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원자로 사업 수주 성공, 15년 만의 쾌거지만 일각선 ‘덤핑’ 논란도
한국수력원자력 15년 만에 원자로 수출 성공, 대상지는 체코
낮은 가격 제안에 덤핑 논란 확산, "성과 내세우기 위한 무리수"
윤석열 대통령의 '금융지원' 약속에 "경제성 낮다" 지적도 제기
한국수력원자력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이후 15년 만에 원자로를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대상지는 체코다. 이에 탈원전 정책 폐기를 내세우며 집권한 윤석열 정부의 최대 성과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편에선 ‘덤핑(생산 비용보다 낮은 가격)’ 논란도 적지 않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현지 건설 인력 우선 채용, 금융지원 등 각종 혜택을 약속한 탓에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체코 원전 프로젝트 우협으로 한수원 선정
17일(현지시각) 페트르 피알라(Petr Fiala) 체코 총리는 각료회의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한국의 제안이 모든 기준에서 (프랑스를) 앞섰다”며 신규 원전 프로젝트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수원을 선정했음을 밝혔다. 체코는 원전 6기를 가동하고 있는 두코바니(Dukovany)와 테멜린(Temelín)에 2기씩 최대 4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해 2036년부터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사업의 총규모는 24조원이며, 한수원은 테멜린 3·4호기 후속 수주를 위한 단독협상권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코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가 프랑스보다 낮고 정해진 예산 내 적기 시공을 약속한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이 원전을 짓는 데 사용하는 1kW(킬로와트)당 건설비는 3,400달러로, 프랑스의 건설비 7,500달러(약 1,040만원)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우리 정부 차원에서 금융지원 의사를 전한 바도 있다. 앞서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피알라 총리를 만나 “수출입은행(수은)을 통해 원전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두산이 2009년 인수한 체코 국민 기업 두산스코다파워도 현지 여론 형성에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의 두산스코다파워를 통해 신규 원전에 증기 터빈 등을 공급하겠단 계획을 발표한 게 여론의 동향을 K-원전 쪽으로 이끌었단 것이다. 한수원 측 역시 “한국이 원전 건설을 수주하면 기자재를 체코 현지에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며 K-원전이 체코 경제에 끼치는 장점을 중심으로 선전해 왔다.
‘덤핑’ 논란 촉발, 정부는 “어불성설”
이번 체코 원전 사업 수주는 한국에 있어 큰 성과다. K-원전이 원전 노형(모델)부터 건설, 시운전까지 전체를 수출하는 건 2009년 UAE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사례라서다. 윤 대통령에게 있어서도 분수령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 정책 폐기를 내세운 윤 대통령이 원전을 활용해 가시적인 성과를 낸 셈이기 때문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여당 인사들도 “윤 대통령이 막판까지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수주전에 나서는 등 국가적 총력전에 나선 값진 결과”라며 윤 대통령의 성과를 집중 조명하는 모양새다.
다만 일각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이 체코 현지 언론으로부터 덤핑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낮은 가격을 제안한 건 탈원전 폐기에 따른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무리수를 던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덤핑 논란에 금융지원 등 물밑 인센티브 제공까지 약속한 만큼 체코 원전 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극도로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표면상 공사비가 24조원인데, 현지 인건비와 현지 기업 지분 참여 비용 등을 제하면 우리 쪽으로 돌아올 액수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며 “여기에 인센티브 제공 약속 및 10년 넘게 이어질 장기 건설사업 리스크까지 고려하면 실제 이익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체코 원전 덤핑 논란에 대해 “어불성설”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체코 원전 브리핑에서 “덤핑은 시장 질서 교란을 위해 저가로 판매하는 행위”라며 “덤핑이란 표현은 어불성설이고 이번 원전 수주 건과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체코 원전 수주의 경제성이 낮다는 우려에 대해선 “금융지원은 현재 합의된 바가 없다”며 “2호기에서 금융지원 논의가 있을 수 있는데, 아직 결정된 게 없는 1기에 경제성이 낮다고 지적하는 건 팩트가 틀린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불안 목소리 여전, “폴란드 방산 수출 금융지원 전례 있어”
이처럼 정부 차원에서 관련 논란을 일축하고 나섰지만, 시장 일각에선 여전히 불안의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폴란드에 무기를 수출하면서 전폭적인 대출 금융지원을 해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폴란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9 자주포 152문 매수를 위한 2차 이행계약을 맺었다. 이후 약 30조원에 달하는 2차 무기 구매까지 타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폴란드는 한국에 대대적인 금융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월 수은의 법정자본금을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리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며 정책금융 한도를 상향했다. 2014년 법 개정 이래 유지돼 온 자본금을 10년 만에 10조원이나 늘린 것이다. 납입 자본금이 14조7,773억원으로 늘면서 지난해 말 기준 98.5%였던 자본금 한도 소진율은 60%로 떨어졌다. 그만큼 대출 여력이 늘었단 의미다. 국내 5대 시중은행 차원에서 82억 달러(약 11조원) 규모의 공동대출(신디케이트론)을 추진하도록 하기도 했다. 당시 은행들은 27억 달러(약 3조6,000억원)을 폴란드에 선지원 하기로 했다.
물론 방산 수출 시 금융지원을 더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실제 세계 1위 무기 수출국 미국도 대출, 보증, 보험 등 통상적인 수출금융지원뿐 아니라 ‘해외군사재정지원(Foreign Military Financing)’ 프로그램을 통해 일종의 차관 형식으로 무기 구매국의 금융지원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으며, 전문가들도 방산 수출에 금융지원을 이어가는 게 더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초기 이윤이 적더라도 시장에 진입하는 것 자체만으로 큰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폴란드 금융지원을 위해 마련한 수은법 개정안 등 제반 정책에 부작용이 우려된단 점이다.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총금액 한도는 현행법상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의 실적과 연계돼 정해진다. 이런 가운데 수은의 보증 한도 확대로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무보의 중장기수출보험 실적이 줄면 무보의 적자가 심화해 결국 국내 수출 중소·중견기업 지원이 약화할 수 있다.
방산 수출 지원 확대 등으로 관심이 쏠리는 상황은 수은 입장에서도 부담스럽다. 은행의 신용 공여가 한 산업이나 국가에만 쏠릴 경우 재무건전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어서다. 특히 수은은 지난 2016년 조선업에 선수금 환급보증(RG)을 무리하게 발급했다가 1조5,000억원의 막대한 손실을 보고 정부 재정을 투입해 겨우 정상화한 경험이 있다. 정부가 말하는 ‘금융지원’의 윤곽이 잡히기 전 우려의 목소리가 먼저 쏟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