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상 3배 넘은 매수 주문받은 ‘인기 만점’ 대한항공 회사채, 채권 투자자들 관심 쏠린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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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3,250억원 초과한 자금 모집 성공
실적 개선과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진전 소식이 긍정적 영향 끼쳐
미국 장기채 내림세도 회사채 수요예측 '흥행' 원인으로 꼽혀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이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의 3배가 넘는 자금을 모으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한항공 올 상반기 실적이 크게 개선된 데다, 3년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도 최근 큰 진척을 보인 게 대한항공 회사채 흥행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11월 들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 긴축 종료 신호를 시장에 내보낸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용등급 끌어올린 대한항공, 회사채 수요예측도 ‘흥행’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이날 1,500억원을 모집하기 위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3,250억원을 초과한 총 4,75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모집액 800억원인 2년물에 2,700억원, 모집액 700억원인 3년물엔 2,05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다. 수요예측이 흥행함에 따라 대한항공은 최대 2,500억원까지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한항공은 희망 금리 범위로 ‘개별 민평금리(민간 채권 평가사들이 평가한 기업의 고유 금리)’에 -30~30bp를 가산한 금리를 제시했는데, 결과적으로 신고액 기준 가산금리는 2년물 -65bp, 3년물 -45bp로 모집 물량을 채웠다. 이날 신용평가사 4사 기준 대한항공의 3년물 민평금리는 5.906%로, 이는 ‘A-‘ 등급 민평금리인 6.146%보다 약 24bp 낮은 수준이다. 앞서 지난달 말 국내 신평사 3사는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A-‘로 상향조정한 바 있다. 즉 채권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평가하는 대한항공 회사채 가격보다 더 비싸게 매입했다는 의미다.

업계에선 대한항공의 회사채 수요예측 흥행은 올 상반기 실적 호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올해 상반기 대한항공의 국제선 여객 수입은 지난 2019년 동기 실적 대비 약 6,000억원 상회한 4조2,000억원 수준이다. 또한 대한항공은 올해 상반기 7조4,694억원의 매출과 9,62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유상증자, 기내식 및 기내 판매 사업부 매각 등 자본확충을 통해 재무구조가 빠르게 개선된 것도 대한항공 회사채 수요 급증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실제 지난 6월 말 기준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208.1%, 차입금의존도는 37.6%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한국신용평가는 “대한항공은 실적 호조에 힘입어 재무 여력을 확충했으며, 아시아나항공 인수 확정 시에도 팬데믹 이전 대비 큰 폭으로 개선된 재무 안전성을 유지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화물사업 분리 매각안’ 동의도 흥행에 영향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같은 대한항공 회사채 ‘흥행’은 단순 실적 개선을 넘어, 무엇보다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에 속도가 붙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절차는 지난 3년간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다 최근엔 대외적 변수까지 장애물로 작용했다. 이에 일각에선 기업 합병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관련 문제를 해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채권 투자자들이 대한항공 회사채에 대거 관심을 보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업계에선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성공한다면, 국외 항공사 대비 시장 내 압도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가격 조정권 취득 등 경제적 해자를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앞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두 항공사의 합병으로 유럽 화물 노선의 독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관련 시정안을 강하게 요구했고, 이에 대한항공은 시정안에 아시아나항공 화물본부 분리 매각안과 파리·프랑크푸르트·바르셀로나·로마 등 유럽 4개 도시행 슬롯을 일부 반납하는 방안을 담았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노조가 자사 핵심 ‘먹거리’인 화물사업 부문에 대한 매각을 전면 반대하면서 시정안 제출에 문제가 생겼고, 이 때문에 3년간 추진해 온 합병이 사실상 불발될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다만 대한항공 이외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이 없는 데다 아시아나항공이 독자적으로 자생력을 갖추긴 사실상 힘든 만큼, 아시아나항공 경영진 측에서도 완만한 합병을 위해 내부 의견 조율에 힘썼고, 그 결과 2일 이사회를 통해 EU 경쟁 당국 시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4시간가량 이어진 이사회에선 참석 이사 5명 가운데 찬성 3명, 반대 1명으로 해당 안건을 가결 처리했다. 이사회의 의사결정 방향이 안건 가결로 흘러가자, 이사 1명은 중도에 퇴장하면서 의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시정조치안이 아시아나항공 이사회 문턱을 넘자 대한항공도 EU 측에 시정조치안을 제출했다. 아시아나 화물사업 매각을 포함한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 제출이 EU 집행위의 즉각적인 승인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한항공이 EU 측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한 만큼, ‘조건부 합병 승인’을 끌어낼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합병에 대한 미래 불확실성은 여전히 잔존해 있는 상태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사업 부문 매각을 가결했더라도, 아시아나항공 노조 측의 반발을 잠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일반노조와 다수 조종사노조인 조종사노조(APU), 소수 자동사노조인 열린조종사 노조는 고용 불안을 이유로 자사 화물 사업 매각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특히 일반노조는 EU 집행위 측에 반대 서명지를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긴축 종료 기대감도 한몫

여기에 한동안 급등세를 보였던 미국 장기채 금리가 최근 내림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대한항공 회사채 수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자산의 벤치마크인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값싸게 자금을 조달한 대한항공이 더욱 활발하게 영업 활동을 이어 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대한항공 회사채 투자자들 사이에서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최근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5% 저항선을 뚫는 등 2007년 이후 약 16년 만에 최대로 치솟으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 회사채 시장도 얼어붙게 한 바 있다. 미국채 금리가 오르게 되면 그보다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 금리도 따라 오르게 되고, 이는 곧 기업 자금 조달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긴축 사이클을 사실상 종료할 것이라는 신호를 내보내면서 11월 들어 미국채 금리도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연준은 지난 10월 31일~11월 1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연 5.25~5.50%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 9월에 이어 2회 연속 금리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채 10년물 금리도 지난 1일(현지 시간) 하루 만에 0.19%포인트 하락했으며, 2일에도 0.12%포인트 추가 하락세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