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 착륙, “정보 비대칭성 해소? 독과점?”

현대차·기아 등 대기업들 잇따라 국내 중고차 시장 진입 중고차 시장의 대기업 진출로 자정 작용 기대 다만 독과점 논란도 피할 수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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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고차 시장의 판이 커졌다. 현대차·기아 등의 국내 완성차 회사를 비롯해 굴지의 대기업들이 국내 중고차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수입차 딜러사들도 합세하며 그간 중소 업체 중심이었던 중고차 시장이 올 하반기 대기업 ‘각축전’으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들의 국내 중고차 시장 진입은 ‘자정 작용’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로 인해 중소업자들의 생계가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잖은 실정이다.

국내 완성차 회사를 비롯한 대기업들, 인증 중고차 사업 개시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오는 10월 인증 중고차 사업을 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는 5년 10km 이내 자사 브랜드 차량을 대상으로 200여 개 항목의 품질 검사를 통과한 차량을 선별, 판매할 방침이다. 이들 기업이 인증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 것은 시장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 중고차 연간 거래 규모는 약 30조원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거래량도 신규차 시장 대비 30%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 데이터 제공업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차(승용차) 등록은 78만3,653대, 중고차는 101만2,418대로 집계됐다.

이를 위해 현대차·기아는 중고차 사업을 위한 오프라인 거점으로 용인 오토허브에 둥지를 틀기로 결정했다. 고객 시승과 수천 대의 중고차를 보관하기 용이하고 서울과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또 기아는 전북 정읍에 자동차 매매업 등록을 마친 상태다. 또한 이들 기업은 전문인력 채용에도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기아는 현재 용인에서 일할 인증 중고차 전문인력을 채용 중이며, 현대차도 앞서 지난 5월 중고차 컨택센터 고객 상담 인력을 채용했다.

현대차·기아는 수익성보다는 중장기로 자사 중고차 가격을 방어해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인증 중고차 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중고차 공급과 적정 가격에 형성된 중고차 매입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면 중고차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자사 브랜드 중고차의 전반적인 잔존 가치를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KG모빌리티도 올 하반기 중고차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5년·10만km 내 자사 브랜드 차량을 매입한 후 성능 검사와 수리를 거쳐 품질을 인증한 중고차를 판매한다는 그림이다. 자동차 대여 사업을 하는 롯데렌탈도 중고차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롯데렌탈은 이달 중 온라인 중고차 거래 플랫폼 서비스인 ‘마이카 세이브’를 이달 중 출시할 계획이다. 이는 3~5년간 장기 렌탈 후 반납한 중고차를 온라인 직접 계약 방식으로 렌탈·판매하는 사업이다.

대기업 각축전이 된 국내 중고차 시장

이처럼 국내 완성차 회사와 대기업 렌터카 계열사가 국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중소규모 업체 중심이던 기존 중고차 시장이 대기업 간 각축전으로 탈바꿈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 중 수입 중고차 시장은 이미 대기업 중심으로 거의 재편이 끝난 분위기다. 특히 중고차 인증 사업을 영위하던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지난 1월 중고차 인증 사업 역량 강화의 뜻을 밝혔다. 지난해 기준 3,610대를 판매해 전체 매출 비중이 5.5%였지만 이를 더 늘려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입 중고차 시장은 앞서 진출했던 한성모터스와 더클래스효성 등과 함께 수입 딜러사 간 격전의 장으로 변모한 모습이다.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BMW·미니·지프 등을 국내로 수입해 판매하는 것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딜러사들이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한 건 중고차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입차가 국내에 대거 들어오면서 중고차 시장 내에서도 수입차가 눈에 띄게 많아졌고, 이에 딜러사들이 새로운 먹거리로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 기존 딜러사에게 차량을 도매로 넘기던 해외 완성차 회사들이 온라인 직접 판매로 영업의 중심축을 옮기고 있는 흐름도 영향을 준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올해 초부터 테슬라, 폴스타, 혼다는 가격 정찰제를 내세우며 ‘온라인 플랫폼’을 열었고, BMW도 한정판 차량은 온라인 판매로 시동을 걸겠다고 밝힌 상태다. 온라인으로 신차 판매가 넘어가면서 일이 줄은 딜러사들이 ‘먹거리 다변화’를 위해 수입차 중고차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는 얘기다.

사진=GettyImages

국내 중고차 시장에 찾아오게 될 변화의 바람

업계에선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이 시장 전체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그간 중고차 시장은 중소 업체가 주를 이뤘던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으로 허위·미끼 매물 등 소비자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빈번했는데, 이젠 대기업 차량 제조사가 직접적으로 시장에 들어오니 중고차 구매자들이 더 믿고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실제 대기업 진입 소식은 중고차 시장의 자정 작용을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고차 이커머스 플랫폼 카머스를 운영하는 자동차 유통 회사 핸들은 허위매물 등록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실매물 검증 시스템’ 특허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중고차 전산 체계 고도화, 중고차 매매공제조합 도입 등을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신뢰도 향상은 시장 확대로 직결되는 만큼, 이러한 노력은 시장 규모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며 “대기업 진입으로 시장 개방, 신뢰 회복, 시장 확대라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반면 일각에선 중고차 시장의 중심인 소상공인의 먹거리조차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빼앗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중고차 매매 과정에서 정보 비대칭성 등의 문제가 만연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다만 국내 자동차 시장 현대기아차 점유율이 84%에 육박하는 현시점에서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와 국토교통부가 모니터링하며 관련 제도를 보완해 가야 하고, 대기업 또한 중소 업자들의 생계까지 침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