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 통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 하락세, 집값·가계대출도 ‘주춤’
서울 아파트 거래량, 강력한 대출 규제에 하락세
코픽스 내려가며 미끄러지는 시중은행 금리, 당국 대처 '변수'
"美 피벗에 집값·가계대출 안정까지" 한은 금리 인하 압박 거세져
이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지난달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정부와 은행권이 가계대출 증가세 억제를 위해 주택 관련 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거래 전반이 위축되며 매물이 본격적으로 적체되는 양상이다. 과열됐던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으며 집값·가계대출 증가세가 나란히 주춤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출 규제 강화로 부동산 거래 위축
24일 서울시 부동산 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날까지 집계된 9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857건이다. 아직 거래 신고 기한(30일)이 한 달 이상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달 최종 거래량은 2,000건 안팎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 7월 8,848건으로 2020년 7월(1만1,170건) 후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거래량은 이날 기준 5,838건으로 집계됐다.
거래량이 감소함에 따라 매물도 쌓이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서울 아파트 매물은 8만1,709건으로 집계됐다. 매물이 7만6,000여 건까지 감소했던 지난달 초와 비교하면 5,000건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집값 상승세 역시 주춤하는 모습이다. 지난 21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9월 셋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16% 오르며 전주(0.23%) 대비 상승폭을 크게 줄였다.
업계는 부동산 거래 위축의 원인으로 ‘대출 규제 강화’를 지목한다. 최근 들어 정부와 은행권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강도 높은 규제 방안을 내놓고 있다. 우선 정부는 이달 초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를 시행, 차주들의 대출 한도 조이기에 나섰다. 스트레스 DSR은 미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해 대출 금리에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더하는 제도다. 2단계 스트레스 금리는 0.75%p 수준이며, 은행권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에 한해 1.2%p의 스트레스 금리가 적용된다. 이에 시중은행권은 대출 금리를 인상하고 유주택자 주담대 취급을 줄줄이 제한하며 ‘가계대출 조이기’에 동참하고 있다.
시중은행권 대출 금리 하락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인상 기조가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시중은행 주택대출금리의 바로미터 격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 금리가 기준금리 인하 기대에 힘입어 3개월 연속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8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36%로 전달 대비 0.06%포인트 하락했다.
지표금리 하락은 은행권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졌다. 4대 시중은행의 지난 20일 기준 주담대 금리(주기형·혼합형)는 연 3.850~5.633%로 나타났다. 이는 금리 상단 기준 지난달 말보다 0.103%포인트(p) 낮아진 수치다. 신규 코픽스 기준 변동금리는 연 4.500~6.471%에 머물렀다. 이는 하단 기준 0.09%p, 상단 기준 0.07%p 하락한 수준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은행권에 추가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이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 억제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시중은행에 가산금리 조정 등을 주문할 가능성이 있다”며 “실질적인 금리 인하 폭을 줄여 대출 수요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정하는 가산금리는 업무원가·법적비용·위험프리미엄·가감조정금리 등으로 구성되며, 그 요건이나 기준이 폭넓어 은행 재량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다.
한은 ‘피벗’ 영향은?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통제하에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를 이어갈 경우, 차후 한국은행의 피벗(통화 정책 전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한은은 물가 지표가 안정된 이후로도 들썩이는 집값과 빠르게 불어나는 가계대출을 이유로 긴축 기조를 유지해 왔다. 섣부른 금리 인하가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이후 “한은의 통화정책은 금융 안정을 위한 것인데, 금융 안정의 중요 요인이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라며 “한은이 이자율을 급하게 낮추거나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금융권에서는 한은의 이 같은 관망세가 조만간 옅어질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달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50%p 인하하며 통화 정책 전환을 본격화했다”며 “당국의 규제에 따라 집값 상승세와 가계대출 증가세도 나란히 주춤하고 있는 만큼, 한은은 강력한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19일 기준 728조869억원으로 지난달 말(725조3,642억원) 대비 2조7,227억원 늘었다. 영업일당 가계대출 증가액(2,475억원)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한 이달 가계대출 증가액은 4조4,600억원 수준으로, 8월 가계대출 증가액(9조6,259억원)의 46.3%에 그친다.
물가상승률이 뚜렷하게 둔화하고 있다는 점 역시 한은의 피벗 결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4일 한은이 발표한 ‘8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에 따르면 8월 생산자물가는 전월 대비 0.1% 하락했다. 지난 6월(-0.02%) 이후 2개월 만의 하락 전환이다. 통상적으로 생산자물가는 1~3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향후 소비자물가 둔화세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