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발명보상 미지급에 LG전자 연달아 패소, 보상 지급 의무 구체화 수순
특허 기술 판매에도 대우 안 했다? 직무발명보상금 소송 릴레이
재판부 LG전자 패소 판결, "기술 매각에 따른 보상금 지급이 마땅"
일부 사례선 승소, "부제소합의 이후 추가 보상은 합의에 위배"
LG전자가 다수의 특허 기술을 개발한 직원들에게 직무발명보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개발된 특허 기술을 판매하면서도 개발자들에게 금전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은 것이다. LG전자 측은 “불용 기술이라 양도해도 실익이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법원들은 연달아 LG전자에 패소 판결을 내리며 직무발명보상금 미지급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LG전자 특허 매각에도 직무발명보상 ‘나 몰라라’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63민사부(부장판사 박찬석)는 지난 5월 전직 LG전자 연구원 A씨가 LG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직무발명보상금 청구 소송 1심에서 “LG전자가 A씨에게 보상금 약 3,466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LG전자가 특허 기술 매각에 따른 보상금을 최초 개발자인 A씨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정한 것이다.
직무발명보상은 직원 발명을 특허로 출원, 등록, 실시하거나 제3자에게 처분할 시 회사가 발명자에게 그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게 골자로, 법적으로도 보장되는 제도다. 현행 발명진흥법 제15조 1항에 따르면 ‘종업원 등은 직무발명에 대해 특허 등을 받을 수 있는 권리나 특허 등을 계약이나 근무 규정에 따라 사용자 등에게 승계하게 하거나 전용실시권을 설정한 경우에는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또 제15조 4항에는 ‘사용자는 보상의 구체적인 사항을 종업원에게 문서로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간 판례에 의하면 표준 특허의 경우 매각 금액의 5~10% 정도, 비표준 특허의 경우 매각 금액의 10~30% 정도를 발명자 보상금으로 인정된다.
LG전자 내부 규정에도 ‘보유 특허가 자사에 의해 실시된 경우, 보유 특허가 경쟁사에 의해 실시된 경우, 각 사업본부별로 별도의 규정에 의한 심의 절차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등 직무발명보상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히 로얄티 수익 보상 기준엔 ‘로얄티 수익에서 발명자의 기여도에 따라 지급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
보상금 지급 소송 제기한 발명자들, LG전자 ‘연전연패’
문제는 기업 내의 라이선스 계약 체결 여부가 통상 영업비밀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라이선스 계약에 특허가 활용된다 해도 종업원에게 이와 관련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단 것이다. 이렇다 보니 종업원들은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직무발명보상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특허 라이선스 계약 내용을 알 수 없는 탓에 적절한 직무발명보상금이 산정됐는지도 알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LG전자가 직무발명보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발명자들은 LG전자 측에 적절한 보상금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LG전자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도된 특허가 불용 특허(가치 없는 특허)였기에 보상의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후 LG전자는 문제를 제기한 발명자들에게 1,000만원가량의 보상금만을 선정하고 구체적인 내역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이번 재판의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LG전자기술원 OLED팀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1997~2008년 당시 ‘전계발광소자(진공 속에서 전자가 전계 방출되는 원리를 이용한 디스플레이 기술)’ 등을 최초 개발했다. A씨가 발명한 기술은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특허를 획득했고, 이 기술에 대한 권리를 승계받은 LG전자는 지난 2015년 3월 해외 빅테크 M사의 지식재산권(IP)을 관리하는 회사에 해당 기술을 포함한 29건의 기술 특허권을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LG전자는 특허권 양도 계약의 대가로 M사의 특허 기술을 사용하면서 지불해 오던 실시료 2013년분에 대해 40% 감액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A씨는 “LG전자가 계약에 따라 실시료 감액 등의 이익을 얻었음에도 발명진흥법 제15조 등에 규정된 직무발명보상제도에 따른 보상금을 주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LG전자는 A씨에게 직무발명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MTL과의 계약과 관련한 소송에서도 LG전자는 패소했다. 특허법원 제22-2부(부장판사 이혜진)는 지난달 전직 LG전자 책임연구원 B씨가 낸 직무발명보상금 청구 소송 2심에서 “LG전자가 B씨에게 보상금 1억3,893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B씨는 2002~2011년 LG전자 책임연구원으로 이동통신연구소에서 일하며 기술 6개를 최초 개발했으나, LG전자는 2015년 MTL에 이 기술 등을 양도하는 계약을 맺었음에도 B씨에게 일정한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 패소가 이어지면서 LG전자의 직무발명보상금 지급 의무가 구체화되고 있단 평가가 나온다.
‘부제소합의’ 이룬 사례에선 LG전자 승소하기도
다만 LG전자가 모든 소송에서 패한 건 아니다. 앞서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 62민사부(부장판사 이영광)는 전직 연구원 C씨가 LG전자를 상대로 낸 직무발명보상금 소송에서 C씨 패소 판결을 내렸다. C씨는 LG전자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연구소에서 2005~2007년간 근무하며 다른 직원들과 공동으로 10여 개의 특허를 발명했다. 특히 해당 특허 중 일부는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에서 표준특허로 선언되는 등 공신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은 LG전자가 로열티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해당 특허를 타사에 양도·판매하면서 불거졌다. C씨는 “LG전자가 로열티 등 이익을 얻었으니 보상금을 달라”며 소송을 냈다. 자신도 보상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취지였지만, LG전자는 “이미 C씨와 부제소합의를 했다”고 반박했다. 부제소합의란 어떤 사항에 대해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제기 등을 하지 않겠다’는 합의다. 실제 C씨는 해당 특허와 관련해 300만원을 지급받는 조건으로 LG전자와 부제소합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법원은 LG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부제소합의 계약서에 따르면 300만원이 특허와 관련된 최종적인 보상”이라며 “C씨의 주장은 부제소합의에 위배돼 적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이후 C씨 측은 “보상금 액수가 지나치게 적어 부제소합의는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C씨가 발명한 특허로 LG전자가 구체적인 이익을 얻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허가 등재된 ETSI의 정책상 공정하고 비차별적으로 권리를 행사해야 하므로 LG전자가 배타적인 이익을 얻을 것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