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분야 첫 노벨상, 머신러닝 과학자 존 홉필드·제프리 힌튼에 물리학상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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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물리학상에 'AI 대부' 존 홉필드·제프리 힌튼 공동수상
물리학 대표 모형인 '이징 모형'에서 아이디어 차용
19세기 통계 물리학자 루드비히 볼츠만 방정식도 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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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왼쪽)와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사진=노벨위원회 유튜브

인공지능(AI) 원리를 세계 최초로 정립한 과학자 두 명이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례적으로 순수 과학이 아닌 응용과학 분야에 노벨 물리학상이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글로벌 산업을 재편하고 있는 AI 기술의 파급력을 감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4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홉필드·힌튼 교수

8일(현지시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존 홉필드(John Hopfield)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두 교수는 물리학의 원리를 사용해 인공 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ANN)을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왕립과학원은 “인공 신경망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의 기초를 세우고 발견한 공로로 상을 수여한다”고 설명했다.

노벨위원회는 “홉필드 교수는 정보를 저장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고, 힌튼 교수는 데이터 속성을 발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며 “인공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머신러닝이 과학과 공학, 일상생활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이어 “수상자들의 발견과 발명은 머신러닝의 기본 요소”라며 “이들의 연구는 입자물리학, 재료과학, 천체물리학 등 다양한 물리학 주제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됐다”고 평가했다. 엘렌 문스(Ellen Moons) 노벨물리학상위원회 위원장은 “수상자들의 연구는 이미 큰 혜택을 주고 있다”며 “우리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 신경망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수상자들은 뉴런과 시냅스를 모방한 네트워크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하는 기술을 연구하면서 물리학을 활용해 AI에 적용하는 구조를 개발했다. 인간 뇌의 신경망은 뉴런(신경세포)으로 구성돼 있는데, 신경세포 간 연결부인 시냅스를 통해 신호를 보낸다. 인간이 학습할 때는 이와 관련된 뉴런 간 연결이 강화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인간 신경망에 착안한 머신러닝은 인간의 학습 능력을 AI로 구현할 수 있게 한 기술로 꼽힌다. 이를 토대로 인간이 가진 기억과 학습 등을 AI가 모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힌튼 교수는 노벨상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인류는 지금까지 AI의 머신러닝보다 더 똑똑한 기계를 가진 적이 없다”며 “앞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더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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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왼쪽)와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사진=노벨위원회 X(옛 트위터)

사상 첫 AI 부문 노벨 물리학상 수상

지금까지 전통적인 물리학 이외에 첨단 정보기술(IT)과 관련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학계에서도 파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두 사람은 정통 물리학파는 아니다. 힌튼 교수는 컴퓨터 과학자이자 인지심리학자고, 홉필드 교수는 물리학과 생물학을 넘나들며 연구자로 활동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노벨 물리학상이라는 물리학자 최고의 영예를 차지한 건 그들의 연구 성과에 물리학에 대한 기초가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홉필드 교수가 1982년에 모든 뉴런(신경세포)이 양방향으로 연결된 신경회로망 모형인 ‘홉필드 네트워크(Hopfield network)’의 개념을 제안했는데, 여기에 물리학 원리가 있다.

홉필드 교수는 원자를 작은 자석으로 만드는 특성인 스핀(각운동량)이 이웃한 원자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에 착안해 홉필드 네트워크를 떠올렸다. 스핀이 서로 영향을 미칠 때 물질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설명하는 물리학을 가져와 인공 신경망의 노드(node)도 뇌의 뉴런처럼 서로 연결이 되는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홉필드 교수가 떠올린 건 물리학의 대표적인 모형인 ‘이징 모형(Ising model)’이었다. 이징 모형은 통계 물리학에서 상전이외부 조건에 따라 다른 상으로 바뀌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형으로 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다룬다. 이와 관련해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은 “홉필드 네트워크는 물리학의 이징 모형에서 쓰는 아이디어를 차용해 신경망이 추론을 통해 하나의 결과로 수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이징 모형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이걸 기존의 신경망 모델에 적용했다는 게 홉필드 교수의 뛰어난 업적”이라고 설명했다.

물리학 모형 및 방정식 착안

물리학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힌튼 교수 역시 물리학을 이용한 연구 성과를 냈다. 홉필드 교수의 네트워크가 연상 기억에 최적화됐다면 힌튼 교수는 이를 발전시켜서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학습 모델을 완성했다. 예컨대 AI가 수천만 장의 사진을 통해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는 학습을 할 때 인간 뇌의 정보 처리 방식처럼 단계를 세분화해 깊이를 더하는 심층 신경망을 개발한 것이다. 홉필드 교수가 이미지를 기억하는 방식을 연구했다면, 힌튼 교수는 이미지가 묘사하는 내용을 해석하는 데까지 나아간 셈이다.

홉필드 교수가 자신만의 인공 신경망 모델을 만든 1982년, 힌튼 교수는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런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기계가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패턴을 처리하는 방법을 학습해서 정보를 분류하고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때 힌튼 교수와 함께 연구를 한 동료가 홉필드 교수의 제자였던 테렌스 세즈노스키(Terrence Sejnowski)다.

힌튼 교수와 세즈노스키는 통계 물리학을 활용해 홉필드 네트워크를 발전시켰다. 통계 물리학은 기체의 분자와 같이 유사한 여러 요소로 구성된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다. 기체 내의 모든 분자를 개별적으로 추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압력이나 온도 같은 특성을 파악하는 건 가능하다. 이에 두 사람은 19세기 통계 물리학자인 루드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의 방정식을 이용했다. 볼츠만 방정식은 가용 에너지의 양에 따라 어떤 상태가 다른 상태보다 가능성이 높은지 보여준다.

두 사람은 볼츠만 방정식을 홉필드 네트워크에 접목해 ‘볼츠만 머신(Boltzmann machine)’을 만들었다. 볼츠만 머신은 주어진 데이터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확률적으로 계산해 결과를 출력한다. 특정 데이터를 학습시키면 새로운 데이터에서도 익숙한 패턴을 찾아내는 식이다. 볼츠만 머신의 등장으로 인공 신경망을 겹겹이 쌓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는 딥러닝으로 연결됐다. 또한 볼츠만 머신은 수백~수천 개에 불과하던 인공 신경망 노드를 수천억~수조 개 이상 단위로 확대하는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 현재 글로벌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는 생성형 AI 개발이 가능해진 것도 볼츠만 머신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