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위기 인텔, 야심작 ‘가우디3’로 돌파 의지
인텔, 파운드리 부진하자 데이터센터에 집중
'가우디3' 공개 약 5개월 만에 공식 출시
'사상 최악 위기' 인텔, '가우디3'로 반등할까
‘반도체 제왕’으로 불렸던 인텔이 최근 실적 부진으로 창립 이래 역대급 경영난에 직면한 가운데,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가우디3’를 공개하며 엔비디아 견제에 나섰다. 최적의 와트(watt)당 성능과 더 낮은 총소유 비용(TCO)을 제공해 강력한 AI 시스템을 지원하겠다는 목표다.
‘가우디 3’로 엔비디아에 도전장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인텔코리아는 26일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데이터센터용 신제품 출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온 6 P-코어와 가우디3 신제품의 상세한 기술사항을 발표했다. 컴퓨팅 집약적인 워크로드를 탁월한 효율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온 6 P-코어는 이전 세대 대비 2배 높은 성능을 제공한다. △코어 수 증가 △메모리 대역폭 2배 증가 △모든 코어에 내장 AI 가속 기능을 갖춘 것이 주요 특징이다. 또한 엣지에서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환경에 이르기까지 AI의 성능 요구를 충족하도록 설계됐다.
가우디3 AI 가속기는 64개의 텐서 프로세서 코어(TPC)와 8개의 행렬 곱셈 엔진(MME)을 통해 심층 신경망 연산을 가속화한다. 인텔에 따르면 가우디3은 학습·추론 작업을 위한 128GB의 HBM2E 메모리와 확장 가능한 네트워킹을 위한 24개의 200Gb 이더넷 포트를 갖추고 있으며 TSMC의 5㎚(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에서 양산된다.
인텔은 이번 신제품 설명회에서 높은 성능과 낮은 가격을 앞세워 엔비디아의 주력 AI칩 ‘H100’을 대체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나승주 인텔 데이터센터 및 AI 사업부 한국영업 총괄 상무는 “가우디3는 추론 처리량에서 엔비디아의 H100보다 최대 1.19배 성능이 더 좋고 이 성능을 가격과 함께 따지면 가성비는 2배 이상 우위에 있다”며 “엔비디아 이외의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인텔은 가우디3를 H100 가격의 3분의2 수준에서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H100의 가격이 3만 달러(약 4,000만원)에 달한 것을 감안하면 가우디3는 2만 달러(약 2,600만원)에 판매될 가능성이 크다.
엔비디아가 구축한 쿠다(CUDA) 생태계와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사용자나 AI 리서치 연구원들에게 쿠다는 크게 상관이 없어졌다. 이미 상위 레벨의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라며 “소규모 쿠다 전환 니즈가 있기에 변환툴을 제공해서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은 현재 가우디3를 기반으로 델 테크놀로지, HPE, 슈퍼마이크로 등 글로벌 서버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는 만큼 올해와 내년 사이에 해당 업체들이 가우디3로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기술 협력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밖에 20여 개 대학이 가우디3를 기반으로 다양한 AI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자 누적 지속, 올 상반기만 53억 달러
업계는 최근 실적 부진으로 역대급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인텔이 이번 신형 AI 칩을 통해 반전을 꾀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인텔 주가는 부진한 실적을 보고한 8월 이후 연일 폭락세다. 최근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하는 방안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텔은 올해부터 파운드리 사업부의 회계를 분리해 별도의 재무 실적을 발표해 왔는데 사업부를 완전히 분리해 독립 자회사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앞서 2021년 파운드리 사업부 본격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은 이 부문에서 막대한 적자를 기록해 왔다.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서 2021년 51억 달러, 2022년 52억 달러, 2023년 70억 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폭을 키웠다. 올 상반기 누적 적자만 53억 달러(약 7조원)에 달한다.
인텔은 독일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장 건설도 일시 중지한다.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진행 중이던 300억 유로 규모의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인텔은 1.5나노급 공정을 도입해 독일을 인텔의 유럽 첨단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내놨는데 1년 만에 이 계획이 무산되는 것이다. 이밖에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진행 중이던 공장도 2년간 중단하며, 말레이시아 공장에 대한 계획 역시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애리조나, 오리건, 오하이오 등 미국 내에 건설 중인 신규 반도체 생산 시설은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들 시설 대부분이 반도체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다.
CEO들 연이은 실패, 인텔 위기 가중
인텔이 파운드리를 분사할 정도로 위기를 맞은 상황은 그동안 CEO(최고경영자)들의 연이은 실패와 잘못된 판단에서 초래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텔 공동창립자 고든 무어는 ‘2년에 한 번씩 반도체의 성능이 두 배씩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유명하지만 2010년 이후 인텔은 기술 혁신에서 무어의 법칙이 무색할 정도로 뒤처졌다.
2013년 인텔 수장 자리에 앉은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CEO는 원가 절감을 통한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면서 2016년 인텔 전체 인력의 10%에 해당하는 1만2,000여 명을 해고했다. 해당 구조조정안에는 연구·개발(R&D) 인력이 다수 포함돼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이 경쟁사인 AMD 등으로 이직하면서 인텔 경쟁력은 급격히 추락했다.
후임으로 온 밥 스완 CEO 역시 재무통으로 보수적인 경영으로 일관하며 인텔 위기를 가중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실책은 오픈AI와의 거래 중단이다. 인텔은 2018년경 오픈AI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 스완 CEO는 생성형 AI가 시장 출시 시점이 늦고, 투자 비용 회수도 어렵다고 판단, 오픈AI와의 거래를 끊었다. 해당 결정으로 인텔은 큰 수익을 얻을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후 인텔은 2021년 기술 엔지니어 출신인 팻 겔싱어 CEO를 다시 불러들였지만, 이번에도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목표로 결국 ‘악수’를 날렸다는 평이 우세하다. 인텔은 경쟁력 회복을 위해 미세공정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파운드리 사업에 다시 집중하려 했지만 이미 벌어진 삼성전자, TSMC와의 기술 격차를 따라잡긴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겔싱어 CEO는 최근 2년간 파운드리에 250억 달러(약 33조원)이라는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지만 이 역시 결과적으로 인텔의 수익성에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혔다. 기술 경쟁력 회복을 위한 제대로 된 투자가 아닌, 경쟁사를 지나치게 의식해 무리한 목표를 세운 것이 인텔 파운드리 사업의 뼈아픈 실패를 초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