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대륙아주’ 징계 개시 결정한 변협, 리걸테크 업계 한숨 깊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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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 'AI 대륙아주' 징계 절차 개시
엘박스 등 유사 업체도 도마 위에, 양측 주장 첨예
"한국 시장 한계 명확" 리걸테크 기업들의 활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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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인공지능(AI) 기반 무료 법률 상담 챗봇 서비스 ‘AI 대륙아주’에 대한 징계 절차를 시작했다. 리걸테크(legal-tech, 첨단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형태의 법률 서비스) 시장 전반이 AI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 고도화에 속도를 내자, 이와 관련한 변협의 제재 수위 역시 높아져 가는 양상이다. AI를 중심으로 한 법조계의 갈등이 점차 격화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변협의 과도한 제재가 국내 리걸테크 시장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AI 법률 상담’ 정조준하는 변협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변협은 이날 조사위원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AI 대륙아주에 관한 징계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AI 대륙아주는 리걸테크 업체 넥서스AI가 네이버의 AI인 ‘하이퍼클로바X’를 활용해 개발한 AI 챗봇 서비스로, 이용자의 소송이나 법률 관련 문의에 24시간 답변을 제공한다. 답변을 생성하는 AI는 대형 로펌인 대륙아주가 축적한 법률 데이터와 소속 변호사들이 고안한 1만여 개 질문·모범 답안을 학습한 것으로 전해진다.

변협은 지난 3월 AI 대륙아주가 최초 출시됐을 때부터 대륙아주 측에 ‘24시간 무료 AI 법률 상담이 변호사 광고 규정 위반 소지가 있어 보인다’는 취지가 담긴 공문을 보내며 해당 서비스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AI의 답변 하단에 광고를 노출해 로펌이 직·간접적으로 이익을 얻는 것은 ‘변호사 광고 규정’ 위반이 될 수 있으며, AI가 의뢰인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이용할 경우 공공성 침해 및 변호사 품위 유지 위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은 것이다.

향후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대표 변호사, 소속 변호사들에 관한 구체적인 징계 수위와 사유는 상임이사회를 거쳐 징계위원회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조사위원회에서 징계에 관한 의결이 나오면 상임이사회에서 관련 논의를 실시하고, 이후 안건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식이다. 다만 변협 징계위원회가 결론을 내리더라도 대륙아주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최종 판단 권한은 법무부 징계위원회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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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엘박스 홈페이지

“법률 위반 소지 없다” 업체들 반박

변협이 AI 기반 법률 상담 서비스에 본격적인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엘박스AI’ 등 AI 대륙아주의 유사 서비스 역시 변협의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변협은 올해 5월 엘박스와 법무법인 대륙아주에 대한 형사고발 검토를 마쳤다고 밝힌 바 있다”며 “AI 대륙아주의 징계를 시작으로 (유사 서비스에 대한) 추가적인 징계 조치에 나서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엘박스AI는 변호인들의 법률 사무를 돕기 위해 판례 제공 업체인 엘박스가 개발한 대화형 AI 검색 서비스로, 4월 출시 이후 변호사 인증을 거친 사용자에 한해 사용 신청을 받아 시범 운영 중에 있다.

변협의 직접적인 제재 압박을 받은 기업들은 줄줄이 반박 의견을 내놓고 나섰다. 지난 5월 변협이 형사고발 검토 완료 소식을 전했을 당시, 엘박스 측은 “엘박스AI는 변호사의 법적 서비스에 필요한 문헌, 데이터 등을 변호사에게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없다”고 항변했다. 엘박스AI는 이미 로펌과 법률 검토를 마치고 출시된 합법적 서비스라는 주장이다.

대륙아주 측은 AI 대륙아주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정보가 일반적·추상적 법률 지식 수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AI 챗봇을 통한 상담은 변호사가 직접 수행하는 법률 상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변협이 제기한 광고 수익 창출, 고객의 소송 정보 무단 사용 의혹 역시 사실무근이라고도 반박했다. AI 대륙아주 서비스에는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나 변호사 품위 유지 의무 위반, 공공성 침해 등 문제의 소지는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에서 등 돌리는 리걸테크 기업들

일각에서는 변협의 과도한 제재 움직임이 국내 리걸테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도 흘러나온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최근 리걸테크 기업들은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AI가 방대한 법률 데이터를 순식간에 확인해 필요한 판례를 정리해 주고, 문서 작업까지 수행하는 시대”라며 “변협의 징계 위협이 국내 리걸테크 시장의 성장 자체를 저해하진 않을까 우려된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는) AI를 발판 삼아 도약하고 있는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에서 뒤처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퓨처마켓인사이츠(FMI)에 따르면, 2024년 296억 달러(약 41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은 생성형 AI 도입으로 인해 2034년 680억4,000만 달러(약 90조9,3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한편 국내 리걸테크 시장의 한계를 확인한 일부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법률 체계가 비슷하고 정보통신(IT), 법률 산업 규모가 큰 일본으로 향하는 기업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일례로 법률 AI 솔루션 기업 BHSN은 지난해 9월 일본 자회사를 설립,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다졌다. 아시아 국가의 언어로 문서를 처리할 수 있는 자사 ‘Legal LLM(대형 언어 모델)’의 특성을 살려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양상이다. AI 리걸테크 플랫폼 인텔리콘은 지난해 4월 일본에서 ‘AI 문서 분석 시스템과 AI 법률 시각화 모델’에 관한 특허를 등록, 현지 경쟁 업체들의 모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리걸테크 업계 종사자는 “변협과의 파이 싸움, 성장 부진 등에 시달리는 국내 리걸테크 기업에 일본은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현시점 일본과 한국의 리걸테크 시장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재 일본의 리걸테크 시장에서는 현재 한국의 약 2배에 달하는 60여 개 기업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최대 변호사 중개 플랫폼 ‘벤고시닷컴’, 계약서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걸온테크놀로지스’ 등 차별화에 성공한 일부 리걸테크 기업들은 매서운 성장세를 기록하며 유니콘 기업(기업가치를 약 1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은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등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