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직전’ 바이오 업계, 단기 실적 좇는 투자자들·불합리한 약가 제도가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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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업계 침체기 심화, 기준금리 인하로 투자심리 회복될 수 있을까
단기 실적에 매몰된 투자시장, 바이오 기업들도 CDMO에 집중
주먹구구식 제도에 '코리아 엑소더스' 가시화, "규제 개혁 나선 일본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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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난 장기화 등 영향으로 바이오 업계 전반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업계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인하 시 투자심리가 회복될 수 있단 시선에서다. 문제는 국내 투자시장이 단기 실적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단 점이다. 장기투자가 불가피한 바이오 업계는 국내 투자시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단 의미다.

자금줄 마른 바이오, 벤처캐피털 투자 2년 만에 절반 수준

1일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이날 중고 바이오 장비 직거래 마켓에 나온 의약품 보관용 냉동고, 세포배양기, 고속원심분리기 등 매물은 58건에 달했다. 5개월 전(34건) 대비 70% 증가한 수준이다. 해당 마켓은 협회가 운영하는 것으로, 중고 장비 매물 건수는 바이오 업황의 바로미터로 활용된다.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보관용 냉동고와 세포배양기 등은 바이오기업이 서너 대씩 보유해야 하는 기본 장비”라며 “중고 매물이 늘었다는 건 현금이 급해 기본 장비마저 내다 파는 곳이 늘었단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바이오 업계는 고사 직전에 몰려 있다. 바이오벤처의 자금줄인 벤처캐피털이 신규 투자를 줄인 탓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의 바이오·의료 신규 투자는 2021년 1조6,770억원에서 지난해 8,844억원으로 2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투자 금액도 5,929억원에 머물렀다.

금리 인하가 분수령? 시장선 “글쎄”

업계는 이번 달 미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금리 인하가 현실화하면 국내 투자심리가 개선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기업공개(IPO)를 통한 글로벌 자금 조달액은 이미 유의미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제약·바이오 전문 시장조사 업체 딜포마(DealForma)의 데이터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텍이 올해 상반기 IPO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44억 달러(약 5조8,7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35억 달러), 지난해(29억 달러) 등 연간 규모를 넘어선 수준이다. 차후 국내 바이오 업계에도 안개가 걷힐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다만 시장의 반응은 다소 회의적이다. 국내 투자 시장에 바이오 R&D(연구개발)에 대한 몰이해가 만연한 탓이다. 통상 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 성공률은 극히 희박하고, 임상 단계에서 허가 승인에까지 소요되는 시간도 10년에 달한다. 신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 드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 성공 건수는 1999년 선플라주(항암제) 이후 2022년까지 총 36건에 불과하다. 바이오 기업은 장기 투자가 기본이란 뜻이다.

그러나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은 대부분 단기 실적에 쏠려 있다. 이렇다 보니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금은 생산 공장으로 실적을 내는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에 몰렸고, 상위권 바이오 기업들도 추세를 따라 신약 개발보단 CDMO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실례로 셀트리온은 항체의약품 생산에 집중해 10년 만에 4배 이상의 성장을 이뤘고, 유한양행은 글로벌 제약사의 도입 품목 판매를 기반으로 지난해 1조8,58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CDMO에 적극 투자해 7년 만에 약 12배 성장했다. 신약 개발에만 매몰돼 있어선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국내 제약업계의 현실과 맞지 않는 약가 제도도 걸림돌로 꼽힌다.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신약을 개발해도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단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리포락셀이다. 리포락셀은 대화제약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경구용 파클리탁셀제로, BMS에서 만든 항암 주사제를 경구제로 바꿔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었단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16년 9월 식약처로부터 복용 편의성과 기술 진보성 등을 인정받아 개량신약으로 허가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 약이 현행 약가 제도가 요구하는 우대 기준이 없었단 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투여 경로 변경 개량신약의 약가 산정에 대한 내용은 현재 전무한 상태다. 주사제를 경구제로 업그레이드하고도 리포락셀이 약가 우대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심평원은 리포락셀의 약가를 파클리탁셀 가운데 가장 저렴한 용량인 300mg을 기준으로 결정했고, 리포락셀은 파클리탁셀 제네릭 중에서도 가장 낮은 약가를 받아 들게 됐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바이오 기업들은 국내보단 해외 길을 먼저 모색하는 모양새다. 한미약품은 경구용 항암제 오락솔을 개발한 뒤 지난 2011년 미국 아테넥스에 오락솔을 기술 수출까지 했지만 막상 한국에선 이 약의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다. 대화제약도 2022년 9월 중국 허가 당국에 리포락셀의 위암 적응증에 대한 품목 허가를 신청한 뒤 승인을 대기 중이다. 정부의 주먹구구식 제도가 국내 기업의 ‘코리아 엑소더스(Korea Exodus)’를 촉발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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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월 30일 열린 ‘신약 개발 생태계 서밋’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사진=일본 수상관저

바이오 역량 강화 나선 일본 정부, 규제 개혁 등 적극적인 태도 견지

반면 일본 정부는 바이오 역량 강화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2021년 11월 880억 달러(약 118조원) 상당의 ‘대학 펀드’ 설립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일본 정부는 공적 자금을 활용해 펀드를 조성, 학내 연구개발을 가속하고 민간 부문의 기술 이전을 진척시켰다.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책도 거듭 펴냈다. ▲고베의료산업도시 및 쇼난 아이파크 조성 ▲2014년 도쿄 니혼바시 지역의 ‘LINK-J’를 R&D 특별구역으로 지정 등이 그것이다. 현재 이들 지역엔 적게는 100여 개에서 많게는 300여 개까지의 기업이 입주 혹은 멤버로 참여해 네트워킹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자국 바이오 산업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전략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인 셈이다.

물론 일본 정부의 정책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대학 펀드의 경우 상업화를 추구하는 과학자보다 학술연구를 추구하는 학자를 높게 평하는 일본 학술계의 기조 탓에 투자 인프라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 생태계 구축 정책 역시 노력에 비하면 성과가 미미하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제산업성 내 산업구조번의회도 자국의 바이오 클러스터에 대해 “아직 글로벌 바이오 커뮤니티라고 불릴 만한 곳은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일본 정부는 다소간의 실패 이후에도 여전히 생태계 구축에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사람에게 시험 약물을 처음으로 투약하는 ‘퍼스트인휴먼(First-in-Human)’ 체계 구축에 나서는가 하면, 최근엔 오는 2025년부터 바이오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만들겠단 계획도 세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역시 거듭 바이오 산업에 관심을 표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7월 30일 총리 관저에서 ‘신약 생태계 서밋’을 열고 “자국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엔 바이오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창약(신약 개발)력 구상 회의’를 갖고 정책 추진 방향을 결정한 바도 있다. 정부가 업계 관계자와 이 정도 규모의 회의를 여는 건 상당히 드문 일로 바이오 생태계 구축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단 방증이다. 일본 정부의 바이오 계획을 우리 정부가 주목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