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에서 전기차 ‘자체 생산’ 포기하고 ‘수탁 생산’으로 눈 돌린 현대차, 중국 공장도 매각 중

전기차 시장 재진입 위해 중국 ‘아크폭스’ 수탁생산 선택한 현대차 현지 기업으로 잠식된 중국 시장에 자체 생산 브랜드론 역부족이란 판단 여전히 내연기관차 고집한 게 현대차의 중국 시장 패배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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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중국 베이징자동차의 전기차 모델인 ‘아크폭스’를 베이징 현지 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해 왔던 현대차는 최근 전기차가 주류인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가 중국 현지 기업의 전기차 수탁생산을 결정한 건, 중국 현지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 이미 잠식해 있는 현 상황에서 자사 브랜드 자체 생산만으로는 시장 점유율을 쉽게 뺏어오긴 어려울 것이라는 내부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현재 현대차는 중국 공장 중단 및 매각하는 등 중국 시장에서의 자체 생산 인프라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 베이징자동차와 손잡고 중국 현지 전기차 수탁생산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베이징자동차그룹(BAIC)의 중국 내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가 베이징자동차의 전기차 모델인 아크폭스를 생산키로 하고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베이징현대가 아크폭스의 설계·생산·품질관리 등 프로세스 전반을 모두 담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크폭스는 베이징자동차가 출시한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로, 올해 들어 베이징자동차는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위해 아크폭스의 가격을 13.8% 인하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아크폭스 알파S HI’에는 화웨이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적용됐다.

현대차가 베이징자동차그룹과 손잡고 중국 현지 기업의 자동차를 수탁 생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의 이같은 행보는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거듭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이젠 재도약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이 업계에선 지배적이다. 세계 전기차 최대 시장인 중국을 포기할 수 없다는 내부 판단이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현대차는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 가능한 물량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아크폭스 생산을 통해 메울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기차가 주류인 중국 시장에서 더 이상 전기차 생산을 미룰 수 없다는 점도 현대차 내부에서 아크폭스 생산을 결정한 배경으로 꼽힌다.

‘아픈 손가락’ 된 중국 전기차 시장

실제 최근 들어 현대차의 중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점차 하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27만3,000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는데, 이는 중국 전체 자동차 판매량(2,686만 대)의 1%에 불과한 수치다. 2016년 판매량이 180만 대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지난해 현대차의 미국(5.3%) 및 유럽(4.6%) 시장점유율과 비교해도 유달리 초라한 성적표다.

처음부터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서 고전한 건 아니다. 2002년 EF쏘나타를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는 이후 6년 만인 2008년 누적 판매량 100만 대를 달성했다. 특히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4년 연속 연간 판매량 100만 대 이상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한류제한령(한한령)과 코로나19 팬데믹의 악재가 겹치면서 2017년부터 현대차의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에 현대차가 전기차 중심으로 변화하는 글로벌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내연기관차 중심의 사업 플랜을 고수한 것도 중국 시장 점유율 확보의 패착으로 꼽힌다. 2010년 중국 정부는 국가적 차원으로 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연료전지차 중심의 신에너지차 산업 부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같은 해 8월 중국 정부는 16개 국영 회사에 3년간 150억 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신에너지차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베팅은 성공적이었고, 2010년을 기점으로 중국 현지 완성차기업들은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2018년 중국 신에너지차 판매량은 125만 대를 돌파한 데 이어 2022년엔 688만7,000대로 가파르게 늘었다. 같은 해 연말 신에너지차 판매 1~10위 중 9곳을 BYD, 너자, 아이안광치, 샤오펑, 리샹 등 중국 로컬 기업이 차지했다.

이처럼 중국 로컬 기업들이 신에너지차를 앞세워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사이, 내연기관차에 여전히 매몰된 현대차의 중국 자동차 시장 입지는 결국 좁아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글로벌 전기차 수요의 60~70%가 중국시장에서 나오는데, 이를 중국업체들이 선점하고 있고, 현대차는 중국 시장 성장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는 양적 성장이 어려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재훈 현대자동차 CEO가 지난 6월 2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개최된 ‘2030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현대차의 ‘아픈 손가락’인 중국의 현지 공장을 매각하는 등 자체 생산 비중을 줄이겠다고 발표하고 있다/사진=현대차

자체 생산 포기하고 OEM으로 눈 돌린 모습

판매 부진에 직면한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부터 중국 자동차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재편에 돌입한 모습이다. 현대차의 기존 중국 사업은 내연기관차 중심의 자체 생산이었는데, 최근 목표 생산량의 절반도 뽑아내지 못하자 기존 전략을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현대차가 아크폭스 생산을 맡아 중국에서 전기차 생산라인을 구축한 것도 해당 행보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당초 현대차는 중국 시장 판매량 반등을 위해 아이오닉 등 자사 전기차 모델의 중국 공장 생산을 타진했으나, 이미 중국 브랜드가 자국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현대차가 신규 브랜드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불리하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중국 사업 노선을 OEM으로 틀었다.

이뿐만 아니라 현대차가 자체 생산을 포기하고 중국 공장을 중단 및 매각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5개 공장을 운영했는데, 이 가운데 지난 2021년 중국 베이징 1공장 매각을 시작으로 지난해엔 중국 창저우5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올해는 충칭에 위치한 1개 공장을 추가로 매각 중에 있다. 다만 이렇다 할 인수 희망자가 나오지 않자 충칭 공장의 매각 가격을 기존 투자한 가격 대비 40% 떨어진 22억4,876만 위안(약 4,136억원)으로 낮춘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