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온상’ 텔레그램 CEO “플랫폼 사용자 범죄로 대표 기소는 부당”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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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두로프 CEO, 프랑스서 체포 이후 첫 공식 입장
“이용자 범죄로 CEO 기소는 잘못된 접근" 주장
범죄 온상 오명 '텔레그램', 자유 가치 뒤에 숨어 범죄 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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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사진=파벨 두로프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Pavel Durov)가 항변 입장을 내놨다. 프랑스 사법당국이 CEO 개인을 체포하는 대신, 텔레그램 서비스에 직접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프랑스 당국에 체포된 이후 두로프가 공식 입장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3자 범죄로 플랫폼 CEO 기소는 잘못” 프랑스 사법당국 질타

5일(이하 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두로프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만약 어떤 국가가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서비스 자체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관행”이라며 “스마트폰이 존재하기도 전에 제정된 법률에 근거해 제3자인 플랫폼 이용자가 저지른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플랫폼 운영자를 기소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텔레그램 이용자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부인함과 동시에, 설령 플랫폼이 범죄행위로 인해 문제가 됐다 하더라도 운영자 개인이 아닌 텔레그램 법인을 기소했어야 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두로프는 프랑스 당국뿐 아니라 텔레그램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 묘사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텔레그램이 무법 천국(anarchic paradise)이라는 일부 언론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매일 수백만 개의 유해 게시물과 채널을 차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떠한 혁신가도 이러한 도구의 잠재적 남용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새로운 도구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텔레그램의 성장통으로 인해 범죄자들이 플랫폼을 악용하기 쉬워진 만큼 이 부분을 크게 개선하는 것을 개인적인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텔레그램 악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추가 변경 사항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당국에 의해 체포된 이후 두로프가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두로프는 프랑스 당국이 핫라인이나 텔레그램 유럽연합(EU) 담당자를 통해 언제든 연락을 취할 수 있었으면서도 곧바로 조사에 착수해 놀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두로프, 보석금 500만 유로 조건으로 석방

앞서 프랑스 검찰은 지난달 28일 두로프를 예비 기소했다. 프랑스에서 예비 기소란 범죄 혐의가 있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지만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내리는 처분으로 예비 기소된 피의자는 혐의를 더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위한 수사판사의 조사 뒤 본기소 여부를 판단 받는다. 본기소까지 몇 년이 걸릴 수 있으며,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10년 징역과 50만 유로(약 7억4,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두로프는 보석금 500만 유로(약 74억원)를 내는 조건으로 석방됐지만 출국금지 조치와 함께 일주일에 두 번씩 경찰서에 방문하라는 명령까지 내려지면서 꼼짝 없이 프랑스에 발목이 묶인 상태다.

현재 프랑스 사법 당국이 제기하는 두로프의 혐의는 미성년자 성범죄와 마약 밀매 사기 등 범죄 조직의 불법 거래와 관련한 책임이다. 텔레그램 내 불법 행위를 두로프가 묵인·방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밖에 자금 세탁 및 범죄자들에게 암호화 서비스를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체포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두로프가 텔레그램 내 불법 행위와 관련한 프랑스 수사 당국과의 의사소통을 거부한 혐의다. 앞서 프랑스 검찰은 미성년자 성 착취물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텔레그램에 용의자의 신원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응답이 없자 지난 3월 두로프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두로프는 지난달 24일 저녁 파리 외곽 르부르제 공항에 전용기를 타고 내리다가 프랑스 수사 당국에 잡혔다. 두로프는 자신이 수배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제르바이잔에서 파리로 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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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수사 요청에 비협조, 성착취·마약 거래 등 범죄 온상

두로프의 예비 기소를 두고 일각에서는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범죄 행위에 대해 CEO도 형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 사실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파장을 예상하고 있다. 이에 몇몇 유명인사들은 즉각 규탄에 나섰다. 엑스(X·옛 트위터)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두로프와 터커 칼슨(Tucker Carlson) 전 폭스뉴스 앵커가 대화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과 함께 ‘#파벨에게자유를(FreePavel)’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리는가 하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전 세계적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던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대한 공격”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두로프 역시 대표적인 표현의 자유 옹호론자다. 그는 지난 3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한,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단속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제는 프랑스 사법 당국의 지적대로 텔레그램이 온갖 범죄의 통로가 됐다는 점이다. 구소련 태생인 두로프는 2006년 러시아에서 프콘탁테(VK)라는 메신저 서비스를 시작해 인기를 끌었으나 러시아 당국의 가입자 정보 제공 요구에 직면했고, 이를 거부한 두로프는 2013년 독일로 망명, 이후 친형 니콜라이 두로프와 함께 텔레그램을 창업했다.

철저한 암호화·익명화를 최대 강점으로 내세운 텔레그램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플랫폼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비밀대화 메시지에는 ‘종단간 암호화’ 기술이 적용되는데, 수신자와 발신자 외에는 대화 내용을 알 수 없고 메신저 업체의 서버에도 내용이 남지 않는다. 비밀 대화 기능으로 대화 내용이 일정 시간 후에는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수신자의 디바이스에 남겨진 발신자 메시지도 삭제할 수 있다. 이 같은 철통 보안은 정부 검열이 심각한 일부 국가에선 주요 뉴스 플랫폼으로서 언론 자유의 보루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를 통해 텔레그램은 이용자 수 10억 명에 달하는 세계 4위 메신저 플랫폼으로 성장했지만, 보안성을 악용한 범죄에 대해선 철저히 침묵하는 모습으로 비판을 사고 있다. 텔레그램 안에서 테러 모의나 마약 거래가 이뤄진 사례는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으며, 2020년 ‘N번방 사건’과 올해 ‘서울대 N번방’ 가해자들이 성착취물을 거래한 플랫폼도 텔레그램이었다.

그럼에도 텔레그램은 각국 수사기관의 자료 요청에 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플랫폼 자체 검열에도 소홀했다. 실제 N번방 사건의 경우 경찰이 수사 목적으로 7개월 동안 7차례에 걸쳐 텔레그램에 수사협조 메일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결국 트위터·페이스북·가상화폐 거래소 등 다른 플랫폼에서 파악한 물증으로 조주빈 등 가해자를 붙잡았다. 각종 범죄가 판치면서 ‘범죄 소굴’이라는 악명까지 썼지만, ‘중립적 플랫폼’으로 남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각국 수사당국의 협조 요청을 무시해 온 것이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보장과 범죄 악용 우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검열받지 않는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가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으나, 인공지능(AI) 딥페이크가 쉽게 제작되고 성착취물의 무분별한 유포로 수많은 피해자들이 고통받는 상황속에서도 자유의 가치를 이유로 묵인하는 것은 ‘범죄 공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