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풍력 ‘중국자본 장악 주의보’, 한국 생태계 위협한다
국내 풍력기자재 장악한 中, 국부유출 가능성 제기
해상풍력 사업지분 취득, 우회투자로 프로젝트 참여도
정부, 글로벌 연합체 동참 "中시장과 사실상 결별"
국내 해상풍력 업계에서 중국 자본 유입에 따른 국부 유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중국산 저가 기자재 대규모 유입에 더해 중국 자본이 해상풍력 사업자 지분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해상풍력 시장을 중국 업체가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중국자본 유입
17일 업계에 따르면 서해에서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 A사에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에너지엔지니어링공사(CEEC)가 우회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A사의 지분 49%를 보유한 B사가 CEEC에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알려졌다. B사는 CEEC의 PF 보증을 통해 자금 1조5,000억원가량을 조달했고 현재 건설 중인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준공되면 사업 이익을 CEEC와 정산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CEEC는 나아가 국내 기업인 C사와 함께 설계·조달·시공(EPC) 합작법인(JV)을 설립해 해당 해상풍력 단지 공사를 수행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사실상 중국 국영기업이 참여하는 셈이다. 해당 해상풍력 단지는 현재 풍력 터빈과 해저 케이블 외부망 공급자로도 중국 업체를 선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상풍력은 발전단가가 높아 정부가 발급한 신재생에너지발급인증서(REC)가 간접적인 보조금 역할을 하며, 해상풍력 발전단지는 장기 고정 가격 계약을 통해 운영 후 20년간 보조금이 얹어진 높은 가격으로 전기를 팔아 안정적 수익을 내도록 보장받는다. 이와 관련해 국내 해상풍력 업계 관계자는 “중국 국영기업이 국내 해상풍력 프로젝트 운영에 참여한다면 우리 정부가 주는 보조금으로 수익을 내게 된다”며 “이는 국부 유출로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에 따르면 2036년까지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정부 보조금은 82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정부가 시행 중인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해상풍력 규모가 약 14.3GW로 확대되는 점을 고려해 환산한 금액이다.
중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해상풍력 기자재 시장에도 침투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너지공단이 선정한 해상풍력 프로젝트 5곳 모두 해외 기업의 터빈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세 곳은 덴마크의 베스타스가 공급하기로 했고 나머지 한 곳은 중국 밍양이, 다른 한 곳은 독일 벤시스가 공급할 예정이다. 벤시스는 중국 골드윈드가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어 사실상 중국계 기업이다.
국내 해상풍력 생태계 붕괴 우려
이에 국내 업계에서는 저가 중국산 제품이 빠르게 유입될 경우 국내 해상풍력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 후판부터 터빈까지 해상풍력 가치사슬(밸류체인)의 단계별 공정에 글로벌 수준의 기업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국내 해상풍력 생태계가 반도체 시장의 파운드리(수탁생산)와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 중이라고 분석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설계와 금융을 맡고 핵심 제작은 한국에 맡기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풍력발전기와 육지를 잇는 해저 케이블을 제조하는 LS전선이 대표적 사례다. LS전선은 올해 들어 대만에서 1,100억원 규모 해상풍력용 케이블 계약을 따냈고 지난달에는 벨기에에서 2,821억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2일에도 미국에서 1,000억원 규모 계약을 했다. 올해 1분기 LS전선의 전선 수주액은 7조1,787억원에 달한다.
SK에코플랜트는 자회사인 SK오션플랜트와 손잡고 해상풍력발전단지에 들어가는 기자재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SK오션플랜트가 하부 구조물인 재킷을 제작하고 SK에코플랜트는 해상 변전소를 짓는 식이다. SK오션플랜트는 국내 협력업체 24곳과 해상풍력연합체를 구성하기도 했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수요가 폭증할 것에 대비해 ‘야드’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3사도 해상풍력 훈풍을 타고 특수선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해상풍력발전기 용량이 기당 10㎿급으로 커지면서 대형 해상풍력발전설치선(WTIV) 수요도 덩달아 늘었다. 터빈, 풍력발전 타워 등을 나르고 크레인을 장착해 발전소를 설치하는 데 쓰이는 선박이다. 발전타워업체 씨에스윈드도 영국에 생산기지를 짓고 있다. 씨에스윈드는 올해 1분기에만 해외에서 7,200억원가량의 타워 물량을 수주했다.
중견·중소기업으로 낙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KMC해운은 해상풍력 전용 예인선을 운영하는 덴마크 에스바그트(ESVAGT)와 합작사를 설립해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세아제강지주 영국법인인 세아윈드는 세계 최대 풍력발전사업 개발사인 오스테드로부터 하부 구조물(모노파일)을 수주했다. 이를 위해 영국에 모노파일 생산 기지를 착공했고 올해 말 완공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국내 해상풍력 프로젝트 운영에 참여할 경우 이는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치솟는 中 풍력 점유율에 反中 풍력동맹 가입
이에 우리 정부는 지난 15일 글로벌해상풍력연합(GOWA)에 가입하기로 결정하고 하반기 가입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사실 그간 GOWA의 한국에 대한 러브콜은 삼고초려에 가까웠다. 출범 직후인 2022년 말에도 한국에 가입을 권했으나 정부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덴마크 베스타스 등 풍력발전 기술에 특화된 글로벌 기업에 휘둘릴 수 있는 데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중 무역갈등이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확대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GOWA는 터빈, 타워, 하부 구조물 등 풍력발전의 주요 기자재 제작뿐만 아니라 기자재를 실어 나를 전용 선박이 필요한데, 중국 외에 이를 공급할 곳은 한국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번 결정에는 국내 해상풍력 시장마저 중국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골드윈드와 엔비전이 세계 풍력터빈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의 해상풍력 생태계는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에 기술력까지 갖추며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세계풍력에너지협회(GWEC)에 따르면 2021년 신규 풍력터빈의 53%가 중국산이었고, 지난해에는 65%까지 늘었다. 하부 구조물, 타워 등 각종 기자재를 합치면 중국의 점유율은 70%에 육박한다.
중국의 기술력도 날로 발전하는 추세다. 2015년부터 올해 4월까지 중국은 풍력발전 관련 국제 특허를 17만여 건 출원했으며,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인 16㎿급 풍력 터빈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중국의 해상풍력 파워는 한국 앞바다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남 영광군 계마항에서 약 40㎞ 떨어진 안마도 인근에 들어설 사업비 2조5,000억원 규모의 낙월해상풍력발전단지만 해도 핵심 부품이 모두 중국산이다. 터빈 64기는 벤시스가, 해저케이블은 중국 1위 전선업체 헝퉁광전이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GOWA가 한국을 해상풍력 파운드리 거점으로 낙점하면서 국내 발전, 조선, 철강 등 제조업 전반에도 낙수 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베스타스가 지난해 9월 싱가포르에 있던 아시아·태평양본부를 한국으로 옮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베스타스는 풍력터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과 기자재를 한국에서 제조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번 동맹 가입으로 풍력발전업계의 수출에도 날개가 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회원국 간 협력으로 수주 경쟁에서 중국에 앞설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해상풍력발전 사업의 국제표준을 한국이 주도할 가능성도 커졌다. 최덕환 한국풍력산업협회 실장은 “GOWA 가입은 기업 차원의 협력에서 이제 국가 단위로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대형 사업을 수주할 기회도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