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콘 ‘AI 호황’에 3분기 매출 역대 최고, 위탁생산으로 전기차 시장도 노린다
시장 예장치 뛰어넘는 실적, 9월 한 달 매출도 10.9% 증가
스마트 가전제품 매출보다 클라우드네트워킹 부문 매출 크게 늘어
'애플의 공장' 폭스콘, 다음 먹거리로 전기 자동차 주목
애플의 최대 협력사인 대만 폭스콘(Foxconn)이 올해 3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사업 분야를 다각화하기 위한 폭스콘의 노력이 반영된 것으로 특히 인공지능(AI) 서버에 대한 강한 수요가 매출 성장을 견인했다. 폭스콘이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일환으로 전기차 시장에도 발을 내딛은 가운데, 전기차 위탁생산이 본격화할 경우 글로벌 자동차 업계 지형이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기차 사업 진출을 저울질하던 빅테크들이 위탁생산 업체를 아군 삼아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폭스콘, 3분기 매출 77조원 기록
6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폭스콘의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2% 증가한 1조8,500억 대만달러(약 77조2,80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대 기록이자 시장조사업체 LSEG의 예상치 1조7,900억 대만달러도 뛰어넘는 수치다. 9월 한 달 동안의 매출도 10.9% 증가한 7,330억 대만달러(약 30조6,500억원)를 기록해 역대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을 냈다. 이에 대해 폭스콘은 “이번 성과는 회사가 애초 예상했던 큰 폭의 성장을 넘어선 것”이라고 자평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서는 다소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으나, 아이폰 등 스마트 가전 부문에서도 전 분기 대비 매출 증대를 이뤘다. 3분기는 전통적으로 대만의 기술 기업들이 애플과 같은 주요 업체들을 위해 스마트폰, 태블릿, 기타 전자제품 공급 경쟁을 시작하는 시기다. 미국의 홀리데이 시즌(Holiday Season)에 맞추기 위해서다. 홀리데이 시즌은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를 거쳐 신년 초 축제일까지를 일컫는 기간으로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 등 기업들의 각종 할인 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AI 시장 급성장에 따른 수혜 ‘톡톡’
특히 폭스콘의 이번 호실적은 엔비디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둔 덕분에 AI 칩 서버 제품을 도맡아 제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엔비디아의 NV링크(NVLink) 스위치 독점 수주가 대표적이다. 엔비디아의 GB200 AI 서버 대량 주문을 수주한 데 이어 GB200의 핵심 부품인 NV링크 스위치 주문까지 독점하게 됐다.
NV링크는 AI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중앙처리장치(CPU) 등 칩 간 데이터 전송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술로, 엔비디아가 칩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CPU와 AI GPU를 연결하는 브릿지 기술과 GPU와 GPU를 연결하는 스위치 기술이 NV링크 핵심이다. 현재 5세대까지 나온 NV링크는 초당 1.8TB(테라바이트·1TB는 1,024 GB)의 양방향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 폭스콘은 엔비디아와의 관계와 자체 제조 전문 지식을 활용해 글로벌 AI 서버 시장의 40%를 확보한다는 목표다.
폭스콘은 엔비디아와 협력해 대만 가오슝에 대규모 AI 컴퓨팅센터를 건립에 나서기도 했다.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며 1억9,200만 달러(약 2,600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류양웨이(劉揚偉) 폭스콘 회장에 따르면 가오슝 AI 컴퓨팅센터는 폭스콘의 AI 배치·발전을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또한 센터에서는 생성형 AI 및 엔비디아 3차원 가상 플랫폼 옴니버스 R&D(연구개발)을 진행할 계획이며 이와 동시에 AI 공장 컴퓨팅 파워도 지원할 예정이다. 나아가 엔비디아와 긴밀히 협력해 엔비디아 CPU, GPU, 네트워킹 기반의 수많은 시스템도 구축한다. 여기에는 엔비디아 H100 텐서 코어 GPU를 탑재한 엔비디아 HGX 레퍼런스 디자인, 엔비디아 GH200 슈퍼칩, 엔비디아 OVX 레퍼런스 디자인(OVX Reference Design), 엔비디아 네트워킹이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폭스콘의 매출 성장세가 폭스콘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주요 고객사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AI 기술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이는 단순한 부품 공급을 넘어 AI 기술의 생산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데 주효한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다. 폭스콘의 부사장 겸 대변인 제임스 우(James Wu)도 “AI 서버 시장에서 폭스콘이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폭스콘의 용량과 기술은 경쟁 업체가 쉽게 도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 수익 모델로 ‘전기차 파운드리’ 낙점
폭스콘은 스마트폰 및 AI 부품 제조에서 그치지 않고 전기 자동차 산업까지 사세 확장을 꾀하고 있다.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 2020년 전기차 사업 진출을 선언한 폭스콘은 2021년 전기차 모델 3종을 선보인 데 이어 2027년까지 연간 300만 대의 전기차를 위탁생산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로드스타운 모터스(Lordstown Motors)의 생산 공장을 2억3,000만 달러(약 3,1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전기차 사업 투자를 본격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가오슝의 챠오터우 과학단지에 새로운 제조 시설 건립을 위해 250억 대만달러(약 1조원)를 투입하기도 했다. 해당 투자에는 전기 버스와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 공장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에서는 연간 생산량 15만 대를 목표로 전기차 공장 착공에 돌입했으며 인도와 잠재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의 투자를 받아 다른 공장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중국 정저우에서도 생산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지난 7월 차이신에 따르면 폭스콘은 허난성 정부와 전략적 협력을 체결하고 10억 위안(약 2,000억원)을 투자해 정저우시에 신사업 본부를 건설하기로 했다.
폭스콘이 처음 전기차 위탁생산 사업 진출을 발표할 때는 애플카 위탁생산을 주요 목표로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애플이 자체 전기차를 개발할 경우 이를 제조할 외부 협력사가 필수적인 만큼 아이폰 최대 위탁생산 업체인 폭스콘이 유력한 후보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초 애플의 전기차 사업 철수에도 정저우에 새 공장을 건설하며 투자를 꾸준히 늘리는 것은 애플과의 협력 없이도 충분한 성장성을 확보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폭스콘은 로봇과 반도체를 비롯해 전기차를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워내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두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와 스마트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을 맺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폭스콘은 전기차 제조를 아웃소싱하면 빅테크는 물론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시장에 입성하는 위험 요인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폭스콘은 800여 개의 기업들과 함께 역할을 분담하고 시너지를 내는 ‘모빌리티 인 하모니(MIH·Mobility In Harmony)’라는 컨소시엄도 구성하고 있다. 대만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는 곳으로, 중국의 CATL과 LG에너지솔루션도 모빌리티 인 하모니에 가입해 있다. 각 분야의 전문기업들이 협업을 하고 폭스콘이 전체적인 조율을 하는 구조다. 애플이 애플카를 꿈꿀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폭스콘의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A부터 Z까지 전 공정이 가능한 폭스콘을 통하면 기본 전기차 플랫폼에 덮개와 알고리즘만 바꿔 천의 얼굴을 가진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미래 모빌리티의 경쟁자가 테슬라나 BYD만이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