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에 인력난까지 ‘이중고’ 겪는 SK온, 해외법인 퇴사자 6,700명 육박
SK온 해외 사업장 퇴사자 수 총 6,658명
불투명한 미래에 현대차로 떠나는 직원도
임원도 예외 아냐, 올해 1~3월 13명 퇴직
지난해 SK온 해외법인에서 근무한 임직원 가운데 6,000명이 넘는 인력이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로, 전기차 배터리 시장 위축과 중국 업체의 약진, 만년 적자 등으로 부침을 겪는 상황에서 이 같은 대규모 인력 이탈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 치명적이라는 평가다.
SK온 해외법인 직원, 지난해 6,658명 퇴사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달 SK이노베이션이 발간한 ‘2023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지난해 SK온을 그만둔 해외법인 임직원 수는 총 6,658명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연말 기준 전체 임직원 수가 1만2,839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퇴직자 수가 절반에 이른다. 가장 퇴사자 수가 많은 곳은 아시아 지역으로 지난해 2,912명이 회사를 떠났다. 이어 미주(2,508명), 유럽(1,238명) 순으로 나타났다.
해고나 정년퇴직 등을 제외한 자발적 의사에 따른 ‘자발적 이직’의 경우 권역별로 아시아 72.89%, 미주 52%, 유럽 30%로 집계됐다. 국내 사업장에선 지난해 164명의 임직원이 퇴사했다. 자발적 이직률은 4.56%로 LG에너지솔루션(1.5%)과 삼성SDI(2%) 등 경쟁사와 비교해도 이직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SK온의 이직률이 두드러진 데는 SK온의 해외 고용 시장 특성상 계약직 등 유연 근무 형태가 많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SK온이 전기차 캐즘(수요정체)과 만성 적자를 겪는 상황에서 이 같은 배터리 인재 유출은 ‘이중고’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해외 진출을 늘린 만큼 해외 생산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와중에 인력이 빠져나가면 적기 생산 등 공장 가동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SK온이 배터리 제조 공장을 비롯해 해외에 보유한 사업장 수는 13개에 달한다.
SK온 국내 사업장 이탈 인력, 현대자동차로
SK온의 국내 사업장에서 이탈한 인력들의 경우 대부분 현대자동차로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SK온 직원이 현대차로 이직을 택한 것은 비밀유지 조항 등의 이유로 인해 경쟁사 간의 이직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인력 유출에 따른 특허분쟁까지 겪은 상태라 양사 간의 이직은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 판매 성장 둔화와 중국산 저가 공세로 인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소 안정적인 현대차로의 이직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 국내 배터리 기업 직원은 “올해 성과급이 불투명하고, SK온의 경우는 회사 매각 소문까지 들리고 있어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라며 “마침 올해부터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관련 대규모 인력 채용을 하고 있어 퇴사자 증가세는 가속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만 유출 인력이 50명을 넘기자 SK온의 인사관련팀이 현대차에 일종의 항의를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지나친 인력 빼가기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다. 다만 현대차가 고객사인 만큼 회사 차원의 공식 항의는 없었다는 게 SK온 측의 주장이다.
10분기 연속 적자 SK온, 임원도 13명 퇴직
SK온 임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SK온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3월에만 총 13명의 임원이 퇴직했다. 이 중 진교원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해 11월에 단행한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1월 1일부로 퇴임했다. 진 COO를 포함한 미등기 상근 임원 11명이 1월 퇴임했고 2월과 3월 각각 1명의 미등기 상근 임원이 회사를 떠났다. 지난해 말 기준 SK온의 미등기 임원 수는 65명으로 이 중 퇴임한 임원 수만 20%에 달했다. 반면 신규 선임된 미등기 임원은 단 5명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임원 수가 큰 폭으로 줄어든 원인을 실적 부진으로 보고 있다. SK온의 연간 영업손실은 지난 2021년 3,137억원에서 2022년 1조727억원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는 전년 대비 감소하긴 했지만 5,858억원의 적자를 냈다. SK온은 2021년 출범 이후 1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으로 현재 누적 적자는 2조6,000억원에 이른다. 신용등급도 강등됐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 S&P글로벌은 SK온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SK온 대표에 선임된 이석희 사장은 흑자 전환을 위해 ‘마른 수건도 다시 짜라’는 식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 사장은 흑자 전환 시까지 자진해서 연봉 20%를 반납하고 임원에게는 오전 7시 출근을 지시하는 등 체질 개선에 팔을 걷어붙였다. 최근에는 투자 유치에도 나섰다. SK온 관계자는 “RFP(제안서)를 발송한 것은 아니고 투자 의향을 물어본 수준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앞서 2026년 말 상장을 목표로 제시했던 점을 감안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식이다.
이와 함께 올해 성과급 대신 전 직원에게 가상 주식인 ‘밸류 셰어링(VS)’을 지급하기도 했다. 구성원이 부여일을 기준으로 향후 3년을 재직하고 SK온이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면 실물주식으로 교환되지만 2027년까지 상장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권리가 소멸된다. 이처럼 SK온은 ‘흑자전환’과 ‘상장’을 목표로 전력 질주하고 있으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올해도 상반기에만 7,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