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 ‘첨단 기술’ 또 中 유출, ‘OLED 포트폴리오 구축’에 비상등
'OLED 기술 유출' LG디스플레이 前 직원들 재판행
시진핑도 다녀간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서 유출
OLED 시장 왕좌도 중국에 내줘, 커지는 기술 탈취 우려
LG디스플레이가 자사 핵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의 거듭된 중국 유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을 위해 ‘고수익 OLED 중심 포트폴리오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중국 경쟁업체의 추격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OLED 양산 기술 中에 유출한 LGD 직원들 기소
29일 업계에 따르면 일부 LG디스플레이 전직 직원들은 2021~2022년 사이에 중국 광저우 공장 내 대형 OLED 패널 양산 기술을 중국 경쟁업체에 넘긴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안동건)는 최근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LG디스플레이 전직 직원 A씨 등 관련자 2명을 구속기소하고 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2021년께 중국의 대형 디스플레이 업체로 이직하면서 범행을 시작, 이직 후에는 당시 LG디스플레이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원 등과 공모해 대형 OLED 양산 기술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평소 LG디스플레이에서 처우에 대해 불만을 갖던 와중에 이를 파악한 중국 경쟁사에서 고액의 연봉을 제안하자 이직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LG디스플레이에서 약 20년간 OLED 등 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팀장급 직원이다.
광저우 공장은 지난해 4월 시진핑 주석이 이례적으로 방문하며 이목을 끌었던 곳이다. 시 주석의 방문은 최근 양국 디스플레이 업계가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OLED를 향한 국가적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기술 유출도 중국의 대대적인 ‘기술 굴기’ 정책 차원에서 이뤄진 사고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중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을 저지해야 하는 국내 업계로선 뼈아픈 실책이다.
지난 2021년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국내 업계를 추월한 중국 업계는 최근 OLED 시장에서도 선두 자리를 거머쥐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올 1분기 기준 OLED 패널 시장 점유율 49.7%를 기록하며 한국 기업(점유율 49.0%)들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한국과 중국의 OLED 시장 점유율이 전년 동기 기준 각각 62.3%, 36.6%였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1년 새 급속도의 성장을 이뤄낸 셈이다. 특히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적자 늪 탈출을 위해 고수익인 OLED 중심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중국에 OLED 인력·기술 다 뺏길 판
더욱이 이번 기술 유출 사건은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기술 유출 사고가 발생한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에는 LG디스플레이의 LCD 제조 노하우가 그대로 있는 동시에 삼성전자·LG전자 등 대형 TV 제조사 대상 납품 이력을 가진 핵심 시설이기 때문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경찰이 송치한 해외 기술 유출 사건은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9건 △2022년 12건 △2023년 22건이었다. 특히 디스플레이 관련 기술 유출 송치 건수가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019년 1건 △2020년 2건에 불과했지만 △2021년 3건 △2022년 7건 △2023년 12건으로 급증했다. 그만큼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경쟁이 치열한 분야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앞서 삼성디스플레이도 기술 빼가기의 대상이 된 바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은 지난달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국외누설 등) 혐의로 기소된 삼성디스플레이 설비개발팀 수석연구원 출신 B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B씨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업체에 판매하기 위해 삼성 영업비밀인 OLED 디스플레이 ELA 설비 반전광학계, OCR 잉크젯 설비 관련 기술 등을 부정 취득해 사용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재판에 넘겨졌다.
ELA 설비 반전광학계는 OLED 디스플레이 전자회로에 쏘는 레이저의 강도와 안전성을 유지시키는 장치며, OCR 잉크젯 설비는 OLED 디스플레이의 패널과 커버글라스를 접착하는 설비다. 해당 기술들은 3,400억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 B씨는 삼성디스플레이에서 10년 이상 근무하고 퇴사한 뒤, 자신이 중국과 함께 국내에 설립한 업체를 중심으로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기술 유출 피해를 본 LG디스플레이에서도 과거 전직 직원이 디스플레이 발광 기술인 아몰레드(AMOLED) 등을 중국 경쟁사로 유출하려다 징역형을 선고 받은 바 있다. 대법원 2부는 지난 6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LG디스플레이 전 팀장 C씨에게 징역 1년6개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C씨는 2021년 1월부터 2월까지 LG디스플레이 아몰레드 설계 및 공정·제조 기술, 생산 공장 도면 등 국가핵심기술 자료 총 68건을 열람하고 촬영한 1,065장 사진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C씨는 2012년부터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하다가 2021년 코로나19 여파로 자가 격리 중 재택근무를 하던 중 퇴직 의사를 밝혔는데, 검찰 조사 결과 C씨는 기밀을 촬영하기 전부터 퇴직 후까지 경쟁사인 중국 회사에 이직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토사구팽을 당할지언정 돈이라도 챙기겠다” 속수무책 기술 유출 사고
이처럼 경영 실적 부진 속에 인재는 물론 핵심 기술 노하우까지 중국으로 빠져나가면서 디스플레이 업계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디스플레이 업계는 보안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술 유출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중국이 인재를 빼가고 배치하는 방식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BOE나 CSOT 같은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한국 업체가 이직 사실을 쉽게 알지 못하도록 자회사나 연구기관 등을 만들어 한국 인력을 ‘위장 취업’시키기도 한다.
일부 기업에선 핵심 기술을 다루는 직원의 계약서에 ‘퇴직 후 2년 동안 동종 업계에 취직할 수 없다’는 조항을 넣어 인력 유출을 막으려는 시도도 나오지만 실제 계약 위반이 확인돼 법적 조치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는 개인의 출입국 기록까지 추적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 더 나은 처우 등을 제공하는 곳으로 이직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반박도 나온다. 중국 업체들 역시 이를 노리고 회사 정책이나 인사에 불만이 있는 실무진들을 노린다. 실제로 과거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LCD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차피 한국에 돌아가도 대접은 비슷할 테니 토사구팽을 당하더라도 차라리 돈이라도 챙기겠다”며 팀장급과 팀원 상당수가 그대로 중국으로 남았던 사례도 있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실상 국가 핵심의 기술이 고스란히 외부로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한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이직’과 ‘기술 유출’을 구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중국 업체들도 결국 첨단 기술을 노리고 한국에서 직원들을 데려가는 것 아니겠냐”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