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설렘이 좌절로, 대규모 공연 티켓 사기에도 은행들은 ‘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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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에 이용된 계좌만 100여 개, 해외 피해 사례도 발생
전자상거래 사기에는 '흐린 눈'으로 일관하는 은행들
온라인뱅킹-사기계좌 조회 서비스 연계 등 고려해야

최근 인기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미끼로 각종 사기 범죄가 급증하는 가운데 은행의 태무심한 대처가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이 사기 범죄에 활용될 우려가 있는 계좌의 다중 발급 제한, 경찰의 범죄의심계좌 지급정지 등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동일범 소행으로 추정되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 티켓 중고 거래 사기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사건 초반 주요 용의자로 추정됐던 A씨 계좌 외에도 최근에는 열 명이 넘는 다수의 계좌가 사기 행각에 활용되며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무제한 발급 가능한 예금 계좌, 걸리면 새로 만들면 그만”

경찰 등은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유사 수법 사례와 피해 규모 확대 속도를 고려했을 때 15명 이상으로 구성된 대규모 조직이 이번 사기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100여 개의 범죄 의심 계좌가 취합됐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도 동일 범죄 피해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사기 사건이 계속 규모를 키워나가는 배경으로는 1인당 상품별 발급 수량에 제한이 없는 시중은행의 예·적금통장이 지목된다. 이들 계좌는 비대면 발급이 가능하고 은행에 따라 많게는 30개 이상의 발급이 허용돼 명의도용 등을 통한 소위 ‘대포통장’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대규모 티켓 사기 사건의 용의자 역시 비대면 발급으로 다수의 통장을 개설한 뒤 범죄가 적발되면 다른 계좌로 갈아타는 수법을 반복 중이라는 설명이다. 시중은행의 대포통장 적발 건수는 금융감독원 등이 집중 단속에 나선 직후인 2020년 주춤하는 듯하다가 이듬해인 2021년부터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범죄에는 시중은행 B와 인터넷은행 C의 계좌가 집중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B은행은 “인당 발급 가능한 예·적금계좌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상품의 판매 가능성을 스스로 축소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범죄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품성을 훼손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여타 은행들은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의 기술력과 적용 기준 차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인 수시입출금통장과 달리 예·적금계좌는 비정상적 거래를 걸러내기 쉬운데, 해당 은행이 FDS의 적용 기준 강화에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는 비단 특정 은행만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시중 은행 중 하나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이 전기통신금융사기를 제외한 계좌 지급정지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현행법에 의하면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서는 계좌 지급정지 조치가 의무에 해당하나, 전자상거래 사기 등에 대해서는 이후 고객과의 마찰이나 소송으로 번질 우려 등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상품성 훼손 우려에 지급정지 요청 거부하는 은행들

일선에서 사이버 범죄 수사를 맡고 있는 한 경찰은 “은행에 따라 범죄의심계좌 지급정지 요청에 대한 반응이 크게 다르다”며 “경찰 측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검찰의 요청서를 받아오라는 은행도 있어서 범죄수익환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사기 범죄에 대해서만 은행의 지급정지가 의무화된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자, 은행연합회 등이 주도적으로 시중 은행의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은행연합회는 “은행들의 계좌 지급정지 가이드라인에 대해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공연 티켓을 매개로 한 사기 사건은 팬데믹을 이유로 미뤄졌던 대규모 콘서트 등이 본격적으로 재개된 지난해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올해 1월에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를 비롯해 다수의 공연 티켓을 판매한다고 피해자들을 속여 약 6억7,000만원을 가로챈 20대 남성 D씨에게 검찰이 징역 9년을 구형했으며,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 티켓을 미끼로 약 1,300만원을 편취한 E씨에게는 법원이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했다.

약한 처벌에 재범 급증, 은행의 역할은 없나

문제는 이런 형사 처벌이 피해자들의 피해 복구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기죄로 형사 고소를 진행하면 가해자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지만, 사기 피해 보전을 위해서는 피해자가 별도로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 금액을 모두 돌려받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긴 소송 기간과 절차의 번거로움 때문에 포기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초범에서 집행유예 등으로 형 집행을 면한 범죄자들이 또다시 비슷한 범죄를 반복하는 이유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여가 제한된 만큼 소비자들의 편익을 위해 은행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편리한 금융 생활을 위해 도입된 온라인 뱅킹 등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소비자의 서비스 안정성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연 티켓을 비롯한 온라인 거래 사기 사건에서 범죄 의심 계좌 조회 등이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더치트와 같은 사기계좌 조회 서비스와의 연계로 특정 계좌 송금 시 경고 메시지 또는 별도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등의 조처도 고려해 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