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파운드리 1위 TSMC, 일본 유학생 유치 총력전 “학비 및 생활비 지원”
TSMC 일본에 차례로 공장 조성 중
일본인 학생 유치에도 박차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엔지니어 부족 대응
세계 최대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일본인 학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만 엔지니어 부족 현상을 외국인 육성을 통해 상쇄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TSMC, 일본 유학생 모집
7일 중국시보 등 외신에 따르면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 공장 인력 충원과 관련해 대만 국립 윈린 과학기술대학교와 협력, 일본 유학생 모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지원한 일본인 유학생은 TSMC와 윈린과기대가 협력해 설립한 ‘일본 반도체 인재 전문 육성 단과대학’에서 4년간 관련 교육을 받는다.
TSMC는 이를 통해 4년간 학비 200만 엔(약 1,814만원)과 매달 5만 엔(약 45만원)에 달하는 생활비를 장학금으로 지원한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TSMC 근무 조건이 달려있으며 프로그램을 이수한 이들은 대학 졸업 후 반드시 TSMC 입사 시험을 치러야 한다. 채용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장학금을 반환할 필요는 없다. 윈린과기대 관계자는 “TSMC 측 요청으로 일본 학생의 반도체 관련 기술 습득을 위해 3개 부문의 반도체 과정을 개설하는 등 인재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며 내년 9월 신학기에 일본 학생 90명을 받아들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TSMC가 일본인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팔을 걷어부친 이유는 저출생, 고령화로 인해 대만 엔지니어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대만 반도체 산업 인재 대부분은 1960∼1980년 출생했다으며, 저출생으로 지난 20년간 이공계 학생이 계속 감소해 정점 대비 60% 이하로 줄었다.
일본 규슈대와도 맞손
TSMC와 일본의 협력 관계가 공고해진 건 올해 초부터다. 일본이 반도체 경쟁력을 부활시키기 위해 자국 내 TSMC 공장을 유치하는 등 투자를 확대하면서다. 현재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 소재 규슈대학교와도 산학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TSMC는 지난 4월 일본 구마모토현에 신공장을 개소하면서 지역 국립대인 규슈대와 반도체 인재육성과 공동연구 등을 목적으로 포괄적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양측은 TSMC 연구자들이 규슈대 학생을 지도하거나 규슈대 학생을 TSMC 대만 본사에 인턴십 형태로 파견하고 양측 인력이 논문을 공동 집필하는 등 다수의 협력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TSMC가 제1공장에 이어 제2공장도 구마모토현에 건설하기로 한 만큼 인재 확보를 위해 규슈대와의 협력에 속도를 붙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TSMC 경영진은 규슈대에서 양성된 반도체 전문 인력이 일본·TSMC의 투자 계획과 맞물려 향후 인재 수급에 원활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TSMC는 자국 내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대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TSMC는 40억 대만달러(약 1,700억원)를 반도체 교육을 위해 기부했다. 해당 기부금은 대만대·칭화대·양명교통대·성공대에서 쓰일 예정이다.
대만 정부도 반도체 교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만 정부는 국립대학교뿐 아니라 일부 고등학교에서도 반도체 교육을 지원한다. 최근에는 고등학교에 반도체 수업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 9월부터 문과·이과와 상관없이 36개 학교에서 반도체 수업을 들을 수 있으며, TSMC 교육도 동시에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앞서 지난 2021년에는 ‘국가중점분야 산학협력·인재 양성 혁신 조례’를 제정해 매년 반도체 인재를 1만 명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울러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대학원도 설립했다.
삼성맨보다 의사, 반도체 학과 이탈 증가
우리 정부도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을 지원하는 등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4년 정시모집에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추가 합격률은 220%였다. 최초 합격자가 이탈해야만 추가합격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추가합격률이 높을수록 학과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220%라는 수치는 작년 추가합격률(130%)을 크게 웃돌았을 뿐 아니라 연세대 자연계열 정시 평균 추가합격률인 63.2%보다 훨씬 높다. 고려대도 자연계열 평균 정시 추가합격률은 29.8%였는 데 비해 반도체공학과 추가합격률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100%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의대 증원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을 대거 늘리면서 이과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를 희망하게 됐다는 의미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반도체과 충원율이 높게 나오는 이유는 최근 대입의 대세인 의치한약수(의과대, 치과대, 한의과대, 약학대, 수의학대 등 거의 모든 대학의 자연계 학과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모집 단위를 지칭) 지원자들과 반도체과 지원자가 겹치기 때문”이라며 “반도체학과에 등록을 해놨다가 의대에 합격하면 의대로 가는 경우가 다수”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계약학과가 의대 반수를 위한 ‘임시 정거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31년에는 반도체 인재가 5만4,000여 명 부족할 전망이다. 인재가 30만4,000명에 달하겠지만 절대적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기업이 필요로 한 인력보다는 적다. 이런 가운데 의대 정원 증원이 본격화한 내년 입시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해 전병서 반도체IT애널리스트·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의대가 최상위권 이과생 2,000명을 데려가면 반도체학과 실력은 그만큼 낮아진다”며 “생산에 참여할 인력들이 연구에 투입되면 대만, 미국 등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대 증원 4년 뒤에는 한국이 40년 만에 잡은 반도체 패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