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수입물가 4.4%↑, 국제유가 급등이 소비자 체감 앞당겨

수입물가지수 1년 5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 치솟는 국제유가, 2~3주면 국내 시장에 반영 전문가들 “물가 안정 비상 체제 가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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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은행

지난 8월 수출입물가지수가 1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나타냈다. 국제유가의 급등과 원·달러 환율 상승이 4%대의 높은 상승률을 이끈 것으로 풀이되는 가운데 하반기 물가 상승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경제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원재료 가격 급등이 주도한 전체 수입물가 상승

1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8월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2015년=100)는 135.96으로 7월(130.21)보다 4.4% 올랐다. 이로써 수입물가지수는 지난달 0.2% 상승에 이어 두 달 연속 오름세를 유지 중이며, 지난해 3월(7.6%) 이후 1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그렸다. 다만 1년 전과 비교하면 9.0% 내려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광산품(7.9%)을 중심으로 한 원재료 가격이 7.2% 오르며 전체 수입물가의 상승을 주도했다. 중간재(3.7%) 중에서는 석탄·석유제품(13.7%)이 가장 크게 올랐으며, 화학제품은 1.8% 상승했다. 자본재와 소비재는 각각 지난달과 비교해 1.6%, 1.9% 올랐다. 세부 품목 가운데는 원유(10.2%), 나프타(9.5%), 벙커C유(17.8%), 메탄올(5.7%), 과일(6.0%) 등의 상승 폭이 두드러졌다.

국제 유가는 7월 평균 80.45달러(두바이유·배럴당)에서 8월 86.46달러로 7.5% 상승했다. 환율 효과를 반영하지 않은 계약통화 기준 수입 물가는 전월 대비 2.2% 올랐다. 8월 원·달러 평균 환율은 1,318.47원으로, 전월(1,286.30원) 대비 2.5% 상승했다. 유성욱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산유국들 일제히 감산에 들어가면서 국제유가가 상승한 결과 광산품, 석탄·석유제품 등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출처=한국은행

8월 수출물가지수는 117.5로 전월(112.81)보다 4.2% 올랐다. 이 역시 7월(0.1%)에 이어 두 달 연속 오름세를 기록 중이며, 지난해 3월(6.2%)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을 나타냈다.

품목별로는 석탄·석유제품이 15.4% 상승해 전체 수출물가를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화학제품(3.9%), 컴퓨터·전자·광학기기(2.6%), 운송장비(2.2%) 등도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공산품은 4.2% 상승했고, 농림수산품은 1.0% 내렸다.

유 팀장은 수출입물가가 일제히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하며 소비자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에 대해 “통상 수입물가는 최대 3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며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이나 기업의 가격 상승 폭, 속도 등에 따라서 실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다소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확실성 산재한 물가 경로, 치솟는 국제유가에 ‘비상’

한은은 앞서 이달 5일에도 하반기 물가 상승에 대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통계청의 ‘2023년 8월 소비자물가 동향’ 발표 직후 한은은 블로그에 게시한 ‘소비자물가 상승률 반등 요인과 향후 흐름’ 글을 통해 국내 물가 경로에 있어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향후 국제유가 및 식량 가격 추이, 기상 여건, 국내외 경기 흐름 등과 관련한 상·하방 리스크가 혼재한 가운데 그간 누적된 비용상승압력의 파급영향, 공공요금 및 유류세 조정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사진=pixels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 100달러를 목전에 두면서 하반기 물가에 비상이 걸리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이 일제히 감산 정책을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사우디가 하루 10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 정책을 오는 12월까지 3개월 연장한다고 발표한 이달 5일(현지 시각)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은 90.04달러로 거래를 마치며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90달러를 넘었다.

통상 국제유가는 2~3주의 간격을 두고 국내 가격에 반영돼 전체 물가를 움직이는 결과를 불러오는데, 이는 수입물가 상승이 반영되는 3개월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국민들이 높은 물가를 체감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유국들이 감산을 결정하면서 연말까지 국제 원유 가격은 꾸준히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며 “10월 이후 물가 상승률이 2%대로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와는 달리 3% 이상의 상승률이 계속될 위험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빛바랜 ‘상저하고’ 낙관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꾸준히 강조한 ‘상저하고’ 전망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추 부총리는 지난 4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우리 경제는 월별 변동성은 있으나 대체로 바닥을 다지면서 회복을 시작하는 초입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의 전망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했지만, 각종 경제지표는 부정적이다. 대표적 예로 수출이 지난해 10월부터 11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중국의 경제 성장세 둔화가 변수로 떠올랐다.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수출 기업들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중국 수출은 19.9% 감소하며 15개월 연속 내림세를 그렸다.

아울러 석 달 만에 3%대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 치솟는 국제유가도 우리 경제에 대한 비관론을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낙관론은 정확한 위기 진단과 치밀한 대책 수립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하며 수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상 체제를 가동하는 등 전방위 지원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