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첨단기술 자랑 대회’ 된 올림픽, 도핑과 다를 바 없다
물 저항력 줄여주는 특수 수영복부터 에너지 효율 높여주는 러닝화까지
통일된 규정 없어 종목별 연맹이 자체 규정 만들어 적용하는 상황
“스포츠와 기술 결합은 피할 수 없는 흐름” 주장 제기도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올림픽 무대에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물에 대한 저항력을 줄여주는 첨단 소재 수영복, 탄소 섬유판 밑창을 달아 추진력을 높인 러닝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첨단 기술은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려 주지만 일각에선 “도핑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림픽, 실력 아닌 기술 잔치 됐다
오늘날 올림픽은 ‘기술 대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로모션 카메라가 찰나의 순간을 찍어 1위와 2위를 가르고, 태권도나 펜싱 경기에선 옷에 달린 센서가 매우 미세한 터치를 감지해낸다. 이에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은 모션 센서는 물론, 미세 전류 및 젖산 모니터링 시스템까지 도입하며 기량을 개선한다. 이렇듯 기술과 스포츠는 불가분의 관계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이 둘의 관계를 두고 부쩍 논란이 거세다. 이른바 ‘기술 도핑’에 가까운 장치들이 신성한 스포츠맨십에 불공정함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올해 파리올림픽도 예외는 아니다. 일례로 내달 1일(현지시간) 막을 올리는 육상 종목에선 신기술을 도입한 장거리용 특수 신발이 첫선을 보일 예정인데, 이 신발을 두고서도 기술 도핑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직접 감시하는 약물 도핑과 달리 이 같은 특수 의류 및 장비 사용은 아직까지는 대부분 합법의 영역이다. 그런가 하면 각 분야에서 자체적으로 사용의 정당성 여부를 결정한다. 미국반도핑기구(USADA)는 일반적인 도핑과 기술 도핑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장비 사용 기준을 세우는 건 어디까지나 각 분야 스포츠 단체의 몫이라는 얘기다. 선수들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정도와 비용, 특이성 등을 모두 고려해 이런 특수 장비의 사용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통일된 기준도 아직 없다. 어떤 분야에선 특수 장비가 허용되지만 다른 분야에선 특수 장비를 썼다가 실격 처리되는 일도 발생하곤 한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전체 금메달의 94%를 ‘스피도 LRZ 레이서(Speedo LZR Racer)’라 불리는 특수 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이 싹쓸이했다. 전신 수영복인 이 제품은 원단부터 솔기 모양까지, 모든 부분이 물에 대한 저항력을 줄일 수 있도록 섬세하게 설계됐다. 스피도 수영복을 입으면 근육의 진동이 최소화되고 물에 닿는 표면이 매끄러워져 저항력이 줄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좋은 기록이 나온다. 당시 베이징올림픽에서 수영 신기록 23개를 세운 선수들은 모두 스피도를 입었다. 지난 2009년엔 93개 신기록이 이 수영복 기능에 힘입어 탄생하기도 했다. 이후 기술 도핑 논란이 확대됐고, 결국 국제수영연맹(FINA)은 전신 수영복 착용을 금지했다. 현재 남성용 수영복은 무릎 길이만 허용된다.
논란이 된 건 수영복만이 아니다. 지난 2019년 케냐의 마라톤 국민 영웅 엘리우드 킵초게(Eliud Kipchoge)는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안에 완주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나이키(Nike)가 만든 특수 신발 덕이다. 이 신발의 상업용 버전인 알파플라이(Alphafly)와 베이퍼플라이(Vaporfly)는 이후 수많은 장거리 달리기 신기록에 일조했다. 킴 에베르-로시에르(Kim Hébert-Losier) 뉴질랜드 와이카토대(University of Waikato) 생체역학 연구원은 신기술을 장착한 이런 ‘슈퍼 신발’들의 주요 특징으로 가볍고 에너지를 반사하는 안창, 밑창을 아우르는 곡선 구조의 단단한 판, 선수들이 추진력을 이용해 앞으로 튀어 나갈 때 자연스럽게 힘을 더해주는 곡선 모양을 꼽았다. 이 같은 디자인은 선수들이 적은 에너지로도 더 많은 거리를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는 분석으로, 특수 신발 없이 같은 거리를 같은 속도로 달릴 때보다 훨씬 더 적은 산소가 필요하게 되는 셈이다. 연구에 따르면 베어퍼플라이 신발의 경우 달리기에 필요한 에너지 효율을 평균 4% 향상시켰다.
