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RA법 뒤집힐까”트럼프 귀환 가능성에 국내 ‘전기차·배터리’ 업계 촉각
트럼프 피격 사건 이후 상원·하원 레드웨이브 가능성↑
공화당이 백악관·의회 장악하면 '전기차 보조금' 폐지
부통령 후보도 내연기관 옹호, 국내 업계 이중 눈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상승세를 타면서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장악하는 ‘레드웨이브(공화당을 상징하는 붉은 색 물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의회 권력을 등에 업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폐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화당 승리 확률, 두 배 상승
1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대선 분석사이트인 레이스투화이트하우스·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조사 결과 공화당이 올해 같은 날(11월 5일) 치르는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서 모두 승리할 확률은 지난해 9월 8.7%에서 16일(현지시간) 약 두 배인 16.8%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모두 승리할 확률은 9.8%에서 4.3%로 내려갔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예측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은 56%로 집계됐고,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승리할 확률은 각각 78%, 61%로 나타났다. 상원은 100개 의석 중 34석이 교체 대상이며, 하원은 435개 전 지역구에서 선거를 치른다. 상원 임기는 6년, 하원은 2년이다. 대선과 상·하원 선거가 같이 치러질 경우 대통령 지지율이 의회 의석수를 이끄는 ‘코트테일(옷자락) 효과’가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공화당은 오는 11월 상원 선거에서 다수당 탈환을 노리고 있다. 현재 상원은 민주당 47석, 공화당 49석, 무소속 4석으로 구성돼 있다. 하원은 지역구가 총 435개라 각 지역의 승리 가능성을 합산해 예상 의석수를 계산하기 힘든 구조다. 다만 하원 선거는 전국 선거 성향이 짙은 만큼 대선에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부통령 후보, ‘드라이브 아메리칸 법’으로 트럼프 지지
이번에 공화당이 대선에 승리하고 상·하원까지 장악한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바이든 정책 뒤집기’도 힘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지원한 탈탄소·청정에너지 산업보다 화석연료 산업에 더욱 무게를 싣겠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결정된 J.D. 밴스 상원의원 역시 강성 내연기관 옹호론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밴스 후보는 지난해 전기차에 지급되는 보조금 7,500달러를 내연기관 자동차에 지급하자는 내용의 ‘드라이브 아메리칸 법안(Drive American Act)’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 발의 당시 그는 “바이든 정권이 보조금 수조 원을 해외에서 만든 전기차에 쏟아붓고 있다”며 “보조금은 다름아닌 오하이오 근로자들에게 지급돼야 하며, 중국이 일자리를 뺏어가고 있는 전기차 망상에 지급되선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밴스 후보는 법안 발의 일주일 전 작성한 기고문에서도 전기차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는 “포드, 쉐보레, 크라이슬러 로고를 단 전기차라도 핵심 부품은 중국산일 것”이라며 “중국이 글로벌 전기차 공급망, 특히 핵심 광물 및 배터리 공급망을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3대 완성차 업체들 중 2곳이 전기차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며 “포드는 전기차를 한 대 팔 때마다 3만2,000달러의 손해를 보는데, 이로 인해 근로자들에게 돌아갈 임금과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할 가격은 올라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론 머스크도 ‘전기차 보조금 폐지’ 찬성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또 있다. 글로벌 전기차 제조기업 테슬라의 CEO(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 CEO는 최근 자신의 X에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3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직후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공식 선언하는가 하면, 매달 트럼프 진영에 4,500만 달러(약 624억원)의 정치자금을 기부할 것이라 알리는 등 트럼프 당선에 풀 베팅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머스크의 이 같은 행보가 다른 업체를 도태시키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되면 미국에서 가장 큰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테슬라가 시장 점유율을 더욱 늘릴 수 있을 전망이다. 테슬라 강세론자이자 월가에서 ‘기술주 분석의 달인’으로 불리는 댄 아이브스(Dan Ives)도 최근 미국의 경제포털 야후파이낸스에 출연해 “보조금 폐지는 테슬라가 업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경쟁사들과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인 바이든 행정부의 테슬라 홀대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 2022년 2월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전기차 관련 행사를 개최했지만 정작 머스크 CEO는 초청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표면적으로는 테슬라가 전미자동차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으나, 사실은 머스크 CEO가 행사 도중 엉뚱한 발언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머스크 CEO는 바이든 대통령을 줄곧 ‘졸린 조(sleepy Joe)’라고 부르는 등 둘은 견원지간이 됐다.
국내 이차전지·자동차·반도체 기업 초긴장
트럼프 전 대통령이 IRA를 폐기하겠다고 수 차례 공언한 데 이어 러닝메이트인 밴스 후보와 머스크 CEO의 행보까지 밝혀지면서 미국 전기차 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한국 완성차 및 배터리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IRA는 미국 내에서 만든 배터리·전기차에 한정해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주는 제도로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이차전지 업체들은 IRA를 지렛대 삼아 미 현지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폐지보다 축소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중론이다. 공화당 강세 지역도 IRA에 기반한 투자가 늘어나는 등 수혜를 입고 있어서다. 현대차·기아도 미 대선 영향권에 놓여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타깃으로 해외 완성차 업체를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으로의 완성차·전기차 수출은 기본관세가 2.5%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의해 우리나라는 ‘무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무관세 협정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의 경우 미국 정부의 지원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중국을 견제하고 반도체 산업을 자국 내 유치해야 한다는 전략이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어서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만 문제를 언급하면서 “그들(대만)이 우리 반도체 사업의 약 100%를 가져가기는 했다”고 말한 점을 비춰볼 때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에 따른 지원금을 미국 기업에 몰아줄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