상향 조정한 기업은 3곳에 불과
강등 시 자금조달 어려움, 건전성 악화와 직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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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금리 상황이 계속되면서 기업들의 신용등급 줄하락이 현실화하고 있다. 재무 부담이 가중되면서다.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정기평가에서 등급 하락이 두드러진 가운데 산업 간 차별화도 심화된 모습이다. 특히 올해 들어 신용등급·전망이 떨어진 기업은 석유화학, 게임, 건설, 저축은행, 증권 등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 신용등급 줄하락, 등급 양극화 현상도 뚜렷

2일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 3곳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용등급을 조정한 3곳 중 2곳꼴로 신용등급·전망이 하향 조정됐다. 신용평가사들은 각 기업의 재무상황, 국내외 경제상황 변화를 반영해 매년 6월 회사채 등 장기신용등급에 대해 정기평가를 실시한다.

올 상반기 신용평가사의 정기평가 결과 신용등급이 오른 기업보다 떨어진 기업이 훨씬 많았다. 실제로 올 상반기에 한국신용평가는 총 55곳의 신용등급을 조정했는데, 이중 39곳(하향검토 포함·71%)의 신용등급·전망을 낮췄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44곳 중 22개(50%) 기업의 신용등급·전망이 상향됐지만 올해 상향 비중은 29%에 그쳤다.

한국기업평가 또한 63개 기업의 등급을 조정했는데, 42곳(67%)의 신용등급·전망을 내려 잡았다. 신용등급을 올린 기업은 3개에 그쳤고, 등급이 떨어진 기업 수는 17개에 달했다. 나이스신용평가 역시 평가를 조정한 74곳 중에서 47곳(64%)의 신용등급·전망을 낮췄다. 신용등급 전망이 낮아진 기업이 32곳으로, 전망이 오른 18곳보다 더 많았다.

신용등급·전망이 하향된 부문은 석유화학, 건설업, 그리고 저축은행과 캐피탈 같은 2금융권에 집중됐다. 수익성이 떨어진 게임업계에서도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됐다. 등급별로는 비우량등급으로 분류하는 A급 이하 기업에서 하향된 경우가 많았다.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을수록 신용등급이 더 떨어지는 ‘등급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인 기업의 비중도 높다는 점이다. 이는 신용등급이 강등되기 직전 단계로 수개월 내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신용등급·전망이 내려가면 자금조달 비용이 늘면서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어려워져 신용등급이 또다시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특히 석유화학, 캐피탈 업계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이 있었다. 이에 업계에서는 올해 신용등급이 하락한 비중이 급증하면서 하반기 이후에도 강등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금리 인하가 늦어질수록 이런 압박은 더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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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인터넷전문은행 건전성도 악화, 신용 리스크 노출 우려

국내 신평 3사는 최근 자산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도 연체율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는 분석을 내놨다. 연체율 상승과 부실채권 증가 등 그동안 누적된 고금리 충격이 심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케이뱅크·카카오뱅크·토스뱅크의 연체율 평균은 0.92%로 전년동기(0.69%) 대비 0.23%포인트(p) 상승했다. 같은 기간 케이뱅크는 0.85%에서 0.96%로, 토스뱅크는 0.72%에서 1.32%로 각각 올랐다. 카카오뱅크는 0.49%로 동일했다.

또 지난해 12월 말 기준 토스뱅크의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1.21%로 전년동기(0.53%) 대비 2배 넘게 상승했다. 같은 기간 카카오뱅크의 NPL 비율도 0.36%에서 0.43%로 올랐다. 케이뱅크의 경우 2022년 12월 말 0.95%까지 올랐으나 지난해 12월 말 0.86%로 개선됐다. 은행은 대출(여신)을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로 나눠 관리하는데, 이 중 ‘고정’ 이하에 해당하는 여신은 3개월 이상 연체돼 사실상 부실채권으로 분류된다. 대출 자산 중 NPL 비중이 늘어난다는 건 은행의 자산 건전성이 악화되는 신호로 읽힌다.

같은 1금융권에 있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2월 말 기준 연체율 평균 및 NPL 비율 평균이 각각 0.28%, 0.27%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인터넷은행 업계의 자산 건전성 지표 악화는 더욱 뚜렷하다. 이 같은 현상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저신용 대출 확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인터넷전문은행은 포용금융 일환으로 신용대출 중 일정 비중 이상을 중·저신용자에 내줘야 하는데, 시장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이들의 상환 능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전문은행 중 연체율과 NPL 비율이 가장 높은 토스뱅크의 경우 신용대출 잔액에서 중·저신용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3월 말 42.1%를 기록했다. 이후 같은 해 6월 말 38.5%, 9월 말 34.5%, 12월 말 31.5% 등 점진적으로 낮아지긴 했으나 케이·카카오뱅크 대비로는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더 큰 문제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자산 건전성을 위협하는 고금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예상보다 높은 물가 수준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 인하를 미루고, 자연스럽게 한국은행의 긴축 완화 시점도 순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시장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차주들의 이자 부담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신용등급 강등 기업, 회사채 만기 부담

이런 가운데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들은 당장 회사채 상환이 걱정이다. 서울채권시장에 따르면 연말까지 기업들이 상환해야 할 선순위 무보증 회사채 만기도래액은 37조3,850억원이다. 이 중 ‘AA-’ 등급이 5조7,800억원으로 가장 많고, ‘A0’ 등급이 2조3,810억원, ‘A+’ 등급 2조2,500억원이다. ‘BBB’ 이하 등급이 상환해야 할 빚은 1조10억원이다. 시장에서는 양극화의 중심에 있는 ‘A’와 ‘BBB’ 이하 기업들의 금리 부담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그나마 신용등급 평가라도 받는 곳들은 형편이 낫다. 공모시장에서 시장 수요를 바탕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높은 금리 환경에서 바닥을 드러내는 한계 기업들의 체력이 신용 리스크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계기업들은 공모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대신 사모사채, 기업어음(CP) 등 단기자금에 의존해야 한다. 급전으로 돌려막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2023년 기업경영분석 결과’(조사대상 3만2,032곳)를 보면 지난해 국내 기업 10곳 중 4곳이 번 돈으로 이자도 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201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고금리와 저성장 영향으로 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모두 나빠진 것이다.

상장사의 부채비율과 대출 연체율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의 1분기 연결 부채비율은 작년 말보다 2.67%포인트 오른 115.61%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기업대출 연체율은 0.54%로 3월(0.48%) 대비 0.06%포인트 올랐다. 1년 전(0.39%)과 비교하면 0.15%포인트가 상승한 수준이다. 이 같은 부실이 기업들의 문제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신용 리스크가 현실화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기업 투자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는 ‘투자위축→고용 감소→소비위축→실적악화’라는 ‘디레버리징 사이클’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어 나라 경제까지 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