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겨울 온다더니, 삼성·하이닉스 바로미터 ‘마이크론’ 실적 전망치 상향
카빈 인베스트먼트 “올해 D램 가격 97.5% 상승”
마이크론 내년 실적 전망치도 상향 조정
“모건스탠리의 겨울론은 기우" 수요 견조 의견 팽배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메모리 업황 비관론을 담은 보고서를 내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향후 실적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헤지펀드와 국내외 증권사들이 마이크론의 회계연도 4분기(6~9월) 실적 발표를 앞두고 실적 전망치를 대폭 높이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반도체 겨울’을 경고한 것과는 달리 메모리 시장의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주요 반도체 기업들 역시 시장의 우호적 흐름을 타고 성장세를 기록할 것이라는 해석으로 읽힌다.
카빈 인베스트먼트, 마이크론 실적 전망 상향 조정
22일(현지시간) 미국 투자전문매체 시킹알파(Seeking Alpha)에 따르면 현지 헤지펀드 카빈 인베스트먼트(Khaveen Investments)는 마이크론이 지난 분기의 강력한 매출 성장을 바탕으로 33%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세도 올해 내내 지속될 것으로 관측했다. 이는 D램과 낸드 수요가 공급을 따라오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 모건스탠리의 경고와는 다른 시각이다.
앞서 모건스탠리는 지난 15일 ‘겨울이 다가온다(Winter looms)-투자 등급 두 단계 하향 조정’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overweight)’에서 ‘비중 축소(underweight)’로 두 단계 내렸다.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도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절반 이상 낮췄으며 삼성전자도 10만5,000원에서 7만6,000원으로 27.6% 하향 조정했다.
모건스탠리는 주가 조정 이유로 PC·모바일용 범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 둔화, AI용 HBM 공급 과잉을 들었다. 내년 HBM 공급량이 2,500억 기가비트(Gb)에 달해 이 기간 수요(1,500억Gb)를 크게 초과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어 모건스탠리는 “올해 4분기는 전년 동기 대비 변화율 측면에서 사이클의 정점을 찍을 것”이라며 “메모리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한 만큼 사이클 후반기를 지나면서 매출 성장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랑스계 IB BNP파리바도 마이크론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BNP파리바는 13일(현지시간) 마이크론에 대한 의견을 매수(Outperform)에서 매도(Underperform)로 두 계단 하향 조정했고, 목표 주가도 140달러에서 67달러로 52%나 내렸다. 모건스탠리와 마찬가지로 HBM 공급 과잉이 이유다.
‘반도체 겨울론’에 투자업계 반박
하지만 증권업계에서는 모건스탠리가 밝힌 HBM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과장됐다는 반론이 거세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지난 2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내년 HBM 공급 과잉을 우려하기엔 이르다”며 “HBM 공급 과잉 우려는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무라증권은 내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D램 3사의 수요 대비 HBM 공급능력을 112%로 전망하면서 “일부 과잉 생산이 있더라도 재고를 통해 조정하거나 흡수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국내 업계도 이 같은 반도체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우려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3일 보고서를 내고 “내년 D램 내 HBM은 수량 기준 7%, 매출 기준 27%를 차지하며 모바일, 서버에 이어 D램 내 주력 응용 분야가 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어 “일반 D램에 비해 공급 증가가 제한적이고, 가격 안정성이 높은 HBM 비중이 커질수록 D램 매출 변동성은 줄어들 것”이라며 “견조한 HBM 수요와 부족한 공급 상황을 고려할 때, D램 다운턴 진입을 말하기는 이른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채 연구원은 또 “HBM을 제외한 일반 D램 수요는 아직 과거 추세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공급사들은 이를 고려해 아직 소극적인 공급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작년과 올해 대부분의 생산능력이 HBM 위주로 늘어났기 때문에 일반 D램 생산능력은 실질적으로 감소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도 “HBM이 공급 과잉이라면 왜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에서 추가로 공급을 받으려 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며 “범용 메모리 반도체 또한 공급 과잉 상황이라면 수출이 어려운 중국이 부진한 국내 소비에도 무리하게 관련 시설을 증설에 나서겠냐”고 강조했다. 모건스탠리 우려처럼 HBM과 범용 D램의 공급 과잉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이어 황 연구원은 “경기침체와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크면 시장은 항상 다운슈팅을 하기 때문에 적정한 주가 수준을 알기는 어렵다”며 “다만 12개월 선행 기준으로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16배로 주가는 과매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 개선 기대감도 높아져
이런 가운데 모건스탠리의 목표주가 하향 조정으로 촉발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주가 급락 사태도 진정되는 모습이다. 모건스탠리의 반도체 겨울론 여파로 지난 19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는 장 시작과 함께 급락했다. 당시 SK하이닉스는 장중 최대 11.12%까지 하락했다가 6.14% 내린 15만2,800원에 장을 마감했으며, 삼성전자 주가도 장중 52주 신저가를 경신하며 6만3,100원까지 주저앉았다. 하지만 20일 미국 증시가 연준의 빅컷(기준금리 0.50%p 인하)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며 급등한 영향 등과 맞물려 SK하이닉스 주가는 2.81% 상승, 삼성전자 주가는 1% 미만대로 오르다 막판에 0.16% 하락 마감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겨울론 대신 훈풍론이 재점화하고 있다. 카빈 인베스트먼트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최대 매출처인 D램의 경우 97.5%, 낸드플래시는 18% 수준 가격이 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D램은 올해 3분기 ASP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31% 높아졌는데 이는 이전 분기의 성장률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오랜 침체를 겪었던 D램 시장의 가격 회복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1년 내내 이어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D램 3강의 적극적인 감산으로 수급 균형이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됐고, 이 흐름이 완전하게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만들수록 손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산원가 수준으로 떨어졌던 낸드 역시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킹알파는 3분기 낸드의 평균판매가격(ASP) 성장률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102.5%의 증가율을 나타냈다고 강조했다. 기업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를 중심으로 낸드 시장이 AI 투자 열풍에 완전히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서 모바일, PC 등 다른 수요처에서도 점점 주요 고객사들의 재고 수준이 낮아졌고, 삼성, SK하이닉스도 가격 재협상을 통해 올해 내내 판매 가격을 꾸준히 인상해 온 효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