올해 파리올림픽에서도 ‘슈퍼 스파이크’로 불리는 이런 특수 신발이 등장할 전망이다. 연구원들은 이 신발이 에너지 효율을 1.5%가량 끌어올린다고 보고 있다. 다만 단거리 달리기에 쓰이는 신진대사 에너지는 정확하게 계산해 내기가 쉽지 않은 만큼 실제로 이 신발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에베르-로시에르 연구원은 취미 러너들을 상대로 베이퍼플라이 제품의 효과를 실험했는데, 그 결과 에너지 효율은 평균 4% 향상됐지만 어떤 실험 대상자는 10%까지 기량이 향상되는 등 개인별로 편차가 컸다.
스포츠 단체서 앞다퉈 규정 내놨지만 논란은 여전
이러한 특수 신발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육상연맹(WA)은 지난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착용 가능 러닝화와 관련된 새 규정을 발표한 바 있다. 규정에 따르면 특수 신발은 뒤꿈치 높이가 경기별로 최대 20~40mm여야 하고, 신발에 장착하는 단단한 판은 1개만 깔 수 있다. 최소 4개월간 일반인들에게 판매해야 한다는 규정도 새롭게 만들었다. 그 결과 뒤꿈치 높이가 정확히 40mm였던 베이퍼플라이가 기준을 통과했고, 알파플라이는 기준에 맞게 개조된 뒤 재출시됐다. 덕분에 나이키는 러닝화 분야는 물론 및 이번 올림픽에서도 다른 브랜드보다 특수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나이키는 “엘리트 경기의 정신을 존중하고 선수가 뛸 때 쓰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반환하는 신발은 만들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혁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 전체 산업과 스포츠를 발전시키는 경쟁적 반응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다른 브랜드들도 앞다퉈 비슷한 특수 신발을 내놨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베이퍼플라이를 뛰어넘는 성능을 선보인 제품은 아직 없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경우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선수가 단순히 베이퍼플라이를 신은 것만으로도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올림픽의 생의학과 문화, 정치, 사회 구조 등을 연구하는 앤디 미아(Andy Miah) 영국 샐퍼드대(University of Salford) 교수는 이 같은 기술 경쟁이 엘리트 체육계의 일부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아 교수는 “특허권을 쥐고 있는 업체와 빠르게 손을 잡는 건 엘리트 스포츠 팀들에 매우 현명한 전략이 될 것”이라며 “기술 덕에 선수들은 최고의 기량을 만들어낼 수 있고, 똑똑한 팀들은 이를 바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엘리트 체육계에 기술을 접목하는 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엘리트 체육계의 성과는 늘 생물학적 능력과 기술적 수단을 결합한 결과물이었고, 타고난 운동선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현 상황이 선수들 간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특수 신발들은 대개 일반 러닝화보다 빨리 닳는 탓에 후원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은 특수 신발로 훈련하려면 돈이 더 많이 든다. 전문가들은 450km를 달릴 때마다 러닝화를 교체할 것을 권장하는데, 특수 신발들이 켤레당 250달러(약 34만원)가 넘는 것을 고려하면 후원사가 없는 선수들에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선수들은 금메달이 너무나도 절실한 나머지 특수 신발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에베르-로시에르 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부 선수들은 나이키 신발을 신기 위해 다른 후원사와의 관계를 종료하기도 했다.
그간 엘리트 체육계 내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요소로 지목된 건 장비와 코치진, 시설 등의 격차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술 도핑이 브랜드를 독점하는 문제와 비싼 가격 등으로 이 같은 불평등을 더 키우고 있다. 지금처럼 종목별 단체들이 주먹구구식으로 규정을 운영하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사이클링에선 양말 길이가 엄격하게 규제되지만 달리기 종목엔 적용되지 않으며, 탄소섬유는 달리기에선 쓸 수 없지만 장대높이뛰기에선 가능하다. 특수 신발의 사용 금지 여부를 가르는 기준도 밑창 두께 몇 mm에 불과하다. 스포츠 단체들이 내놓은 규정들을 두고 매번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원문의 저자인 브리 이스칸다르(Bree Iskandar)는 전임상(preclinical) 신약을 연구하는 과학자이자 프리랜서 과학 작가입니다. 영어 원문은 Is Technology in the Olympics a Form of Doping or a Reality of Modern Sport? | Scientific American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